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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학] 조선시대 호남의 실학자


카테고리 : 레포트 > 사회과학계열
파일이름 :[호남학] 조선시대 호남의 실학자.hwp
문서분량 : 14 page 등록인 : leewk2547
문서뷰어 : 한글뷰어프로그램 등록/수정일 : 13.03.07 / 13.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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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분야 연관자료
보고서설명
1. 규남 하백원
2. 존재 위백규
3. 여암 신경준
4. 이재 황윤석
5. 해금 오달운
본문일부/목차
하백원은 조선후기의 실학자이다. 순창의 신경준(申景濬), 장흥의 위백규(魏伯珪), 고창의 황윤석(黃胤錫)과 함께 호남의 4대 실학가로 꼽힌다. 본관은 진주이며, 자는 치행이고, 호는 규남이다. 하백원은 1781년 전라도 화순에서 진성(鎭星)과 장택고씨(長澤高氏)사이에서 태어났다. 하백원은 송환기의 문인이며 1808년 송환기가 성현을 모독하였다는 죄목으로 삭직되자 그를 변백하여 벼슬을 회복시켰다. 1803년(순조 3) 그는 진사과에 합격하였지만 대과를 보아 관직에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천문·지리·산수 등 실용적 학문에 주력하였다.
이후 백성의 생활을 편안히 하기위해 발명에 힘써 자동양수기인 자승거를 발명하였으며, 펌프의 원리를 이용한 항흡기, 짐을 실어 나르는 목우, 잔을 가득 채우면 저절로 새나가는 계영배, 저절로 시간을 알리는 자명종 등을 만들었다. 이어 1811년에는 동국지도를 완성하였는데 이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보다 50년이나 앞선 것 이었다. 특히 계영배는 고대 중국에서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하늘에 정성을 드리며 비밀리에 만들어졌던 의기(儀器)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의기에는 밑에 구멍이 분명히 뚫려 있는데도 물이나 술을 어느 정도 부어도 전혀 새지 않다가 7할 이상 채우게 되면 밑구멍으로 새어나가게 되어 있었다고 한다. 환공은 이를 늘 곁에 두고 보는 그릇이라 하여 유좌지기(宥坐之器)라 불렀고, 공자도 이를 본받아 항상 곁에 두고 스스로를 가다듬으며 과욕과 지나침을 경계했다고 한다.
이러한 업적이 세상에 알려져 그는 관찰사의 천거를 받아 1834년 창릉참봉에 임명되었고 1838년(헌종 4) 형조좌랑에 올랐다. 그 뒤 종묘령을 거쳐 1841년 석성현감에 올랐으나 지방 토호와의 알력으로 이듬해 보령으로 귀양갔다. 그 다음해 바로 풀려났고, 1844년 사헌부지평에 제수 되었지만 나아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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