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15일 발효 예정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소식에도 그 효과를 보기 쉽지 않다는 주장이 산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FTA 규정상, 관세 혜택을 보려면 한국산이란 것을 증명하는 ‘원산지 증명’이 필요한 데 아직 대다수 기업이 증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 수출 관세혜택을 받으려면 자동차에 탑재되는 부품 생산 회사들이 완성차 업체 부품 원산지 증명서를 내야 한다. 버젓이 국내에서 생산된 제품과 부품임에도 증명서를 내지 못하면 해당 부품 탑재 제품은 관세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지난해 유럽에 이어 다음 달 미국 등 FTA 체결국으로 수출되는 제품 및 부품 관세혜택을 받으려면 원산지 증명서와 확인서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FTA 비 체결국 부품이 관세 혜택을 받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증명서 제출 못하는 기업 많아=대기업 관계자는 “2~4차 협력업체 가운데 증명서 제출조차 하지 못하는 기업이 적지 않다”면서 “권유와 설득을 해봐도 이들은 얻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어서 소극적”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한·EU FTA 발효 이후 대기업 협력업체 가운데 원산지 증명서를 제출하는 기업은 50~70% 수준이다. 그나마 수작업으로 작성한다. 증명서 작성을 위해서는 제품 분류체계는 물론 각기 다른 FTA 협정마다 다른 조건을 일일이 체크해야 해 중소기업에는 부담이 적지 않다. 증명서를 내지 못하는 기업은 이를 해결하지 못한 곳이 많다. 이런 기업 애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FTA 원산지관리시스템’이다. 2010년과 지난해에 걸쳐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으로 시스템 필요성과 구축 사례가 확대되기 시작했다. SK텔레콤을 비롯해 세포아소프트, 비즈머스, 에코클라우드 등 업체들이 관련 서비스를 내놓고 관세사 및 회계 법인도 컨설팅으로 기업별 시스템 구축 작업에 참여했다. 삼성전자·LG전자·현대기아차 등 대기업은 시스템 개발을 서둘렀고 이들 1차 협력업체를 중심으로 삼일회계법인·삼정KPMG 등 회계법인 및 관세사와 시스템 구축을 확산해 나갔다. 현대모비스와 만도 등은 한·EU FTA 발효에 맞춰 삼정KPMG 등과 손잡고 시스템을 구축, 이미 이를 한미 FTA에 활용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문제는 공급망 후방의 수만개 중소기업이다. 업계는 한·EU FTA가 발효한지 상당시간 지나고 한미 FTA를 코앞에 둔 이달까지도 약 5% 중소기업만이 원산지관리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95% 기업이 수작업으로 증명서를 제출하다 보니 오류도 적지 않을 뿐더러 증명서를 5년간 보관해야 하는 FTA 규정을 이행하기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막대한 컨설팅 비용에 운영 인력도 없어=중소기업이 비용 부담 없이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관세청은 무료 원산지관리시스템 ‘FTA패스’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FTA패스 역시 수작업 부담이 크고 내부 전사적자원관리(ERP) 등 시스템과 연계가 어렵다는 점 때문에 대략 50인 이하 기업들만 겨우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이 업계 분석이다. 이마저도 보안상 이유로 사용을 꺼린다. 결국 기업이 알아서 시스템을 구축 및 운영해야 하는 상황이다. 시스템 구축에 앞서 전문 관세사와 회계법인 컨설팅이 필요하다는 점도 중소기업에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최소 2000만원에 달하는 고가 컨설팅 비용에 시스템을 설치한다 해도 수정 및 운영할 인력이 없다. 중소기업청에서 직원 50인 미만 기업에 FTA 시스템 구축 지원비로 700만원을 지원하고 있으나 50인 이하 소기업은 추가 비용 및 운영 인력 문제로 시스템을 구축하기 어렵다. 그나마 여유 있는 대기업은 FTA 시스템을 만들어 중소기업에 사용하도록 할 수 있으나 중소기업 원가정보 노출 문제, 단가 협상 문제로 쉽지 않다. FTA 시스템으로 제품정보 및 원가 정보 등을 보내줄 수 있는 내부 정보 체계 없이 FTA 시스템만 갖다 놓는 것도 효과가 없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중소기업은 차일피일 시스템 구축을 미루고 있다. 지난해 FTA 시스템을 구축한 자동차 부품업체 관계자는 “몇 차례에 걸쳐 협력업체에 증명서 제출과 관련 체계 정립을 요구했지만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만도, 현대위아, 아트라스 등 대기업을 비롯해 동일기계공업, 성화산업, 한국씰텍 등 해외와 ‘직거래’를 해야 하는 중소기업이 비교적 일찍 시스템 구축에 나선 이유다. FTA 시스템 업체 관계자는 “주로 직수출을하는 기업을 중심으로 시스템이 확산되고 있으며 직수출 하지 않는 중소기업은 실질적으로 FTA에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대책 및 대·중소 동반성장 의식 필요=업계는 해결책으로 세 가지를 제시한다. 첫 번째는 중소기업을 위한 정부 차원의 통합대책 마련이다. 현재 중소기업 FTA 정책 및 시스템 구축 지원을 지경부·중소기업청·관세청 등 각 부처에서 분산해 수립하고 있다. 체계적 예산 편성과 실질적 대책 마련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근본적 원인을 이에 두는 기업이 많다.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기관마다 정보 공유도 이뤄지지 않고 집중화를 통한 시너지가 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는 전 산업계에 걸친 전문가 육성이다. FTA 시스템 및 체계 정립 필요성을 설파하기 위해 지난해만 해도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등 ‘급한’ 대기업들이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했다. 하지만 비정기적인데다가 기업들도 우후죽순 참여하니 효과가 적었다. 교육에 참가했던 협력업체 한 관계자는 “기업들이 하는 교육은 자원 낭비가 많다”고 지적했다. FTA 관련 교육을 중앙에서 관제, 전국적으로 교육센터에서의 무료 강좌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인식 개선이다. 중소기업들도 ‘우리가 왜’란 인식 대신 수출을 통한 동반 성장의 필수 요소라는 인식을 확립해야 한다. 많은 중소기업이 ‘우리는 부담을 짊어지는 반면에 원산지 증명으로 인한 관세 혜택은 수출 대기업이 본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대기업들 또한 무조건적인 강요보다는 영세 중소기업을 위한 체계적인 지원 대책을 위해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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