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공급망관리(SCM)는 눈에 보이는 제품이나 부품이 주된 대상이었다. 많은 기업이 재고를 줄이고 물류 거리를 짧게 함으로써 생산과 판매에 소요되는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변화하는 경영환경과 비즈니스 모델에 따라 새로운 개념의 공급망관리(SCM) 기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이산화탄소 배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이산화탄소 저감을 목표로 한 새로운 SCM 기법이 관심을 모으고 있으며, 세금을 낮출 수 있는 절세 SCM도 해외에서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또 콘텐츠 중심의 생태계가 중요한 경쟁우위 요인으로 부상하면서 온라인 비즈니스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SCM 역량을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소위 넥스트(Next) SCM 이라고 일컫어지는 새로운 SCM 기법에 대해 알아본다.
◇지속가능 경영을 위한 ‘그린 SCM’ 제조, 유통, 물류 등 각 산업마다 쟁점 사안은 다르지만 SCM 전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임으로써 ‘친환경’ 기업으로 거듭나는 것은 모든 기업들의 공통된 고민이다. 특히 2013년부터 우리나라도 2차 온실가스 의무감축 대상국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국내 기업들이 최근들어 가장 주목하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친환경 SCM이라고도 불리는 그린 SCM은 지구온난화에 대응해 지속가능 경영을 구현하는 것을 핵심 과제로 삼고 있다. 때로는 기존 방식의 SCM 효율화가 아닌 통합적인 관점에서 물류 체계를 새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기업과 기업의 협업도 중요시되고 있다. 그린 SCM 전략은 해외 기업들이 한발 앞서 추진하고 있으며, 해외에서는 운송수단을 트럭에서 철도 혹은 선박으로 교체하거나, 여러 기업의 화물을 공동으로 운송하는 기법에서 더 나아가 이미 유통업체와 제조업체, 또 제조업체와 협력업체간 협업으로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유통업체의 경우 월마트와 테스코가 눈에 띈다. 월마트는 2015년까지 글로벌 SCM 경쟁력을 높여 2000만 톤의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고 선언했고, 테스코는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이들은 제조업체와의 협업을 중요시하고 있으며, 월마트는 자사에서 판매되는 제품에 대한 유해물질량을 관리하기 위해 주요 제조업체들과 협업에 나서고 있다. 테스코와 P&G는 테스코의 물류 트럭으로 P&G의 제품을 물류 창고로 통합 배송하게 해 CO2를 많이 줄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두 회사가 각각 물류 최적화를 추진하는 경우보다 더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저감할 수 있다. 이 같은 유통-제조업체간 친환경 SCM 협업 사례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제조업체의 경우 제품 구매부터 유통 단계까지 공급망 전반에 걸쳐 유해물질 감소량을 감축하기 위한 노력을 서두르고 있다. 이를 위해 자사뿐 아니라 구매할 재료 및 부품 협력업체의 유해물질 관리 역량도 중요해졌다. 코카콜라는 구매부터 유통까지 △탄소배출 △냉매재·에너지 효율 강화 △물 사용량 △포장재 등 4가지 측면에서 전략 마련하는 한편 협력사들의 오염물질 배출량도 자사 책임하에 관리하고 있다. 제조 업체간 협업도 확대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일철물류 등 8개 기업이 각기 4톤 트럭으로 수송하던 각 회사 화물을 한번에 15톤 트럭으로 공동 수송해 온실가스를 40% 가량 절감시킨 사례도 있다. 그러나 아직 국내에서는 이렇다할 사례가 없다. 물류업계의 행보도 발빠르다. DHL은 물류 공급망 전반에 걸쳐 측정, 감축, 상쇄의 세 가지 방법을 통해 운송 중 발생할 수 있는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고그린(GoGreen)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세금 줄여 수익극대화 노리는 ‘절세 SCM’ ’절세(Tax Effective) SCM’(TESCM)은 ‘세금’ 관점에서 SCM을 최적화함으로써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직 국내에서 가시화한 것은 아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국내 기업들도 서서히 관심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제조기업을 중심으로 기업의 손익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세금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최적의 물류네트워크 안에서 지주회사와 공장을 배치하고 거래 흐름을 관리해 공급망 최적화와 세금 절감 효과를 동시에 꾀하는 것이 절세 SCM의 핵심 목표다. 예를 들어 법인세율이 낮은 국가에서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다면 세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이 때문에 해외에 공장을 설립하거나 활발하게 해외 진출을 시도하는 중견 기업들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언스트앤영, 딜로이트 등 컨설팅 업체들이 국내 기업들을 대상으로 절세 SCM의 중요성을 알려나가고 있다. 국내의 경우 삼성전자나 LG전자 등 대기업들의 경우 본사가 국내에 소재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 해외 기업들처럼 지주회사나 본사를 옮기는 전략을 구사할 확률은 낮다. 하지만 많은 기업들이 물류센터 혹은 생산 공장 설립시 물류네트워크를 세금과 연관해 최적화함으로써 세금 우대 효과를 얻으려는 전략을 검토하고 있다. 절세 국가로 인기가 높은 곳은 홍콩, 싱가포르, 스위스 등지가 주로 고려되는 국가다. 아시아태평양지역의 경우 세금혜택이 큰 싱가포르를 최적의 물류 기지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많다. 레노보는 세금 경감을 위해 중국에서 싱가포르로 물류 기지를 이전한 대표적인 경우다. 이외에도 많은 기업들이 싱가포르에 지주회사를 설립한 후 아시아 지역 전체 운영을 담당하도록 하고 생산기획, 설계, 연구개발, 판매관리 등 기업의 핵심역량이 집중된 업무를 싱가포르로 이관시켰다. 예를 들어 기존에는 중국에서 생산해 호주에 수출하고 호주 법인이 직접 판매했다면, 싱가포르 법인이 직접 원재료를 구입해 중국에 가공 의뢰 후 호주에 수출하고 호주 법인이 판매하게 할 겨우 절세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언스트앤영 조상욱 부대표는 “언스트앤영 조사결과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TESCM을 도입한 회사 중 72% 이상이 최소 5%이상의 순익증가 효과를 보았고, 44% 이상이 25% 이상의 유효세율 절감 효과를 얻었다”며 “절세 SCM을 도입하기 위해 지주 회사의 △위치 △유효 법인세율 저감 계획 △재무제표 기능통화(Functional Currency) △법인 설립과 이전에 관련된 이슈 사항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직별 운영 프로세스의 권한과 책임을 어떻게 본사와 현지에 배분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제품보다 콘텐츠, ‘디지털SCM’ 휴대폰 시장이 기능 경쟁에서 애플리케이션과 앱스토어 경쟁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는 모바일 산업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제는 콘텐츠 공급망의 경쟁력이 제조 기업들의 또다른 핵심 역량으로 떠올랐다. 애플리케이션과 앱스토어, 고객을 잇는 디지털 SCM 역량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온라인 시장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사진, 음악, 동영상 등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구매가 급증하고 최근 스마트폰의 급속 확산으로 모바일 콘텐츠 시장이 가열되면서 많은 기업들의 수익창출 기반 자체가 실물 제품이 아닌 디지털 콘텐츠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애플의 아이튠스와 앱스토어가 대표적인 예다. 애플은 이같은 온라인 콘텐츠 유통 역량을 통해 재고와 물류가 없는 공급망을 실현했다. 이는 아이폰, 아이팟 같은 자사 제품 판매로 이어지고 있다. 플랫폼 SCM의 강자인 노키아도 휴대폰 판매보다 모바일용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탈바꿈한다는 계획 하에 자사의 애플리케이션스토어인 ‘오비스토어’ 등을 통한 온라인 콘텐츠 공급망 향상에 집중하고 있다. 세계적 리서치회사인 AMR리서치는 디지털 SCM을 두고 ‘창고가 데이터센터로 대체되고, 상자는 비트(Bit) 단위로, 트럭은 대역폭(bandwidth)으로 대체되고 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컨설팅회사인 캡제미니가 디지털 SCM 방법론을 개발한 바 있으며 아직 국내에서는 많이 확산되지 않은 개념이다. 디지털 SCM 경쟁력은 혁신적인 아이디어에 기반을 두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전통적이 제품과 실물 생산에만 치중하고 있는 제조기업들의 경우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얻기가 쉽지 않다. 웬만큼 혁식적인 비즈니스모델이 아니라면 선발 주자들의 진입장벽을 넘어서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할 수도 있다.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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