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백제의 멸망과 국외정세
1) 7세기 국외 동맹체제
2) 왕실의 내정 상황
3) 백제의 멸망
3 흑치상지의 부흥운동과 임존성의 관계
4 흑치상지의 항복과 당나라 활동
5 맺음말
본문일부/목차
1 머리말
신라가 당나라와 함께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일대의 사건이 일어나고, 그 뒤에 백제마저 멸망되는 사건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전쟁 안에 기록되는 수많은 명장과 영웅, 그리고 지략가들이 존재한다. 고구려의 淵蓋蘇文과 백제의 成忠, 階伯, 그리고 신라의 金庾信과 金春秋 등이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들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두각을 드러낸 이들이 있는가 하면 전쟁을 하면서 영웅이 된 이들도 있다. 하지만 역사에서는 이 전쟁 이후의 이야기, 특히 없어진 나라에 대한 기록은 찾기 힘들다. 하물며 그 나라의 사람은 어떻겠는가.
그런데 없어진 나라의 기록이 조금이나마 남았는데, 그것은 바로 백제의 부흥운동이다. 하물며 망국의 사람의 기록은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서 7세기 때에 빠르게 변하는 국제 정세와 그 속에서 멸망한 백제를 다시 지키기 위해 움직이려는 망국의 사람 흑치상지를 백제 부흥운동과 관련 하여 서술 할 것이며, 향후 그가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기록도 알아 볼 것이다.
2 백제의 멸망과 외교적 고립
1) 7세기 국외 동맹체제
당시 한반도에는 냉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고구려에서는 연개소문이 정권을 잡고, 백제에서는 義慈王이 즉위하자 순식간에 40여성을 빼앗는 등 백제는 신라와 고구려의 위협이 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의자왕이 빼앗은 성 중, 신라의 大耶城이 하나의 계기를 만든다. 의자왕 2년(642) 8월에 允忠이 대야성을 공격한다. 당시 대야성의 성주는 김춘추의 사위인 金品釋이다. 그가 이 대야성전투에서 사망하는 사건이 김춘추를 분노하게 만든다. 그것은 바로 백제를 정벌해야겠다는 계기를 만들고, 국제정세 속에서 크게 두 체제의 동맹관계가 만들어진다. 먼저 김춘추는 고구려에 원병을 요청하러 가는데, 연개소문이 죽령 서북쪽 땅 일부에 대한 반환문제를 제기해서 협상에 실패하게 된다. 그래서 당나라에 가게 되고, 김춘추가 당나라를 갈 때는 648년이다.
신라에서 이러한 준비를 하고 있는 동안 백제에서는 의자왕 13년(653) 왜와의 동맹결의를 더욱 다지게 되고 15년(655)에는 대사 달솔을 포함한 100여인을 왜에게 보낸다. 그러면서 왜는 고구려와의 관계를 더욱 다지며 동맹을 구축하였다.
이로써 고구려-백제-왜, 그리고 신라-당 체제가 서서히 만들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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