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모듈 업계가 휘청거리고 있다. 계속되고 있는 국제 태양광시장 호황과 최근 원자력발전의 위험에 대한 반등으로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의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그 수혜를 가져갈 수 있는 곳은 ‘태양광 레이스’에서 살아남은 일부에게만 주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듈기업들에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메이저 기업들의 GW급 생산능력은 따라가기 힘든데다, 효율 경쟁에서마저 이들에게 뒤지고 있으니 도저히 수출시장에서 경쟁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 상황. 그나마 국내 기업들의 밥줄이라고 할 수 있었던 발전차액지원제도(FIT)도 올해로 끝나고, 신재생에너지의무할당제(RPS)에 따른 수요는 아직 창출되기 전이라 내수시장마저 말라버린 사면초가 상황이다. 태양광모듈기업들에는 그야말로 올해가 생사의 기로가 될 것으로 보인다. ◇1세대 태양광 모듈기업들 휘청=태양광산업, 특히 모듈부문의 전망이 좋지 않다. 매년 20% 이상 폭발적인 성장세 등 ‘전례 없는 호황’은 중국 등의 특정기업에나 해당되는 얘기다. 세계시장은 급팽창하는데 오히려 국내 기업의 먹을거리는 줄고 있다는 게 태양광업계의 목소리다. 실제로 태양광업계 1세대 기업인 미국의 에버그린솔라는 지난 1월 덴버 모듈공장을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공식적으로는 제조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아시아쪽으로 공장이전을 준비한다고 밝혔지만, 사실상 중국산 저가 모듈의 제조원가 이하로 제품을 판매해야하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에버그린솔라의 지난해 4분기 모듈 제조원가는 1W당 약 1.92달러였는데, 평균 판매가격은 중국산 저가모듈의 영향으로 1W당 1.9달러에 그쳤다. 제조원가 이하로 판매할 수밖에 없어, 팔면 팔수록 손해가 늘어나는 구조였던 것이다. 마이클 엘 힐로우 에버그린 사장은 “중국과 같은 지역에서의 저가 생산 증가와 더불어, 주요 유럽 시장에서의 보조금 삭감이 올 한해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제조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미국은 계속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은 국내 역시 마찬가지다.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국내 모듈생산 메이저라고 할 수 있는 기업들도 지난해 태양전지 값 폭등으로 역마진 상황이 되자 자체브랜드 생산을 포기했다. 대신 이들은 뒤늦게 태양전지 사업에 뛰어든 대기업의 OEM생산 물량을 수주하거나 아예 태양광발전소를 짓는 것으로 적자폭을 최소화하고 있다. 몇몇 모듈기업들의 공장가동률이 50% 이하이고, 그 나마도 아예 공장가동을 멈추고 시장에 매물로 나온 곳도 있다는 흉흉한 소리가 나돌고 있을 정도다. ◇과잉 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모듈시장=글로벌 태양광모듈 기업들의 생산량 확대에 따라 선두그룹을 제외한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IMS리서치는 최근 지난해 태양광모듈 생산능력은 전년대비 70% 확대된 30GW에 달했으며 새해에도 성장을 계속해 전반기에 35GW에 이를 전망이라고 밝혔다. 반면 지난해 100%의 성장을 보인 태양광모듈 설치시장은 올해 20% 미만의 성장률을 기록한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과 이탈리아·체코 등 지난해 태양광 시장 성장을 주도했던 국가들이 새해부터 일제히 보조금을 삭감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독일이 오는 7월부터 보조금을 15% 삭감한다고 발표했으며, 스페인이 45%를 삭감할 예정인데다 체코는 700㎿에 달했던 태양광 발전소 투자 계획을 축소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만 역시 태양광 보조금을 지난해보다 최대 30% 삭감할 것이라는 외신 보도가 나온바 있다.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해 미국 태양광 시장 조사 업체 솔라버즈도 올해 태양광 제조사들의 총 출하량 성장률은 약 46%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반면, 시장 수요는 약 25% 성장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처럼 공급과잉에 따른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면서 경쟁력을 갖춘 선두그룹은 더욱 성장하겠지만 규모가 작은 나머지 기업들은 힘든 시기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선두그룹은 영업이익률이 높고 제품이 검증 된데다 대규모 장기공급계약을 맺기 때문에 시장 성장이 둔화되더라도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나머지 기업들은 판매와 증설 모든 분야에서 선두그룹에 밀리기 때문에 힘든 시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태양광모듈기업들이 떨고 있는 이유다. 또한 공급과잉으로 인한 가격 하락으로 인해 소규모 업체들을 중심으로 활발한 인수합병(M&A)도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올해 4분기에 모듈 가격이 최소 15% 이상 떨어질 것이 점쳐지고 있는 가운데, 가격 하락 압박을 이겨내지 못한 소규모 기업들을 중심으로 인수합병이 더 활발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국내 태양광모듈기업 돌파구는 없나=태양광산업협회에 따르면 원재료인 폴리실리콘에서 잉곳·웨이퍼·태양전지까지의 업스트림은 장치산업인데 비해 모듈이하 시스템 분야까지의 다운스트림은 조립 산업이라 구조적으로 수익률이 낮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폴리실리콘 가격 급등으로 웨이퍼·태양전지 등의 부품가격은 올랐지만, 모듈은 제자리거나 오히려 가격을 내려야 했다. 중국산 저가 모듈과의 치열한 경쟁 때문이다. 또 FIT 일몰에 따른 내수시장 위축 또한 모듈업계를 어렵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모듈업체에 돌파구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국내 모듈기업들의 실적부진에도 불구하고 제품의 완성도가 높은 일부기업들은 실적 호조를 보인 것이 그 사례다. 브랜드 가치가 높고 기술력과 내구성이 우수한 제품을 판매하는 업체들은 프리미엄급 제품으로 인정받아 높은 가격에 판매된다. 중견 태양광모듈기업인 에스에너지는 대기업의 OEM 비즈니스를 통한 수직계열화와 원재료인 폴리실리콘을 매입해 웨이퍼를 외주 생산해 공급하는 수평계열화 전략을 통해 원가절감에 나섰다. 이와 함께 건물일체형태양광시스템(BIPV)·산악형·극지방형·초저가형 모듈 등 수출지역에 수요에 맞는 다양한 제품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태양광설비가 보편화 되면서 소비자의 입맛에 맞춘 제품을 갖춰 한 걸음 더 가까이 나가가겠다는 전략이다. 또 다른 모듈업체인 SDN(옛 서울마린)은 아예 해외에 대형 태양광발전소를 짓는 프로젝트를 추진, 장기 모듈 수요처 발굴에 성공했다. SDN은 남동발전과 불가리아에 42㎿급 동유럽 최대 태양광발전소를 짓고 있다. 불가리아 태양광사업은 총 2142억원이 투자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이와 함께 SDN도 장기적으로는 모듈제품 포트폴리오 다양화 전략도 병행한다는 계획이다. 이민식 산은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태양전지 모듈기업들이 향후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를 위한 설비확충과 함께 브랜드가치 제고, 차별화된 제품개발이 필요하다”며 “모듈가격이 향후 하향 안정화가 예상됨에 따라 원가경쟁력 확보가 중요하므로 잉곳·웨이퍼·태양전지 등과의 적절한 수직계열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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