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렐 폴라첵’은 인구가 약 12000명 밖에 되지 않는 체코의 한 작은 마을 Rychnov nad Kněžnou 에서 태어났다. 그는 체코인 들이 기억하는 유명한 작가이고, 익살꾼, 기자, 영화 대본을 쓰는 작가로써 여러 분야에서 그의 능력을 펼쳤다. 그의 아버지( Jindřich Poláček ) 는 무역상인 유태인이었고, 그에게는 4명의 남자 형제가 있었고, (Arnošta, Kamila, Ludvíka a Zdeňka ) 아버지의 두 번 째 결혼으로 인해 두 명의 이복 형제 또한 있었다. 그는 Rychnov에서 가장 수준 높은 고등학교에 진학 했으나 반항적인 행동으로 인하여 프라하에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하지만 1912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당시 중부 유럽 최고 대학인 ‘까렐 대학’ 법학부에 입학하여 학업을 시작하였다. 동시에 그는 Rychnov에 있는 인형 극장의 학생 조직에서 연극을 쓰고, 번역했으며 그것으로 연극을 하며 감독하였다. 공부를 시작 한지 2년이 지나던 해인 1914, 제 1차 세계 대전의 시초, 오스트레일리아- 헝가리의 세르비아 침공으로 인하여 이듬해까지 폴라첵은 전쟁에 참전해야만 했다. 전쟁 중에 그는 오스트리아 군대의 패배와 후퇴를 경험했고, 전쟁의 끝에서 세르비아의 포로로 탈출하여 돌아올 수 있었다. 그 후에 그는 체코슬로바키아 수출입 위원회에서 서기로 고용되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경험을 통해 그의 수많은 단편 작품 중 하나인 <회전목마, Kolotoč > 를 편찬하여 자신의 작가 활동의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작품을 통해 자신이 일하던 위원회를 조롱 함으로서 직업을 잃게 되었다. 그 내용은 수출입 위원회 때문에 회전목마를 물려주던 가족이 해외로 그것을 팔 수 없게 된 이야기였다.
폴라첵이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로, Josef Čapek이 그에게 협력을 제안하였다. 그는 체코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예술가이자 화가, 시인, 작가이며, 그의 형인 소설가 Karel Čapek으로 인해 문학작품에 처음 소개된 ‘Robot’ 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창시자이다. 1920년부터 그는 풍자 잡지인 Štika 와 Nebojsa 를 편찬해내기 시작했고, 필명 Kočkodan 을 사용하며 짧은 이야기와 칼럼을 작성하였다. 그는 그 시대에 가장 인기 있었던 Lidové noviny 에 있는 편집자 사무실에 소개 되어졌다. 그의 작품은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하기 전까지 신문에 기제되었다. 그는 유대인 종교 단체로부터 고용되었으며, 1943년 7월 5일 테레진에 있는 빈민가로 이동되었고, 다음으로 Auschwitz 수용소에 차례로 옮겨졌고, Gleiwitz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 해피레포트는 다운로드 받은 파일에 문제가 있을 경우(손상된 파일/설명과 다른자료/중복자료 등) 1주일이내 환불요청 시 환불(재충전) 해드립니다.
(단, 단순 변심 및 실수로 인한 환불은 되지 않습니다.)
· 파일이 열리지 않거나 브라우저 오류로 인해 다운이 되지 않으면 고객센터로 문의바랍니다.
· 다운로드 받은 파일은 참고자료로 이용하셔야 하며,자료의 활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다운로드 받은 회원님에게 있습니다.
저작권안내
보고서 내용중의 의견 및 입장은 당사와 무관하며, 그 내용의 진위여부도 당사는 보증하지 않습니다.
보고서의 저작권 및 모든 법적 책임은 등록인에게 있으며,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저작권 문제 발생시 원저작권자의 입장에서 해결해드리고 있습니다. 저작권침해신고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