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대부분의 차세대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는 정보전략계획(ISP) 수립 단계를 거쳐 발주사와 사업자가 턴키 계약을 맺고 분석, 설계, 구축, 테스트 등 일련의 공정을 연이어 수행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이 방식은 전체 일정을 중단 없이 진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적어도 1∼2년이 소요되는 차세대 프로젝트의 성격상 전체적인 범위와 공수산정이 쉽지 않아 프로젝트 후반부로 갈수록 프로젝트가 지연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당연히 발주사는 물론 사업자의 불만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최근 차세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한국투자증권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분석, 기본설계 과정과 상세설계, 개발 과정을 1, 2 단계로 나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차세대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한국투자증권이 내건 슬로건은 ‘최고의 산출물을 만들자’는 것이다. 품질을 최우선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면 인력, 비용, 기간, 사업범위, 자원 등 모든 요소들이 톱니바퀴처럼 전체 계획과 맞물려 돌아가야 했다. 이를 위해 한국투자증권이 선택한 방법은 전체 프로젝트를 분석과 기본설계로 이뤄진 1단계와 상세설계와 구축을 진행하는 2단계로 나눠 추진하는 것이다. 프로젝트 단계별 분리 발주는 국내에서 기존에 진행된 대형 프로젝트들 중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시도였다. 프로젝트 단계별로 분리 발주를 하게 되면 우선 전체적인 사업 기간이 길어질 가능성이 있다. 또 1단계와 2단계 사업자가 다를 경우 사업자 선정을 두 번 해야 하고 이에 따른 내부 의사결정 프로세스도 두 번에 걸쳐 진행해야 하는 등 일정지연 요소가 생길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2단계 사업자가 1단계 산출물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사업 이행 기간이 추가로 필요하고 제대로 된 양질의 산출물을 얻기 힘들다.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일정이 지연돼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프로젝트의 금액과 규모가 몇 배로 커지다 보니 머릿속 생각과 예상만으로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세우기가 쉽지 않다. 본격적인 개발 과정에 들어가면 전체 업무범위가 처음에 예상했던 것보다 커지거나 작아지는 일이 흔하게 발생한다. 이는 발주사나 사업자 모두에게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한국투자증권이 과감하게 프로젝트 단계별 발주 방식으로 차세대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정확한 공수산정을 통해 개발업체에게 합당한 대가를 지불할 경우 프로젝트 단계별로 수준 높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이는 결국 전체 프로젝트의 성공에 기여할 것이라는 판단인 것이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1, 2단계의 사업자가 바뀌는 데 따른 리스크를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2단계 사업자가 1단계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경우 프로젝트가 원활히 진행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2단계 사업자 모집을 위한 제안요청서(RFP)를 발송할 때 미리 필요한 사항들을 담았다. 즉 ‘수행사가 바뀌게 되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과제를 제시했고, SK C&C는 2단계 프로젝트 시작 한달 전에 인력을 투입해 1단계 산출물을 내재화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2단계 프로젝트의 시작은 2010년 2월 15일이었지만 SK C&C는 1월 중순부터 이미 인력을 투입해 둔 상태였다. 1단계 분석과 기본설계를 진행했던 한국IBM은 사업관리 위주의 업무를 맡았고 실제 설계는 협력업체 위주로 진행했다. 한국투자증권은 2차 RFP에 이 협력업체의 핵심 인력들을 2차 프로젝트에 투입할 것을 공지했다. 1단계에서 핵심 업무를 맡았던 프로젝트리더(PL), 특급 인력, 고급 인력 등 총 20여명이 2단계에 투입됨으로써 프로젝트 초기 우왕좌왕하는 일을 막을 수 있었다. 이들은 상세설계가 70% 이상 진행된 현재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1, 2단계 분리에 따른 리스크를 줄일 수 있었다고 한국투자증권측은 전했다. 프로젝트 분리 진행에 대한 우려 중 하나는 전체 일정이 늘어나고 비용도 증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중간에 1단계 프로젝트의 결과물 분석과 이에 맞는 2단계 사업자 선정, 협상 과정이 포함되기 때문에 전체적인 일정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병성 한국투자증권 IT전략기획부장은 “2008년 1월 ISP 수립을 시작으로 내년 4월까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때문에 전체 일정은 3년이 넘게 된다”면서 “하지만 본 과정인 분석, 설계, 구축, 테스트만 놓고 보면 타사와 비교해 결코 기간이 길지 않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지난해 차세대시스템을 오픈한 H증권과 비교해 보면 H증권은 분석 단계부터 설계, 구축, 테스트를 거쳐 오픈 시점까지 총 19개월이 걸렸고, 한국투자증권 역시 19개월이 걸려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한국투자증권 차세대 프로젝트의 프로젝트관리조직(PMO)을 맡고 있는 정승원 삼정KPMG 부장은 “프로젝트 단계별 분리 발주는 프로젝트 방향성에 대한 충분한 검증 기간을 가짐으로써 최초 설정한 프로젝트의 목표달성 가능성을 높이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체 범위와 규모의 객관적인 중간 검증, 신규 업무와 요건의 유연한 적용, 사전 방향성 논의를 통한 신규업무 목표 달성률 제고, 기본 설계 사상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점이 프로젝트 분리 진행의 또 다른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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