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유해물질의 안정성에 대해 논란이 일면서 주요 국가의 환경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2010년 이후 예상되는 미국·EU·일본·중국·캐나다 등 주요국의 환경규제 항목을 보면 총 25개로 전기전자·자동차·화학 등 분야도 다양하다. 환경정책을 명분으로 내세워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녹색보호주의 논란도 거세질 전망이다. 이는 환경규제에 대한 공감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문제는 이러한 환경규제가 국가간 무역장벽으로도 작용한다는 것이다. EU를 중심으로 한 신화학물질관리제도(REACH)나 유해물질 제한지침(RoHS)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세계 각국의 환경규제를 보면 온실가스와 에너지 효율, 유해물질 규제가 핵심이다. 특히 최근의 친환경 바람을 타고 세계 각국의 환경규제가 더욱 강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 국내 기업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환경규제 품목 확대=KOTRA에 따르면 환경규제가 적용되고 있는 품목군은 전기전자·기계·자동차·화학제품 등 사실상 거의 전 품목을 포괄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화석연료의 고갈 가능성과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에너지 사용기기에 대한 규제가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환경규제가 기업 활동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제품과 서비스의 환경성에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환경규제가 추진됨에 따라 제품의 설계 단계에서부터 제조·유통·사용·폐기 등 전 과정이 규제 대상이다. 온실가스 및 에너지 사용규제 강화에 따라 환경규제가 기업 활동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확대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실제로 EU의 에코디자인 지침 적용대상 품목에 우리 주력 수출품목인 냉장고·TV 등 가전제품이 지난해 추가된 바 있다. 또 ‘오염자 책임 원칙’을 기초로 유해 화학물질 및 폐기물 관리에서 제조업체가 생산부터 재활용까지 환경 책임에 대한 의무를 갖도록 하는 추세다. 미국의 경우 독성물질규제법(TSCA) 개정 시 기업의 화학물질에 대한 안전성을 입증토록 하고 있으며 주별로 전자제품 제조업체의 폐기물 회수 의무를 강화하고 있다. EU는 폐가전지침(WEEE)을 개정할 때 폐기물 관리에 있어 제조자와 수입자·유통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처럼 주요국은 환경규제 강화로 자국 산업이익 보호하는 성향을 나타낸다. 전략적 신성장동력인 환경산업 관련 자국 기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한편 각종 환경규제를 강화해 자국 녹색시장 진입장벽을 강화하는 형태다. 각종 환경규제 조치는 환경산업 발전의 촉매제 역할을 하는 동시에 환경 보호를 빌미로 개도국의 선진국 진출에 보이지 않는 무역 장벽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늘어나는 규제=주요국들의 환경규제 동향을 살펴보면 온실가스 배출규제가 우선이다. EU는 올 상반기 중 2013년부터 적용될 온실가스 배출량 허용치를 EU 차원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미국은 배출권 거래제를 통해 온실가스 배출을 제한하는 청정에너지안보법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2020년까지 2005년 대비 17%, 2050년까지 83%의 온실가스 감축을 규정하는 법안이 하원을 통과했다. 일본은 올해 안에 ‘지구온난화대책기본법’을 제정해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온실가스 거래제 도입, 지구온난화 대책세 도입, 고정매수가격제도 등을 통해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25%, 2050년까지 80% 줄인다는 게 목표다. 중국의 경우 코펜하겐 합의문에 따라 2020년까지 GDP 당 탄소배출량을 2005년 대비 40∼45% 감축한다는 계획안을 지난 1월에 제시한 바 있다. 탄소배출 목표가 법적 구속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 강화도 주목해야 한다. EU는 2009년 자동차에 대한 탄소 배출규제에 이어 2010년 중에는 2016년까지 신규 등록 밴 차종의 배기가스 배출허용 한도를 평균 175g/㎞로 제한하는 내용의 규제를 채택할 것으로 전망된다. 프랑스의 경우 올 하반기부터 탄소세를 시행한다고 밝힌 바 있다. 에너지 효율 규제도 본격화된다. EU가 주도하고 있다. EU는 에너지 효율을 20% 끌어올리기 위해 에코디자인 지침, 에너지 라벨링 제도를 적용한 품목을 확대하는 등 에너지 효율 기준을 높여가고 있다. 건물 에너지의 효율도 높여야 한다. 지난해말 EU 의회와 이사회가 건물에너지 효율 지침 강화안에 합의함에 따라 올해 안으로 법규가 확정될 전망이다. 이미 REACH를 통해 유해물질을 가장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는 EU뿐만 아니라 미국·중국에서도 유해물질로부터 안전성 확보를 위한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특히 EU에서는 별개로 있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가 다른 화학물질과 함께 인체에 흡수될 경우 유해한 부작용을 일으키는 혼합 화합물(케미컬 칵테일)에까지 규제 범위를 확대하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녹색보호주의 논란 심화=홍콩상하이은행(HSBC)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에너지 효율·수자원 관리 및 폐기물 처리·환경금융으로 구성된 세계 기후변화 비즈니스시장이 2008년 5300억달러에서 2020년 2조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신성장동력으로 부상하는 녹색산업에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각국의 움직임이 발 빠르게 진행되고 코펜하겐 회담에서 국제적 합의 도출에 실패하면서 녹색보호주의 논란도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수입품에 대한 탄소관세 부과 문제가 EU에서 적극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을 필두로 코펜하겐 회의가 구속력 있는 합의 도출에 실패하자 엄격한 기후변화 조치를 취하지 않는 중국 등 국가에서의 수입제품에 탄소관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는 것이다. 이에 코펜하겐 기후회담 이후 탄소누출 위험으로부터 EU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을 협의해 온 EU 회원국도 입장을 바꾸기 시작했으며 EU 이사회도 탄소관세를 재검토한다는 입장이다. 또 EU는 현재 검토 중인 신폐가전지침 적용 품목에 태양광 패널을 포함시키는 것을 검토 중이다. 태양광 패널에 포함된 카드뮴·납 등 위험물질로 인한 오염을 줄이고 재생률을 높이기 위한다는 명목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신규 유망 수출품목으로 부상 중인 태양광 패널 산업에 영항을 미칠 수도 있다는 평가다. ◆한선희 KOTRA 통상조사처장 “환경규제는 세계적 트렌드입니다. 우리나라 정부도 녹색성장을 미래 비전으로 제시하고 관련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녹색관련 기업들의 정보는 취약한 상황입니다.” 한선희 KOTRA 통상조사처장은 “우리 기업들이 환경규제에 대해 크게 신경쓰고 있는 거 같지는 않다”며 이같이 밝혔다. 한 처장은 환경규제가 비록 트렌드이긴 하지만 현실로 나타나면 이미 늦는다고 지적한다. 기후변화 대응 기술 개발이 1∼2년 안에 되는 것도 아니고 기술 개발이 되더라도 상용화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설명이다. 녹색 관련 정보와 환경규제 동향을 보고 기업들이 트렌드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녹색기술과 제품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최근엔 예전처럼 무역규제 장벽인 상계관세나 반덤핑을 쓰기도 힘든 상황이죠. 환경규제가 새로운 무역장벽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위기인 동시에 기회기도 하죠.” KOTRA의 역할이 큰 이유다. 세계적인 환경규제 트렌드에 발 맞추기 위해서는 KOTRA의 관련 정보가 필수다. 해외에서도 KOTRA의 현지화된 정보는 해외 진출 기업이라면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주요 선진국의 경우 소비자 측면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소비자들의 환경에 대한 인식이 매우 높아져 있기 때문입니다. 유럽이 특히 그렇습니다.” 한 처장의 말처럼 실제 선진국 소비자들은 환경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굉장히 높다. 친환경 상품이나 에너지효율이 높은 제품은 구매 우선대상이다. 규제뿐만 아니라 제품 선호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 자체가 친환경적인 기술과 상품 쪽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규제가 많아지면 성장이 저하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가치판단이 중요한 이유다. 한 처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산업기술경쟁력에 비해 높은 수준의 녹색정책을 추구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라면서도 “우리의 기후변화대응 수준은 중간 정도라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선진국 위주로 녹색산업이 육성돼 왔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녹색관련 세계적 기업이 없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현재 빠른 속도로 선진국을 쫓아가고 있는 것이죠. 당장은 환경규제가 우리에게 영향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각국에서 제도화 될 것입니다. 녹색으로 발전방향을 인위적으로라도 전환해야 합니다. 환경규제는 선진국으로의 진입을 막는 장벽이 될 수도 있습니다.” 유창선기자 yuda@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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