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연설할 때마다 자주 인용하는 나라 중 하나다. 세계 최고 인터넷 인프라와 교육열, 그리고 창의성을 배우자고 언급할 때마다 정작 우리는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그쯤에서 치부해 버린다. 급기야 미국 CNN은 지난 5월 시청자 퀴즈에 ‘한국가정의 인터넷 평균속도는 미국 가정의 몇 배일까요’라는 질문을 내보낸 후 뉴스 말미에 답을 공개했다. 답은 400배였다. 그렇다면 세계 최고의 비옥한 디지털 토양을 갖춘 우리나라에 하이테크의 작물은 잘 자라고 있는가. 최고의 인프라 위에서 우리의 젊은이들은 경쟁력 있게 성장하고 있는가. 왜 일자리에서 소외되고 있는가. 우리의 경제 시스템에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보다 훨씬 열악한 나라, 그러나 특유의 후츠파 정신(유대인의 창조정신)을 바탕으로 21세기 ‘창업국가’ 경제기적을 일군 이스라엘로 답을 찾아 떠나보자. 남한의 5분의 1에 불과한 사막에서 세계 인구 0.1%가 유럽전체보다 많은 창업을 하고, 우리는 고작 세 개 회사가 상장된 미국 나스닥 시장에서 미국을 제외한 세계 상장기업 40%를 점령했으며 서울대학교의 절반밖에 안 되는 히브리대학에서 1년에 특허료로 1조2000억을 벌어들이는 나라가 우리에게 보내온 메시지를 파헤쳐 보자.
1. 프롤로그-세상에는 이런 나라도 있다 우리는 유례없는 인류학적 격변기에 살고 있다. 지구상에 지능을 갖춘 ‘호모사피엔스’가 등장한 이래 25만년이 흘렀고 그 기간동안 인구는 6억명으로 늘었다. 그 후 150년 동안 세계 인구는 질소비료를 개발해 척박하기 그지없던 지구를 비옥한 토양으로 바꾸고 의료기술의 개발로 60억명을 돌파했으며 지난 15년 동안 인구는 다시 70억명을 돌파(2011년 10월 31일)하기에 이르렀다. 25만년에 걸쳐서 6억명의 인구를 부양하던 지구는 척박하기 그지없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6억명 이하의 느슨한 인구가 살고 있던 지구 경제는 동서양 간 편서풍과 수개월에 걸친 실크로드 무역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독일 화학자 하버가 발명한 질소비료는 식물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늘려서 인구 증가에 직접적 요인이 됐으며 풍부한 단백질을 제공하는 중요한 농업혁명을 가져왔다. 거기에 의료기술 발전이 더해져 인구는 단기간에 60억명을 돌파하는 기하급수적 증가를 이뤘다. 공기 78%가 질소로 채워져 있으나 비료로써 땅 속으로 흡수되기 위해서는 300도의 고열에서 150기압이 가해져야 한다. 자연 상태에서 이 같은 환경을 만들기는 불가능하지만 질소를 일단 암모니아로 만든 후 질소비료로 치환하는 방법이 고안된 것은 인류학적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경제학적 관점에서도 인구 폭발을 이룬 혁명임에 틀림없다. 느슨한 사회가 갑자기 늘어난 인구로 분주해지기 시작하고 동서양 간 거래가 더 빈번해지면서 산업혁명으로 이어지게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진화였다고 여겨진다. 교통과 통신이 거리를 단축시킬 수 있었고 시간을 새로운 가치로 탈바꿈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인류가 인구 60억명을 돌파하던 해(1998) 공중인터넷이 등장했다. 물론 인터넷은 1970년대 고안됐으나 그간 연구소 중심으로만 이용되다 우리나라에선 세계 인구가 60억명을 돌파하던 1998년 바로 그 해에 일반 가정주부에서 학생까지 이용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구 60억명 돌파되는 그 순간 사이버 세계가 동시에 열린 것이다. 우리는 인류의 역사를 인구 6억명 이전 역사와 60억명 이전 역사, 60억명 이후 역사로 분리해 볼 가치가 있다. 6억명 이전의 오프라인 세상, 60억명 이전의 온·오프라인 세상, 60억명 이후의 사이버 세상이 바로 그것이다. 우연의 일치 인지는 몰라도 인구의 성장가속도와 과학기술 발전 가속성은 절묘하게 일치하면서 그때그때마다 다양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산업화로 늘어나는 인구를 지탱하는 대량생산과 운송이 가능하게 하는 교통, 통신 혁명이 있었고 인터넷이라는 보이지 않는 세계와의 연결로 오프라인 경제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만약에 지금의 인터넷 경제를 오프라인으로 대체한다면 아마도 은행 점포가 지금의 100배 정도는 더 필요할 것이다. 이를 인구로 환산하면 전 국민의 50%가 은행원이어야 할 것이다. 인터넷이 도입된 지 불과 10여년 만에 우리나라의 인터넷 거래경제는 1경원에 이르렀고 이를 은행에서 오프라인으로 처리한다는 것은 이미 불가능한 수준에 이른 것이다. 이제 우리는 원해서든 아니든 간에 사이버 세상의 질서와 그 토양에 맞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접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따라서 우리의 관심은 인터넷 세상 토양에 해당하는 디지털 토양 개념 하에서 새로운 하이테크를 경작하는 사이버 세상의 새로운 인류 ‘호모디지쿠스’가 아닐까 한다. 21세기 디지털 세상의 신인류 ‘호모디지쿠스’에게는 식량을 재배하는 토양이 아니라 지식자원을 경작하는 디지털 토양이 필요하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국가다. 미국의 CNN은 뉴스 사이사이 삽입되는 시청자 퀴즈에서 한국가정의 인터넷 접속 속도는 미국의 400배나 된다고 발표하고 있다. 인터넷 속도는 농경사회로 비유한다면 비옥한 토양에 해당한다. 질소비료의 예에서와 같이 디지털 세상의 토양은 인터넷 접속 속도다. 이제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비옥한 디지털 토양에서 하이테크를 경작하는 21세기의 농부로 거듭나야 하는 시점에 와있다.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두뇌를 가진 민족임과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비옥한 디지털 토양이라는 필요충분 조건을 갖춘 우리에게 21세기는 분명 축복의 시간이어야 함에 틀림없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젊은이들에게 희망 보다는 절망을 더 빨리 느끼게 하고 성취의 기회도 주지 않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음은 아이러니다. 윤종록 연세대학교 연구교수 jonglok.yo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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