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 중이십니다.” 제4회 글로벌 IT CEO상 수상 소식을 전해 듣고, 서울 여의도 케이비테크놀러지를 찾았을 때 직원들 입에서 나온 소리다. 영예의 순간에도 이 회사 대표 조정일 사장(50)은 바이어를 찾아 동남아 시장을 돌고 있었다. 조 사장은 1년중 대부분을 해외에서 지낸다. 글로벌 시장의 중요성을 몸으로 체감했기 때문이란다. 조 사장을 다시 만난 것은 5일 시상식 현장. 그는 전 날 새벽 귀국했다고 말했다. “1998년 설립 이후 교통카드시스템 전문기업으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2001년에는 코스닥에도 무난히 등록했죠. 하지만 이후 2년 만에 경영이 악화됐습니다. 사람도 내쳐보고, 사업 아이템을 바꿔도 봤습니다. 그런데 결국 정답은 해외에 있었습니다. 글로벌 시장을 쫒아 영업하고, 거기에 맞는 글로벌 기술력을 갖추고, 이를 위한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 때 알게 됐습니다.” 창업 직후부터 이 회사는 독자적으로 핵심기술인 운영체제를 개발했다. 전자화폐기반의 폐쇄용 스마트카드의 운영체제도 자체 개발, 부산지역을 기반으로 인프라 서비스를 구축하고 상용화했다. 당시 케이비테크놀러지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90%에 달할 정도로 탁월한 시장 지배력을 보였다. 부산지역 전자화폐 컨소시엄인 ‘마이비’와 역시 전자화폐 컨소시엄인 ‘에이캐시’를 설립한 것도 이때다. 이를 기반으로 서울은 물론,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등 전국으로 외연을 넓히며 인프라를 구축했다. 하지만, 전자화폐와 교통카드시스템 사업으로 창사 이래 순항을 거듭하던 케이비테크놀러지는 극심한 성장통 끝에, 힘들게 일궈온 기존 사업을 모두 버리고 ‘스마트카드’라는 새 포트폴리오를 선택하기로 한다. 전자화폐나 교통카드로는 글로벌 성장이 어렵다는 판단 끝에 내린 조 사장의 결단이자 모험이었다. 조 사장은 “당시 현 사업으로는 도저히 글로벌 성장이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게 됐었다”며 성장동력 변경 이유를 밝혔다. 이 시기가 조 사장에게는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때다. 인프라사업을 중심으로 수수료 기반의 안정적 수익사업 완성을 눈 앞에 두고 있던 바로 그 때, 케이비테크놀러지는 서울시 전자화폐 프로젝트(티머니)의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막판 탈락하고 만다. “당시 사업자 선정 탈락은 중소기업 명함으로 국내 공공사업에 참여하는데 현실적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 계기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외시장에 나가자니 우리의 주력제품이던 전자화폐 기반의 폐쇄적 스마트카드로는 어느 나라에도 발 붙힐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포트폴리오 변경을 단행하게 된 겁니다.” 선택은 탁월했다. 이 회사는 먼저 스마트카드의 핵심기술인 카드운영체계(COS)를 자체 개발, 접촉과 비접촉 방식을 하나의 IC 칩에서 구현할 수 있는 ‘콤비카드(Combi Card)’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는데 성공했다. 또 국내 스마트카드 업체로는 처음으로 차세대 자바카드로 불리는 글로벌 플랫폼 기반의 ‘코나(KONA) 카드’를 순수 기술로 개발해 전 금융기관에 공급, 현재 국내 스마트카드 시장에서 최고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총 5년간 2차 성장기를 보낸 케이비테크놀러지는 이 기간중 ‘스마트카드 플랫폼’은 어느 정도 완성시킨 것으로 자체 분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작년부터는 이 같은 플랫폼 기반 위에 고부가 ‘서비스’를 입히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른바 ‘제3차 성장기’가 시작됐다는 게 조 사장의 설명이다. “현재 우리 사업군은 코나 카드를 비롯해 이동통신사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한 모바일 통신 시장, 공공분야의 전자주민증(NID)·패스포트·헬스카드 사업, 각종 스마트카드 솔루션 개발로 집약됩니다. 이들 사업군은 마치 톱니바퀴가 맞물려 거대한 힘을 만들어내듯 케이비테크놀러지에 새로운 가치와 부를 창출해 줍니다.” 특히 이 회사는 스마트용 IC칩 운영체제(OS) 전문제조 업체면서도, 우리가 매일 쓰는 신용카드와 휴대폰 USIM 카드, 하이패스카드 등 이미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생활 속의 스마트카드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스마트카드 기반의 서비스 제공으로 외연을 넓히기 시작한 첫 해인 지난 2010년, 이 회사는 창사 이래 최대인 851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부가가치가 높은 서비스에 집중하면서, 이 해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 역시 각각 170억원와 111억원을 달성, 전년대비 두 배 가량 뛰었다. “그동안 스마트카드 분야에서 획득한 국제표준인증만 100개가 넘습니다. 이제는 해외 시장에서 글로벌 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태국전자주민증 프로젝트 등 각종 입찰에서 수주 실적을 일궈냅니다. 올해는 바로 이런 글로벌 매출이 눈에 띄게 늘 것으로 자신합니다.” 조 사장은 케이비테크놀러지의 사장이면서도, 본인이 직접 해외시장을 누비며 글로벌 마케팅을 직접 진두지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바이어가 있는 곳이라면 지구촌 어디라도 먼저 달려가 만나야 한다는 게 조 사장의 지론이다. 그 결과 현재 케이비테크놀러지는 전 세계 60여개국에 자사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이를 인정받아 지난해에는 한국수출입은행이 선정하는 ‘히든챔피언 기업’에 꼽히기도 했다. 케이비테크놀러지는 전 직원 중 연구개발 인력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기업의 성장 동력을 이끌 연구·개발(R&D)에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는 조 사장의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사람을 뽑을 때 자신감과 창의성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본다는 그다. 끊임없는 자기 계발을 통해 자신과 회사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라면 케이비테크놀러지의 일원이 될 자격이 있다는 게 조 사장의 설명이다. 실제로 이 회사는 학벌보다 ‘능력’을, 경력보다 ‘신입’을 위주로 필요 인원을 뽑는다. 회사의 미래비전을 함께 이끌어 나갈 인재 양성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는 얘기다. 조 사장은 “지금도 글로벌 인재를 확대하고 장기전략 계획을 수립하는데 중소기업으로서 어려움을 느끼곤 한다”며 “하지만 수직계열화를 통해 시너지를 확대하고 제품 포트폴리오도 지속적으로 넓혀 간다면, 향후 3~5년내 매출액 5000억원은 자신한다”고 말하곤 또다시 출장 가방을 챙겼다. 이번엔 유럽 시장이다. 조 사장은 “특히 러시아와 CIS국가, 동유럽 등은 이제 스마트카드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지역”이라며 “러시아는 현재 우리 제품이 현지 스마트카드 시장의 30%를 점하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현재 케이비테크놀러지의 수출 비중은 매출의 약 60%. 유럽과 중동, 아시아 등 특정 국가에 집중되지 않고 전세계 어느 곳에서도 제품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다. 조 사장은 이번 글로벌 IT CEO상 수상에 대해 “중소기업이, 그것도 IT 소프트웨어 업체가 밖에 나가 고생해가며 싸워 온 노력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다”며 “하지만 한편으로는 갈 길이 멀고, 할 일이 산적한 상황이어서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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