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재미교포 김종훈씨는 자신이 세운 광통신 부품업체인 유리시스템즈를 10억달러에 글로벌기업인 루슨트테크놀로지스에 매각했다. 당시 유리시스템즈의 사례는 외환위기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던 한국 기업인에게 성공신화로 인식됐다. 유리시스템즈의 매각은 기업을 창업한 뒤 회사와 흥망성쇠를 같이하는 것을 창업자 또는 경영자의 최고덕목으로 여겨온 국내 최고경영자(CEO)에게 인수합병(M&A)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지난 2000년 초 업계 4위인 네이버컴은 100억원대 투자를 유치했지만 수익모델 부재로 고민하고 있었다. 한게임도 회원 1000만명 돌파를 목전에 뒀지만 속으로는 애가 탔다. 회원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지만 시스템이 급속한 성장세를 뒷받침하지 못하면서 절박한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네이버는 핵심 사업인 검색을 야후, 라이코스 등과 같은 글로벌업체보다 훨씬 늦게 시작했다. e메일이나 커뮤니티서비스 등은 다음보다 늦었다. 시기 면에서뿐 아니라 인적 자원이나 서비스 질에서도 검증되지 않은 후발주자였다. 이해진 네이버 사장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게임업체 한게임을 합쳐 NHN을 만드는 결단을 내렸다. 발상 자체가 파격인 이 결단으로 네이버는 한게임의 회원 기반으로 탄력을 받고, 한게임은 네이버와의 합병으로 자금 조달이 쉬워지는 등 예상을 뛰어넘는 시너지 효과를 만들었다. 한게임과 네이버의 합병은 국내 비즈니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M&A 사례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이처럼 전문가들은 대기업에 비해 규모, 수익성, 자본, 경영능력 등이 취약한 중소·벤처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기업 M&A 활성화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M&A가 활발히 이뤄지지 않고서는 벤처 생태계의 역동적 발전과 사회 전반적인 기업가 정신이 활성화되기 힘들다. 혁신적인 사고와 우수한 기술을 가진 벤처기업이라 하더라도 마케팅 능력 부족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경우들이 있다. 이 같은 기업에 M&A는 한 단계 도약하고 영속성을 보장하는 계기가 된다. M&A를 통해 자금투자가 확대되고 우수 전문인력이 창업을 발판으로 성공하는 모델이 많아질 때 일자리 문제와 혁신산업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 또 M&A는 시장의 경쟁강도를 낮추어 수익성을 높임과 동시에 성공 가능성이 낮은 기업이 적당한 시점에 투자 회수를 거쳐 시장에서 떠날 수 있는 수단으로 유용하다. 금융위기 발생 이후 대기업과 달리 구조조정이 미흡했던 중소기업에 대한 부실기업의 정리 측면과 벤처캐피털이 투자한 벤처기업에 대한 M&A의 회수 비중 확대 차원에서도 절실히 요구된다. 벤처 캐피털은 회수 시장이 있어야 투자를 하는데 대표적인 회수수단인 IPO의 경우 창업 이후 평균 10년이 걸린다. 하지만 회수에 10년이 걸린다면 벤처 캐피털은 창업벤처 투자를 꺼리게 된다. 한국에서는 5년 이상을 기다리는 투자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한국 벤처 생태계의 완성은 2중 순환 구조를 갖는 투자 회수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미 활성화된 코스닥은 벤처 생태계 후반부의 순환 즉 창업 5년에서 코스닥(평균 10년)까지를 담당하고 있으므로 그 전반부의 선순환을 담당할 회수 시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M&A 시장이다. M&A 시장이 시들해지면서 창업벤처에 투자하는 엔젤투자도 급격히 위축됐다. 1990년대 벤처신화의 이면에는 전반부 선순환을 담당한 엔젤투자가 있었다. 엔젤투자는 벤처 시장에 자본을 원할하게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 사업화할 수 있는 아이템과 기술에 돈이 몰렸다. 견인차 역할을 했다. 한국식 엔젤투자 모델이 자리를 잡는 듯했다. 그러나 벤처버블이 꺼지면서 상황이 변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국내 엔젤투자의 날개는 꺾이기 시작했다. 체계적인 리스크 관리가 가능했던 벤처캐피털과 달리 엔젤투자자는 시장 붕괴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 지금까지도 국내 엔젤투자 시장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시장의 붕괴는 생태계 조성 실패로 이어졌다. 국내 벤처 투자 시장에는 엔젤투자자를 위한 제도나 교육방안 등이 제대로 확립되지 못했다. 엔젤투자자 간 정보를 교류할 수 있는 네트워크도 부족한 게 현실이다. 열악한 생태계는 잠재적 투자자가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 의사를 접게 만들었다. 악순환이다. 미국은 M&A 시장이 활성화돼 나스닥 등의 IPO 상장 시장에 비해 10배의 거래 규모를 가지고 있는 반면에 한국은 IPO의 10분의 1의 규모에 지나지 않는다. 즉 미국의 1%인 것이다. 바로 여기에 한국 벤처 재도약의 핵심 과제가 있다. M&A 중간 회수 시장의 부재로 한국의 초기 벤처는 투자가 거의 전무하다. 미국에서 M&A가 활발한 이유는 자본시장 중심의 금융체계, 자본시장의 질적·양적발달 수준, 사회적 자본의 높은 수준에 의한 경제 주체들의 사회·문화적 가치의 공유, 지배구조의 투명화 및 기업가 정신의 고양 등을 들 수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지배구조 문제, 최고경영자(CEO)의 자력 성장 고집과 기업매각에 대한 불명예 인식, 적대적 M&A에 대한 부정적 정서, 타 조직원에 대한 배타성 및 신뢰부족 등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국내 벤처기업의 M&A의 활성화를 위해 M&A에 대한 인식 전환과 더불어 제도적으로는 먼저 성과미달기업에 대해서는 M&A에 의한 구조조정이 용이하도록 하고 벤처캐피털이 투자한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 및 감시체계가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 또 금융투자회사가 벤처기업을 매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산정에 관한 영업용순자본비율 조정이 필요하다. 여기에 사모투자펀드(PEF)에 대한 투자 및 차입제한 규정 완화와 더불어 코스닥상장기업에 대한 지배구조 투명화와 퇴출강화도 요구된다. 우회상장 요건 완화도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우회상장도 M&A의 일종으로 증권시장의 부실한 상장기업을 구조조정하는 순기능을 한다. 전문적인 M&A서비스나 컨설팅 강화도 필요하다. 현재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국내 M&A 시장 규모는 해마다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는 반면에 중소·벤처기업은 자금력의 한계와 재무자료의 투명성 부족 등으로 인해 전문적인 서비스나 컨설팅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유상수 삼일회계법인 M&A지원센터장은 “현장의 중소·벤처기업들은 여전히 M&A 진행 과정에서 정보 부족에 따른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무엇보다 제도적 지원과 함께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M&A 성공요건 세계적인 기업들은 핵심 역량을 기반으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면 M&A를 통해 과감히 진출했다. 그리고 진출한 분야에서 다시 시너지를 추구하면서 새로운 분야로 뻗어 나갔다. 그러나 자신의 역량을 벗어나는 M&A를 추구한 기업들은 성장통을 견디지 못하고 기존 사업 분야에서마저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M&A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핵심적인 수단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M&A가 무조건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실패한 사례도 적지 않다. LG경제연구원이 제시한 다섯 가지 M&A 성공요건을 살펴봤다. 조건 1. 강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대상을 선정해야 M&A에 관한 사례나 저명한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M&A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원이나 역량 측면에서 강한 시너지가 핵심적인 성공 요건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미국 엔론은 자신들의 핵심 역량과 크게 관련 없는 34개의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지만 이들 분야에서 기대했던 수익은 올리지 못하고 많은 손실을 감내해야 했으며 분식회계로 인한 윤리적 문제가 발생하자 파산하고 말았다. 조건 2. 강한 핵심 사업은 필수 경영컨설팅 회사인 베인이 미국과 영국 181개 기업의 다각화 과정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핵심 사업이 강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성공률은 3배 가까이 차이가 났으며 핵심 사업이 약한 기업의 다각화 성공률은 22%에 불과했다고 한다. 새로운 분야에서 M&A를 추구하는 것에는 많은 자원이 수반되게 마련이다. 강한 핵심 사업에서 창출되는 안정적인 현금 흐름은 성공적인 M&A의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조건 3. 얻고자 하는 가치가 뚜렷해야 설비나 브랜드 같은 특정 자산 확보가 M&A 목적이 될 수도 있으나 피인수 기업의 R&D나 영업 부문의 핵심 인재 확보가 더 중요한 목표인 때가 많다. 또 각종 자산 확보가 중요한 목표였다 할지라도 이들 자산에 체화돼 있는 구성원들의 지식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래서 피인수 기업의 인적 자원 관리는 시너지 창출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된다. 조건 4. 사업에 대한 예습이 충분해야 M&A는 이미 사업을 실행하고 있는 기업을 가져오는 것이기 때문에 기업을 인수하자마자 곧바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업에 대한 경영진의 ‘예습’이 무척 중요하다. 새로운 산업 분야의 기업을 M&A할 때 M&A를 하고 나서 사업의 이해를 높이겠다는 느슨한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오히려 신사업을 추진할 때보다 더 많은 시간과 정열을 기울여 사업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만 M&A가 성공할 수 있다. 조건 5. 조직적 대안은 다양하다 M&A 이후 조직 구조를 통합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버려야 한다. 성숙기나 쇠퇴기에 있는 인수기업은 창의성과 도전정신이 요구되는 성장기나 도입기의 피인수 기업과는 기업 내부 관리 시스템이나 문화적인 측면에서 정합성이 떨어지는 일이 많다. 정합성이 많이 떨어지는 기업을 인수할 때 피인수 기업을 인수기업의 시스템 아래로 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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