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위기 광풍이 한국을 막 스쳐 지나간 2000년. 조동찬 현(現) 에이스테크놀로지 사장(당시 임원)은 중국에 발을 디뎠다. 당시 이 회사는 글로벌 통신장비 기업 에릭슨과 얼마 전 TMA(Tower Mounted Amplifier, 안테나 손실을 줄이는 기지국 장비) 파트너 계약을 맺고 중국에 생산기지 건립을 결정한 상황이었다. 1999년 에이스테크놀로지에 합류한 조 사장은 전에 중국 비즈니스를 한 경험은 있었지만, 대륙이 주는 낯선 느낌을 받는 처지는 여느 누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몸담은 회사는 중국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1980년 창립 이후 성장을 거듭해 온 회사는 보다 길고, 원대한 목표를 품기 시작했다. 에릭슨이 원하는 물량을 대면서 이익을 추구하려면 국내를 벗어나야 했다. 원가절감을 통한 생산역량 강화를 위해 중국에 뿌리를 내리는 일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IMF 구제금융 여파가 남아있었지만, 에이스테크놀로지는 기술력을 무기로 1998년 스위스 UBS 캐피털로부터 1000만달러 외자 유치를 이끌어내면서 시장 신뢰를 얻었다. 세계 통신장비 업계에서 가장 많은 점유율을 가진 에릭슨과 파트너를 맺을 수 있었던 것도 그 덕이었다. 이제 중국에서 빠르게 생산기지를 구축하는 일만 남았다. 그리고 그 무거운 책임은 조 사장 어깨에 달렸었다. 무역상사에서 기술집약적 장비업체로 성장해 온 회사 잠재력을 폭발시킬 수 있는 기회가 눈앞에 놓인 것이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성공이었다. 그는 이후 9년 동안 중국 내 5곳의 공장을 세웠다. 각각 특화된 부문을 담당해 효율적인 생산라인을 갖췄다. 홍콩에 GPO(Grobal Procurement Office)를 세워 해외 소싱 전진기지로 물류 중추기능을 담당케 했다. 또 스웨덴과 일본에 지사를 세워 글로벌 파트너와 유대도 강화했다. 중국 자본과 합작으로 만든 회사에서 발생하는 매출은 2010년 기준 본사 수준으로 성장했다. 중국 내 상장도 준비 중이다. 중국 사업이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다. 외부 자본에 대한 배타적인 분위기, 현지 인력과 갈등, 문화적 차이 등 어느 하나 수월한 것이 없었다. 그는 중국 사업 성공 비결로 “스스로 중국인이 된 것”을 꼽았다. 자존심이 세고, 설득이 힘든 중국인 특유 기질을 어려워하기보다는 자신을 거기에 맞춰,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런 노력을 바탕으로 에이스테크놀로지는 중국 내 인력으로 탄탄한 생산기지를 가질 수 있었다. 중국 현지 직원들은 에이스테크놀로지의 중요한 무형 자산으로 자라났다. 조 사장은 중국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2008년 에이스테크놀로지 해외법인 대표를 맡아 본격적으로 글로벌 사업에 뛰어들었다. 에릭슨(스웨덴), 노키아(핀란드), 알카텔루슨트(미국·프랑스)가 그의 비즈니스 상대다. 세계 곳곳에 파트너가 포진해있는 만큼 조 사장 다이어리에는 1년 치 출장 일정이 빽빽이 적혀 있다. 조 사장은 단순한 비즈니스 관계를 벗어나 파트너와 한 몸을 이루는 방식을 즐긴다. 파트너와 친밀감을 형성하고 일체화하는 조 사장 특유의 비즈니스 철학은 ‘현재진행형’이다. 인천 시 남동구에 위치한 에이스테크놀로지 그의 방에는 모형 헬리콥터, 잠수함 등 조종할 수 있는 ‘장난감’이 많다. 어려서부터 무엇을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기질이 지금도 남아 시간이 날 때마다 모형을 조립하거나 조종하며 생각을 정리한다. 그는 모형을, 때로는 개인적인 취미가 아닌 파트너와 관계 형성에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자칫 딱딱할 수 있는 비즈니스가 예기치 못한 선물로 인해 부드러워 질수 있을 뿐더러 자연스럽게 파트너와 가까워 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에는 사무실 한 쪽에 놓인 노란 모형잠수함이 눈에 띈다. 조 사장은 파트너와 중요한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 ‘프로젝트 송’을 만드는데, 이번에는 비틀즈의 ‘옐로 섬머린(Yellow Submarine)’을 택했다. 그의 모형 잠수함은 조만간 파트너들이 모인 자리에서 ‘진수’될 예정이다. 조 사장과 그의 파트너가 함께 부르는 ‘옐로 섬머린’과 함께 말이다. “냉혹한 비즈니스 세계에 살지만 함께 프로젝트 송을 부르는 과정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로서 동질감도 많이 느끼게 됩니다. 특히 서로 문화와 배경이 다른 외국인들과 일할 때는 이렇게 매개체를 통해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이 백 마디 말보다 나을 때가 많아요.” 조동찬 사장은 2009년 중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회사 전체를 이끄는 선장이 됐다. 2009년 에이스테크놀로지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한 그는 이제 글로벌 전략을 챙기는 동시에 회사 살림살이를 꾸려가는 어렵고 중요한 위치에 올랐다.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는 일은 그의 몫이다. 조 사장은 “현재 통신시장 키워드는 융합”이라며 “통신기술이 여러 분야에 접목돼 새로운 서비스를 출현시키는 일이 잦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동통신 시스템과 장비들은 앞으로 기술 집약, 저(低)전력, 친환경, 고효율화를 키워드로 기술 진화와 함께 빠른 속도로 업그레이드 되어갈 것이란 설명이다. 그가 한국에 돌아온 이후 에이스테크놀로지는 2010년 영국 ‘와이어리스 테크놀러지랩(Wireless Technology Lab)’ ‘엑시스 NT(Axis NT)’ 인수 등 강소기업·연구인력 보강 등으로 핵심기술 확보 및 차세대 제품개발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조 사장은 에이스테크놀로지 다음 목표로 미개척 시장, 군용 통신장비, 차량용 레이더 등을 꼽았다. 향후 기지국시장에서 급격한 성장이 예상되는 RRH(Remote Radio Head)와 RIA(Radio Integrated Antenna) 등으로 기존 사업을 강화하는 한편 군용 및 차량용 장비 등으로 신사업을 펼칠 계획이다. 특히 군 지휘통제 및 감시·정찰용 통신·레이더 장비 등은 정부에서도 기술 국산화 및 수출 증대에 관심을 갖고 적극 참여하고 있는 분야라 큰 폭의 성장을 기대 중이다. 차량용 레이더 역시 그가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다. 지능형 교통시스템을 구축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모색하고 있다. IT가 생활과 점점 밀접해지며 통신 업체로서 기존 기술 인프라를 고도화 시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예전처럼 통신이 제한적으로 쓰이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원천기술로 발굴해 낼 아이템이 무궁무진하다는 설명이다. 바로 그가 ‘융합’을 중시하는 이유다. 지역적으로는 인도, 동남아 등 아직 통신시장이 덜 개척 된 곳에 시선을 돌리고 있다. 조 사장은 “인도와 동남아는 앞으로 통신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며 “중국 영업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장에서도 에이스테크놀로지 영향권을 넓혀갈 계획”이라고 비전을 제시했다. 인도는 중국에 버금가는 시장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많은 인구뿐만 아니라 기술을 받아들이는 토양, 인력이 풍부해 새로운 기회가 쏟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입지를 다지기 위해 세계 기지국 장비 제조업체들과 지속적으로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구축, 시장진입 및 확대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포부다.
◇조동찬 에이스테크놀로지 사장의 성공 키워드
△파트너와 한 몸이 돼라 세계시장에서 통하려면 혼자 힘으로는 어렵다. 자신보다 큰 규모의 파트너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같이 일하는 ‘동료’라는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뢰감을 주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 질 수 있다.
△남의 시장에 갔으면 그 지역 사람이 돼라 문화가 다르고, 배경이 다르면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이때 ‘상대편이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 곳의 룰을 따르라. 중국에서는 중국인이 되는 것만큼 빠르게 일을 진행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묻혀있는 미개척 시장에 투자하라 잘 보이지 않지만 성장 가능성이 큰 곳을 눈여겨봐야 한다. 이미 강자들이 진입한 시장은 뚫기 어렵다. 기술집약적인 회사들은 오히려 아프리카 같은 곳이 앞으로 새로운 시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시장을 포착하기 위한 눈을 길러라.
<회사소개> 에이스테크놀로지는 한국 이동통신 역사를 함께한 산 증인이다. 회사의 시작은 1980년 7월 1일 서울 충무로에 설립한 명성무역상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차량용 자동안테나·TV안테나 수출입 오퍼상을 거쳐, 1984년 카폰안테나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통신용 안테나사업에 뛰어들었다. 1987년 국내최초로 무선전화기용 플렉시블(Flexible)안테나를 개발하는 등 소형안테나 개발 기술력을 인정받으며 통신용 안테나 사업의 발판을 다졌다.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1990년대 초반 매출액 40억원에 불과했던 에이스는 1996년 매출액 200억원, 1997년에는 790억원으로 약 20배 고도성장을 달성한다. 2000년대 들어 해외 제조 기지를 확보하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본격적인 글로벌 RF부품장비 기업으로서 기반도 마련했다. 글로벌 통신기업과 WCDMA 사업 파트너로 선정되며 그 기술력을 대내외로 인정받은 에이스는 2003년 5000만불 수출의 탑 수상, 이듬해 7000만불 수출의 탑 등을 수상하며 수출기반 기업으로 성장했다. 2011년 현재 사업영역을 이동통신기지국에만 국한하지 않고, 30년간 축적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차량IT융합, 군(軍)통신 분야 등 신수종 사업에도 적극 뛰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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