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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사의 사회와 사상


카테고리 : 레포트 > 사회과학계열
파일이름 :한국사의 사회와 사상.hwp
문서분량 : 106 page 등록인 : nayaleejk
문서뷰어 : 한글뷰어프로그램 등록/수정일 : 10.06.13 / 10.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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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설명
한국의 탄생시기 부터조선후기까지의 국가의 탄생과정, 제도, 군사, 경제, 사회생활, 문확과 음악 및 사상을 중점으로 분석한 자료 [이용대상]
본문일부/목차
【미술】 고구려 예술의 특징은 와당(瓦當)의 귀신상(鬼神像)과 사신도(四神圖)의 벽화에서 볼 수 있듯이 힘과 정열이 넘치고 있는 점이다. 특히 미술은 고분(古墳:굴식돌방무덤)에서 그 대표적 예를 찾아볼 수 있는데, 무용총·수렵총·각저총(角抵塚) 등의 초기 벽화는 고졸(古拙)하고, 감신총(龕神塚) 등 중기의 그림은 섬세하며 사실적(寫實的)이고, 사신총(四神塚) 등 후기 벽화는 웅대하며 건실하다. 강서고분(江西古墳)에 그려진 사신도(四神圖)는 벽화 중에서 최우수 작품으로 흑·백·청·주홍·갈색 등으로 빛깔의 조화미는 물론, 힘과 패기가 넘치며, 쌍영총(雙楹塚)의 기마상(騎馬像)·남녀입상(男女立像), 30여 인물행렬도와 풍속도는 당시의 풍속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불교】 372년(소수림왕 2) 전진(前秦)의 왕 부견(竪)의 명으로 순도(順道)가 불경(佛經)과 불상(佛像)을 가져왔고, 374년에는 동진의 승려 아도(阿道)가 들어와 불법을 전파하였다. 고국양왕(故國壤王:재위 384∼391) 때는 영(令)을 내려 불법을 숭상하도록 권장하였고, 광개토대왕 때인 392년에는 평양에 9개의 절을 지었으며, 395년에는 동진의 승려 담시(曇始)가 들어와 활발히 전도하였다. 평원왕(平原王) 때 승려 의연(義淵)은 위(魏)·제(齊)나라의 양대 고승인 법상(法上)에게 불교사를 배웠다. 영류왕(榮留王) 때 혜관(慧灌)은 625년 일본에 건너가 삼론종(三論宗)의 개조(開祖)가 되었고, 평원왕 때 담징(曇徵)은 일본의 호류사[法隆寺] 금당(金堂)의 벽화를 그렸으며, 지묵·맷돌 등을 전하였다. 특히 혜량(惠亮)은 신라에 들어가 진흥왕 때 국통(國統)·주통(州統)·군통(郡統)의 교단조직에 공헌, 초대 국통이 되었으며, 영양왕 때 보덕(普德)은 연개소문의 도교(道敎) 장려로 백제에 들어가 열반종(涅槃宗)을 개창(開創)하였다. 고구려에서 유행된 종파는 대승불교(大乘佛敎)인 삼론종이었다.

【도교】 도교(道敎) 전래에 관한 기록은 624년(영류왕 7) 당나라 고조 이연(李淵)이 도사(道使)를 파견하여 도법(道法)을 강론하도록 한 것으로 되어 있다. 643년 보장왕(寶藏王) 때 연개소문의 도교 장려책으로 숙달(叔達) 등 도사 8명이 입국하였다. 이때 불교를 탄압하였으므로 보덕이 백제로 망명하는 등 불교세력이 쇠퇴하였다.

【풍속】 고구려인은 검소·청결하고 상무적(尙武的)이며 기사(騎射)에 능하였다. 가옥은 왕궁과 관청·사원 등에만 기와를 덮고, 일반 민가는 초가(草家)였으며 온돌을 사용하였다. 귀족의 모자는 소골(蘇骨)이라고 하여 깃[羽]과 금으로 장식한 비단으로 된 관을 썼으며, 관리는 등급에 따라 복색(服色)이 다르고 무사(武士)는 절풍(折風)이란 건을 썼다. 여자는 머리에 수건을 쓰고 주름잡은 치마를 입었으며, 남자는 큰 소매가 달린 저고리와 통넓은 바지를 입었고 상투를 틀었다. 상류층에서는 바둑·투호(投壺)·축국(蹴鞠) 등 대륙식 오락을 즐겼고, 하류층에서는 무도·음악·석전(石戰)·씨름 등을 즐겼다. 장례(葬禮) 풍속은 껴묻거리를 관 속에 넣는 후장(厚葬)의 풍속이 있었다. 특히 10월에는 시조신(始祖神)을 모시는 동맹(東盟)이란 제전을 열어 부족의 전통을 재확인하고 결속을 강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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