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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러시아 영화감상평


카테고리 : 레포트 > 사회과학계열
파일이름 :러시아영화감상평.hwp
문서분량 : 13 page 등록인 : yschoo27
문서뷰어 : 한글뷰어프로그램 등록/수정일 : 10.11.19 / 10.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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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설명
러시아의 대표적영화들의 줄거리와 자신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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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함 포템킨

영화의 배경은 1905년 제정 러시아 시대이고, 당시 제정 러시아 함대의 기함이던 전함 포템킨호의 수병들의 반란과 그 수병들에게 공감하여 시위를 일으킨 민중들을 짜르 군대가 학살한 유명한 `오뎃사 학살 사건`이 주요 내용이다. 이런 내용 이외에 요즘의 영화에서는 보편화되어버린 `몽타쥬`라는 편집 기법을 바로 이 에이젠스타인 감독에 의해 첫 선을 보였고 완성되었다는 점에서 영화사에 획을 긋는 작품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에이젠스타인은 바로 이러한 점과 그의 영화에 대한 끝없는 탐구열로 인해 영화학도라면 반드시 거치고 연구해야할 중요 감독으로 지명된다. 에이젠스타인은 한때는 소련 최고의 영예인 문화 영웅 훈장까지도 받았지만 스탈린 치하에서는 그의 영화 이론 때문에 많은 박해를 받기도 한 감독이다. 한동안 국내에서도 그의 이론 및 작품이 금지되기도 했다. 또 이 영화는 영국에서도 1952년에 가서 정치적 금지가 풀림에 따라 상영되었다.

에이젠슈쩨인, 푸도푸킨, 도브첸코 등의 극영화와 메르토프의 실험적 다큐멘타리가 속속 발표되면서 1920년대의 소련 영화는 그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 시기에는 대중들이 영화라는 새로운 예술에 열광하며 이들 젊은 작가들에게 지지를 보내는 한편, 부르조아 예술에 대항하는 사회주의적 예술양식으로써 영화의 본보기를 찾으려는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다.

1905년 일어났던 제1차 혁명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영화는, 불과 27세였던 에이젠 슈쩨인이, 당시 소련연방 중앙 집행위원회의 `1905년 혁명기념위원회` 아가쟈노바 슈트코의 시나리오(1905년) 연출을 맡게 됨으로써 인연은 시작되었다. 그해 7월에 <1905년>을 포템킨호의 봉기에 중점을 두는 것으로 전환, 각색하여 만든 것이 바로 <전함 포템킨>이다. 이 영화는 한 사건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드라마이며 연극 구조처럼 보이는 5막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 영화의 절정은 오뎃사 계단의 시민 학살 장면이다. 계단 위에서 반란군에 환호하는 시민들, 그러나 돌연 짜르의 진압군이 나타나고, 시민들은 혼비백산하여 흐트러진다. 일렬로 다가오는 진압군과 도망가는 시민들을 에이젠슈쩨인은 그 유명한 몽타쥬 기법으로 대비시켰다. 에이젠 슈쩨인은 영화의 리얼리티를 위해 직업 배우의 연기가 아닌 진짜 수병들과 오뎃사 시민들을 영화에 출연시켜 또다른 생동감을 준다.

특히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브라이언 드팔마 감독의 언터치어블에서 열차역 사내에서 유모차가 굴러 내려가는 장면은 이 전함포템킨에서 차용된 부분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을 오마쥬라고 하는데 명작에 존경을 표하는 의미에서 차용한다고 한다.








문화와 예술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피의제국 러시아를 보고 표트르대제가 세운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도시가 알고 싶어졌다.
사람 뼈위에 세워진도시 하지만 너무도 아름다운 도시 역설적인 상트페테르부르크..
누가 그랬던가. 이 도시를 알게 되는 것은 하나의 기적과 같다고. 북위 60도에 위치해 있으며, 아름다운 핀란드만에 맞닿은 이 도시에는 한여름 내내 해가 지지 않는 백야(白夜)가 계속된다. 지금으로부터 꼭 300년 전 네바강 삼각주의 늪과 섬에 지어진 이 ‘물 위의 도시’는 이제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문화유산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Sankt Peterburg)’, 우리에겐 옛 소련(현 러시아)의 레닌그라드로 잘 알려진 이 항구도시에는 무려 86개의 강과 운하, 101개의 섬이 있다. ‘북방의 베네치아’ ‘제2의 암스테르담’이라고 불리는 이곳에는 운하와 강 사이로 그 하나하나마다에 러시아 근세사의 애증이 짙게 스며들어 있는 화려한 궁전과 유럽풍의 각종 건축물, 대사원, 성당들이 자리잡고 있다. 러시아 문학을 사랑하는 이에겐, 특히 푸시킨이나 고골리,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애독한 사람들에겐 이 도시의 지명과 건축물의 이름들이 전혀 낯설지 않다. 이들의 작품 대부분이 페테르부르크 곳곳을 배경으로 해 씌어졌기 때문. 페테르부르크가 세계적인 문화·예술의 도시로 추앙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만명 목숨 희생 … 사회주의 혁명 출발점

제정 러시아 시대의 영광과 예술성이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는 페테르부르크는 기적의 도시이자 혁명의 도시다. 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 최초의 황제인 표트르 대제(피터 대제)가 1703년 ‘서유럽으로 가는 창’ 역할을 할 새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야망으로 9년에 걸쳐 완성한 계획도시. 하지만 네바강 삼각주와 핀란드만이 만나는 곳에 위치해 스웨덴을 포함한 서방세계로 진출할 요지였던 이곳에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수만명의 하층민들이 죽어갔다. 건축가, 기사들이 전국에서 징용되거나 해외에서 초빙되었고, 4만명의 농노와 5000명의 기능공들이 동원됐다. 핀란드어로 늪을 의미하는 네바강 삼각주의 습지와 밀림에서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어간 사람들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푸시킨이 그의 서사시 ‘청동기사’에서 페테르부르크를 ‘인간의 뼈 위에 건설된 도시’라고 비아냥거린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기적의 도시는 그렇게 해서 완성됐고, 표트르 대제는 1712년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이곳으로 옮겼다. 페테르부르크라는 지명도 표트르 대제가 자신과 성인 베드로를 따 지은 것이다.

민중에 의해 세워진 로마노프 왕조는 황제들의 사치스런 예술적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오히려 민중을 착취했다. 로마노프 왕조는 210여년 동안 민중의 뼈 위에 건설된 이 도시에 30여곳이 넘는 호화스런 궁전과 성당, 사원을 짓기 위해, 또 이곳을 장식할 수십t의 황금과 보석을 확보하기 위해 민중을 수탈하고 전쟁을 계속했다. 역설적이지만 러시아 황실의 심장이었던 바로 이곳에서 1905년 5월, 10월 혁명과 1917년 10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시작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러시아 황실의 자랑거리였던 수병(水兵)들은 황제가 사는 궁전을 향해 사정없이 대포를 쏘아댔고, 그것은 사회주의 혁명의 신호탄이었다. 페테르부르크에 레닌 동상이 유난히 많은 것도 이곳이 레닌의 고향이자 사회주의 혁명의 불을 당긴 곳인 까닭이다. 페테르부르크라는 지명은 1924년 레닌 사망 후 레닌그라드로 변경됐다가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고 난 후에야 다시 옛이름을 되찾을 수 있었다.하지만 이런 뼈아픈 ‘민중 동원’과 ‘착취’의 역사는 이제 찬란한 문화재와 예술작품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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