-

미리보기는
3 페이지 까지 제공됩니다.
-
-
사회과학계열
-
호남의 역사와 문화 - 화순군 [和順郡, Hwasun-gun]
-
호남의 역사와 문화 - 화순군 [和順.hwp
-
등록인 leewk2547
-
등록/수정일 13.08.02 / 13.08.02
-
문서분량 10 페이지
-
다운로드 0
-
구매평가
판매가격
2,000원
- 같은분야 연관자료
-
- 보고서설명
- 백제 때 잉리아현(仍利阿縣)·두부지현(豆夫只縣)·이릉부리군(爾陵夫里郡) 등이 설치되었으며, 신라 757년(경덕왕 16)에 각각 여미현(汝湄縣)·동복현(同福縣)·능성군(陵城郡 ; 綾城郡)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고려 초기 여미현은 다시 화순현으로 바뀌었다. 1143년(인종 21) 능성군이 능성현으로 바뀌고, 1390년(공양왕 2) 화순현·동복현에 감무를 파견해, 화순감무가 남평감무(南平監務)를 겸하였다. 조선시대에는 1394년(태조 3) 남평과 화순이 분리되었으며, 화순감무가 동복감무를 겸하였다.
- 본문일부/목차
- 1998년 9월 17일 사적 제410호로 지정되었다. 영산강 지류인 지석강 주변에 형성된 넓은 평지를 배경으로 효산리 모산 마을에서 대신리로 넘어가는 보성재의 양쪽 계곡에 230기 내지 500기의 남방식 고인돌이 10km 정도에 걸쳐 분포해 있다. 이 고갯길은 예로부터 이 지방의 교통로의 역할을 해온 곳이다. 고인돌은 마을 앞 평지나 마을 안에도 분포해 있지만 대부분 계곡의 동쪽 산기슭을 따라 군집되어 있다. 춘양면 대신리 지석묘는 해발 65m에서 125m 사이에 있으며, 도곡효산리는 45m에서 90m 사이에 위치해 있다. 효산리 고인돌군은 지표조사를 통해 확인된 총 980여 개의 석재 중 지석 등 하부가 드러난 것과 상석으로 보이는 것을 포함해 총 135기가 고인돌로 추정된다. 또한 현재 상석의 하부가 매몰되어 있거나 도괴된 것 중 상석의 형태를 보이는 석재가 100여 기 이상이다. 각 고인돌군의 동쪽 산에는 채석이 용이한 암반층이 있고, 그 암반에는 고인돌 덮개돌을 채석하였던 흔적이 남아 있어 고인돌의 축조 과정을 추정할 수 있다. 대신리 고인돌군은 세장(細長)한 계곡평지 끝부분부터 계곡 중턱에 이르는 약 1km에 걸쳐 분포하고 있는데, 총 3,309개의 석재 중 124기가 고인돌로 추정된다. 특히 대신리 산 중턱의 고인돌은 길이 7.3m, 폭 5m, 두께 4m, 무게 283여 톤에 이르는 거대한 덮개돌이 있는데, 이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거대한 규모이다. 화순 고인돌군의 대표적인 특징은 그 밀집도에서 최고라는 것이다. 고인돌은 유럽, 북아메리카, 지중해 연안, 아시아 등에 거의 세계적으로 분포해 있으나 각 지역마다 그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동남아시아, 중국, 일본, 우리나라 등에 분포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 가장 많이 분포해 있으며 그 중 전라남도 지방에 1만 9천여 기가 분포하고 있어 세계적으로 가장 밀집된 분포 지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 연관검색어
-
#호남의 역사와 문화
- 보상규정 및 환불정책
-
· 해피레포트는 다운로드 받은 파일에 문제가 있을 경우(손상된 파일/설명과 다른자료/중복자료 등) 1주일이내 환불요청 시
환불(재충전) 해드립니다. (단, 단순 변심 및 실수로 인한 환불은 되지 않습니다.)
· 파일이 열리지 않거나 브라우저 오류로 인해 다운이 되지 않으면 고객센터로 문의바랍니다.
· 다운로드 받은 파일은 참고자료로 이용하셔야 하며,자료의 활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다운로드 받은 회원님에게 있습니다.
저작권안내
보고서 내용중의 의견 및 입장은 당사와 무관하며, 그 내용의 진위여부도 당사는 보증하지 않습니다.
보고서의 저작권 및 모든 법적 책임은 등록인에게 있으며,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저작권 문제 발생시 원저작권자의 입장에서 해결해드리고 있습니다.
저작권침해신고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