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과 산업현장에서 요구하는 공학교육 시각차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기업은 대학의 공학교육이 현장과 동떨어져 있다고 비판하고 있고, 대학은 산업체가 과실만을 원할 뿐 인재양성의 책임은 회피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이런 논쟁이 어제, 오늘 시작된 건 아니다. 공학교육 개선을 위한 세미나, 정책토론회 등은 쉬지 않고 연례행사로 열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고, 당연히 개선도 뒤따르지 못했다. 대학과 기업 간 시각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국 공학 인재를 바라보는 기업과 대학의 시각차를 좁힐 수 있는 객관적 기준 마련과 시스템 구축 없이는 여전히 헛바퀴 논쟁을 피할 수 없다. 이에 5회에 걸쳐 대학과 산업현장의 시각차 해소와 올바른 공학인재 양성 방안을 집중 조명해 본다
◆산업 현장과 대학 교육의 ‘시각차’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22일 기업에서 가장 원하는 인재는 동종 업계 대기업에 근무한 대리·사원이라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특히 대기업은 연구개발(R&D) 분야 대기업 경력직을 선호했다. 조사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업들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취업한 인력들의 업무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다른 계열도 비슷하지만 특히 공학계열은 더욱 인색하다. 지난달 국내 최고 소프트웨어 전문가로 꼽히는 김진형 KAIST 교수와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 간에 오간 대화도 이를 잘 보여준다. 이날 두 사람은 매주 수요일 개최하는 삼성사장단회의에서 만났다. 김 교수가 사장단회의에서 ‘왜 소프트웨어인가’라는 주제로 강의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최 부회장은 “소프트웨어 개발인력을 현재의 50%에서 70%로 늘리려고 하는데 대학의 인력이 부족하다”고 얘기했다. 이 말에 김 교수는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에 학생들이 오지 않는다. 대기업들이 소프트웨어 인력을 채용하지 않기 때문이다”고 응수했다. 소프트웨어 인력 부족이라는 동일한 사안을 놓고 기업과 학교에서 전혀 다른 시각이 존재한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최 부회장의 말처럼 기업들은 대학을 졸업한 공학인력에 신뢰가 거의 없다. 대학 졸업 후 산업현장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교육이 부족하다는 인식은 이미 오래 전부터 팽배하다. 이 때문에 힘들게 뽑은 인력을 각 기업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재교육한다. 대한상의 조사처럼 기업들이 대학 졸업자보다 경력인력을 우대하고, 경력 중에서도 동종 업계 근무경력이 있는 인력을 선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대학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제대로 된 공학교육을 받은 인력에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김 교수는 강의 중간에 삼성의 소프트웨어 개발인력이 2만5000명에 달한다고 언급하자 “전산전문가와 단순 코딩 인력을 혼동하지 말라”고 지적했다. 품질을 생각하며 치열하게 설계하고 개발하는 전산전문가와 3개월 프로그램 배워서 코딩하는 사람을 혼동하지 말라는 일침이다. 제대로 된 공학인력에 대한 기준 자체가 없음을 지적한 것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이 같은 풍토는 공학을 해서는 기업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인식과도 연결된다. 실제로 국내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는 대부분 상경계열 출신이다. 또 이런 인식은 인재 양성에 대한 기업들의 태도로 이어진다. 김성조 중앙대학교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기업이 대학에서 산업현장에 곧바로 활용할 수 있는 인력을 배출하지 못한다고 비판은 하지만, 실제로 자신들이 필요한 인력이 어떤 인력인지 전혀 요구하지 않는다”며 “기업의 ‘무임승차’ 근성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수요자 겸 수혜자로써 기업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물론 기업뿐 아니라 대학 내 공학교육 문제점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공학교육 현장에서도 이런 문제점을 고치기 위해 지속가능한 미래형 공학교육 시스템 개발과 구축, 산업체가 요구하는 실무형 공학인재 양성을 위한 고민과 노력은 지속되고 있다. 10년 전 도입된 공학교육인증제도와 같은 제도도 지속적으로 산업체와 학교의 공학교육 시각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지성 부회장의 말처럼 개발인력을 뽑으려 해도 기업이 원하는 기준치를 충족시키는 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줄어들지 않는다. 하지만 국내 공대 졸업생은 다른 선진국보다 월등히 많다. 실제로 2008년 발표된 OECD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5년 기준 대학 졸업자 중 공학계열 비율은 한국이 27.1%로 미국(6.3%), 독일(15.9%), 일본(20.1%) 등 주요 선진국보다 월등히 높다. 단지 산업체에서 요구하는 능력을 갖춘 엔지니어는 여전히 부족하다. 이른바 스킬 미스매치(Skill Mismatch)다. 김성조 교수는 “국내 많은 공과대학의 교육과정이 전혀 차별화되지 않고 있다”며 “이런 환경에서 차별화된 인재 양성이 가능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스킬 미스매치를 해소하기 위해 대학과 산업체가 바라보는 인재상이 같은 곳을 향하고 있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대학과 산업체는 물론이고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기업, 신입사원 재교육하거나 경력 선호
국내 기업 대부분이 신입사원 업무 능력이 기대치보다 떨어짐에 따라 재교육에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이 같은 요인으로 인해 신입보다는 경력직 선호가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한상공회의소는 306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기업의 경력직 채용 및 활용 현황’ 보고서에서 기업의 30.4%가 ‘새로 뽑는 직원의 절반 이상을 경력직으로 채용한다’고 응답했다. 10~30%와 30~50%를 뽑는다는 기업도 각각 20.3%, 10.8%에 달했다. 특히 대기업들은 R&D 경력직 선호도가 35%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그렇다고 엄청난 기술과 연구 경험을 갖춘 인력을 찾는 것도 아니다. 이들 기업이 선호하는 연령대는 30대(71.2%), 직급은 사원·대리급(66.3%)이 가장 높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실제로 경력직원을 채용한 기업들의 만족도도 높게 나타난다. 기업들은 채용 경력인력 3명 중 2명 이상은 기대에 부합하는 역량을 발휘한다(61.1%)고 답해 대체로 만족했다. 반면에 신입사원 업무 능력 기대치는 크게 떨어진다. 지난 9월 대한상의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조사기업의 91%가 신입사원 교육을 실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기간은 평균 39.9일이 걸렸다. 신입사원 혼자서 기본적인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까지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신입사원이 일상 업무를 수행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6개월∼1년 이하’라는 답변이 32.0%로 가장 많았으며, ‘1∼2년 이하’가 24.8%, ‘2년 초과’가 5.8%로 조사됐다. 최소 6개월은 넘게 걸린다는 기업이 전체의 62.6%에 달했으며, 6개월 이하로 응답한 기업은 37.4%에 불과했다. 신입사원 교육에 드는 1인당 소요비용도 217만4000원에 달했다. 대기업이 56.1일 동안 406만6000원의 교육비용을 들였고, 중소기업은 28.6일 동안 118만원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기업의 71.2%(복수응답)가 대학에 ‘현장실습·인턴 등 현장실무교육’을 강화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업체들은 기업 스스로도 현장실무교육에 동참(80.6%)하거나 대학의 맞춤형 인력 양성 지원(52.6%), 연구과제 공동수행(49.0%) 등을 통해 인재 양성 역할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 기업은 정부에도 대학 실무교육 지원 강화(62.0%), 기업 인재상 조사·연구(56.2%), 산학협력 참여기업 인센티브 강화(49.0%), 인력 양성사업 홍보 및 기업과 대학의 매칭 촉진(42.0%) 등을 통해 효율적인 인재 양성에 힘써줄 것을 요청했다. 박종남 대한상의 상무는 “경력사원은 실무에 바로 투입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기업들의 수요가 많다”며 상대적으로 대학교육 후 산업현장에 투입하기에는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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