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가 불거진 지난 2008년 삼성전자는 반도체 부문에서 근 10년 만에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5% 감소한 17조6600억원에 그쳤으며 영업이익률은 1%에도 못 미치는 1300억원을 기록했다. 4분기에는 56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반면에 세계 최대의 파운드리 기업인 TSMC는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같은 해 31.4%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매출도 비록 소폭이나마 성장세를 유지해 3330억대만달러(약 10조원)를 달성했다. 세계 파운드리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TSMC는 지난 2000년 이후 매해 30% 이상의 영업이익률을 기록 중이다. 대만 IT산업계는 “한국에 삼성전자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TSMC가 있다”며 자랑스러워 할 정도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가 반도체 분야의 핵심 성장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해 1월 개최된 반도체전략심포지엄(ISS US) 행사에서 IBS는 미세공정화가 진화될수록 기술적인 한계와 막대한 투자자금 부담 때문에 반도체 팹을 가진 반도체 기업은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130㎚ 공정에서는 150여개의 반도체 기업이 자체 공장을 통해 생산했다면 22㎚ 공정으로 미세화되면 10~12개 기업만이 팹을 보유할 것으로 전망됐다. 실제로 퀄컴, 자일링스, 브로드컴 등과 같은 팹리스 기업 외에도 ST마이크로와 같은 거대 종합반도체기업(IDM) 등도 점차 파운드리 생산 비중을 늘려가는 추세다. 도시바 역시 시스템반도체 부문은 삼성전자에 위탁생산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이러한 추세 때문에 파운드리 산업은 반도체 분야 가운데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전망이다. 시장 조사기관인 아이서플라이에 따르면 파운드리 산업 규모는 지난 2010년 334억달러에서 매년 17% 가까이 성장 2014년에는 492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다. 이는 반도체 전체 성장률인 5% 내외를 크게 초과하는 수치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도 관망세에서 벗어나 파운드리를 핵심 사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비록 선발업체와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삼성전자, 하이닉스, 동부하이텍, 매그나칩 등이 모두 파운드리 사업에 뛰어들거나 역량을 집중하면서 새로운 비상을 꿈꾸고 있다. 지난 2005년 파운드리 사업에 진출한 삼성전자는 세계 최고의 공정을 바탕으로 고객확보에 나서고 있다. 애플의 차세대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인 A4, A5 등을 잇달아 위탁생산하면서 세계 파운드리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TSMC에 앞서 28나노 공정까지 개발한 상태다. 우남성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장은 “파운드리 사업에서 오는 2015년까지 매년 30% 이상의 매출 신장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조사기관들은 규모의 경제나 기술력 등을 감안, 로직 파운드리에서는 TSMC와 글로벌파운드리, 삼성전자 등이 향후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동부하이텍은 아날로그 분야 파운드리에 집중하면서 특화시장의 강자로 부상하고 있다. 동부하이텍은 아날로그(스페셜티) 분야 파운드리에서 지난 2009년 뱅가드를 앞선 데 이어 지난해에도 1위를 달성했다. 올해는 작년 대비 20% 이상 증가한 6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달성하고 반도체 사업 이래 처음으로 순이익을 낼 계획이다. 박용인 동부하이텍 사장은 “아날로그 파운드리는 막대한 투자가 소요되는 로직제품군(마이크로프로세서, DSP)과 달리 기술과 인력이 주 인프라인 만큼 충분히 승산이 있다”며 “후발주자지만 공정혁신을 통해 기술 차별화를 시도했다”고 말했다. 하이닉스도 200㎜팹인 청주 M8라인을 이용한 파운드리를 시작했다. 하이닉스는 우선 CMOS이미지센서(CIS), LCD 드라이브 IC 등과 같은 메모리 공정과 비슷한 제품부터 시작한 후 점차 품목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하이닉스 측은 “M8라인이 LDI나 CIS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최첨단 공정인 50나노까지 적용 가능한 만큼 공정기술력을 바탕으로 사업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라며 “하이닉스의 전 세계 영업망을 통한 실시간 고객 대응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하이닉스의 비메모리 사업이 분사돼 설립된 매그나칩 역시 동부와 마찬가지로 스페셜티 파운드리 사업으로 방향을 전개하고 있다. 매그나칩은 혼성신호, 고전압 CMOS, 전력반도체, 비활성메모리 등 4개 분야에 집중해 고객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국내 파운드리 업체들의 가장 큰 약점은 TSMC처럼 자체 브랜드 제품 없이 위탁생산만을 수행하는 순수 파운드리 업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자체 제품을 생산하기 때문에 이와 경쟁하는 팹리스 혹은 종합반도체 기업의 위탁생산 물량을 받기가 쉽지 않고 일부 고객은 기술 유출가능성을 우려하기도 한다. 팹리스 업체 한 관계자는 “파운드리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과의 신뢰”라며 “중국의 한 파운드리 기업이 위탁생산을 의뢰한 팹리스 기업의 IP를 빼돌린 사례가 드러나 현재도 어려움을 겪고 있을 정도로 파운드리 산업에서 신뢰는 절대적”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파운드리 기업들은 이러한 우려를 철저한 자체 사업과의 분리 운영과 기술지원을 통해 극복하겠다는 의지다. 국내 팹리스 기업들은 미디어텍 등 대만의 팹리스 기업이 TSMC, UMC 등과 같은 대만 파운드리 기업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팹리스 기업으로 발돋움한 만큼 팹리스 산업 발전을 위해서도 파운드리 기업의 성장을 열망하고 있다. 다만 국내 팹리스 기업들은 모두 순수 파운드리가 아닌 만큼 국내에도 순수 파운드리 기업의 탄생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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