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 소식을 접한 후 “소프트웨어 역량을 강화하라”는 지시를 내린 지 정확히 석 달이 됐다. 100일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삼성전자의 ‘SW 일류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회사 관계자는 “이 회장이 큰 방향을 지시하면 각 사업부가 일사불란하게 역할을 맡아 움직이는 삼성전자 조직력이 유감없이 발휘됐다”고 평가했다. ◇더 이상 ‘HW 우선’이 아니다=삼성전자 미디어솔루션센터(MSC)에서 ‘삼성앱스’를 총괄하는 권강현 전무는 지난 14일부터 2주일 여정의 아프리카 출장길에 올랐다. 남아프리카공화국·케냐 등지에 숨어 있는 우수 모바일 개발자를 삼성앱스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권 전무는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중동·서남아시아 지역에도 뛰어난 개발자가 널려 있다”며 “그들을 삼성전자 모바일 생태계로 끌어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이달 ‘탈 이통사 생태계’를 선언하고 삼성앱스 독자 노선을 강화했다. 최근 삼성전자 무선사업부·MSC 내부에선 스마트폰을 몇 대 더 파는 것보다 모바일 SW 개발자를 삼성 편으로 만드는 것이 우선시되고 있다. 제조·판매 담당부서보다 9월 신설한 ‘S직군’ 신입사원에게 더 높은 초봉을 지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삼성전자 대리급 직원은 “S직군으로 전환된 동료들도 연봉이 적지 않게 올랐다”고 귀띔했다. 일부 SW 직원은 필기시험 없이 면접만으로 뽑는 파격 채용 전형으로 뽑기도 했다. 전략 스마트폰인 ‘갤럭시 노트’에는 애플의 터치 UI를 압도하는 새로운 터치 인터페이스가 대거 탑재됐다. 애플이 사진을 넘기는 ‘포토 플리킹’으로 특허 시비를 걸어오자 손바닥이나 두 개 이상 손가락을 이용해 각종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조정할 수 있도록 개발한 것. 또 ‘S펜’은 지난 IFA에서 처음 공개한 것보다 정확도를 대폭 높여 출시된다. 이는 ‘무조건 앞서라’는 삼성 특유 철학이 모바일 SW 분야에 반영된 단적인 사례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경쟁사에서 어떤 제품이 나오면 ‘3개월 안에 더 좋은 것을 만들어라’는 지시가 떨어진다”며 “삼성 내부에선 SW 관련 분야에 이런 지시가 잦아졌다”고 말했다. 같은 구글 안드로이드 운용체계(OS)를 쓰면서도 업그레이드가 경쟁사에 비해 월등히 앞서는 것도 마찬가지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LG전자나 팬택 등은 서둘러 안드로이드 업그레이드를 진행하느라 블루투스 기능 등을 빠뜨리기도 한다”며 “삼성전자는 SW에서도 가장 빠르면서 완벽함을 추구하는 기업”이 됐다고 설명했다. ‘바다’나 ‘티젠’과 같은 탈 구글 OS 시장 확대·개발도 가속도가 붙고 있다. ◇내재화 가속도에 ‘SW 블랙홀’ 우려도=갤럭시 시리즈에 탑재되는 미들웨어를 개발하는 중소기업 A사는 올해 전년 대비 20% 정도 매출 하락을 각오하고 있다. 자사가 납품하던 미들웨어 중 일부를 삼성이 직접 개발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A사 사장은 “이 회장의 SW 강화 지시가 떨어진 이후 모바일 분야를 중심으로 ‘SW 내재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상대적으로 협력사 일감이 줄어들게 됐다”고 말했다. 모바일 솔루션 업계는 연말을 ‘2차 위기’로 보고 있다. 오픈소스인 안드로이드 OS가 대세가 되면서 지난해 문을 닫는 기업이 줄을 이은 데 이어 국내 최대 발주기업인 삼성전자가 각종 솔루션을 내부에서 개발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면서 다시 한 번 강력한 업계 구조조정이 진행될 것이라는 우려다. 단순 작업인 소위 ‘노가다 코딩’은 인도·중국 인력에 맡기고 핵심은 직접 하면서 솔루션 업계 위축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외부 인력을 영입하는 속도도 빨라졌다. 개발자가 100여명인 한 중견 SW 기업에선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와 삼성SDS로 여러 개발자가 한꺼번에 이직했다. 한국무선인터넷솔루션협회(KWISA) 관계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우수한 SW 인력이 MSC로 빨려들어가는 형국”이라고 설명했다. 씽크프리 출신인 강태진 전무·박재현 상무와 외국계 기업 출신 조범구 전무·이강민 전무를 비롯해 MSC 외부 인력 비율은 30%에 달한다. 최근에는 KT의 이 모 상무도 MSC로 옮겼다. 정태명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는 “OS의 경우 완벽한 내재화가 답이 되지만, 그 외 분야 다양한 솔루션은 무조건적인 내재화보다 관련 중소기업 생태계가 삼성전자 우군이 될 수 있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표> 이건희 회장 소프트웨어 강화 발언록 “열과 성을 다해 소프트웨어 인력 육성하라. S급 인재 뽑는 데 그치지 말고 일할 수 있는 환경 만들어라”-2011년 7월 29일 선진제품비교전시회“소프트웨어 역량 강화하라. IT업계에는 하드파워에서 소프트파워로 급속한 이동이 일어나고 있다”-2011년 8월 17일 세트부문 사장단회의<표>삼성전자의 소프트웨어 강화 전략 ◇인력 = S직군 신설·SW 인력 처우 강화·외부 인재 영입 확대·개발자 우군 만들기◇내재화 = 외주로 돌리던 물량 중 SW 핵심 부문 내부 개발로 전환◇HW·SW 맞춤=각 스마트기기에 맞춤형 SW 개발로 시너지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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