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2개월째를 맞는 김흥남 ETRI 원장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김 원장은 지난 해 11월 취임한 이래 이명박 대통령과 네차례나 대면 기회를 직,간접적으로 가졌다. 청와대 오해석 IT특보와는 4대강 IT 사업을 협의하는 등 굵직한 현안의 전면에 나섰다. IT에 대한 현 정부의 인식 변화와도 맞물려 IT 연구개발(R&D)의 본산인 ETRI의 역할이 새삼 조명을 받는 모양새다. 그 수장인 김흥남 원장의 행동 하나하나에 의욕과 열정이 묻어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 원장은 비전으로 ‘IT R&D 글로벌 톱 7위내 진입’과 ‘톱 클래스의 세계적인 랩 5개 육성’을 제시해 놨다. ETRI 운영 모델로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를 점찍었다. ‘엔조이 워크’를 통해 창의적인 ETRI를 구현하겠다는 포부다. ◇ETRI 플랫폼은 선단경영체제=김 원장은 ETRI의 R&BD 플랫폼으로 ‘창의적 선단경영체제’를 내세웠다. 융, 복합화 시대에 각 분야가 밀접하게 연관관계를 갖는 선단형 체제 구축이야말로 현재의 난관을 헤쳐나갈 가장 이상적인 시스템이라는 것. 믿고 따라와 달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지난해 말 취임하자마자 180명이나 되는 전,현직 보직자들을 일일이 개별 미팅한 이유도 ETRI가 우리 나라 IT 국가대표인 만큼 제 구실을 찾아 뭔가 ‘큰 일’을 내보자는 취지였다. 김 원장은 일 앞에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 스타일이다. 명쾌한 기획 아래 정해진 수순대로 탱크처럼 밀어붙인다. 좌우 돌아보지 않고 몰두하는 스타일이다. ‘미래 융합기술을 선도하는 글로벌 R&D 리더’라는 비전아래 전략도 치밀하게 짰다. 국가전략기술 수행체제 및 오픈 R&BD 플랫폼 구축과 기술사업화 강화를 통한 신 에코(생태) 시스템 구축, 지식자본(이노베이션 캐피탈) 확충 등 3가지 기본 전략을 제시했다. 오픈 R&BD 플랫폼 구축을 위해 ETRI는 우선 조인트 미래기술 랩 등 혁신형 연구몰입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 지역별 거점 대학과 상생형 혁신연구센터도 설립해 나갈 방침이다. 신 에코(생태)시스템 구축을 위해 연구결과의 품질 인증과 기술이전후 접촉 창구를 단일화하는 기술문지기 제도를 도입한다. 지식자본 확충을 위해 세계 유수 연구기관 및 기업과의 공동연구를 강력히 추진할 계획이다. 전략적 특허 포트폴리오나 특허 패키징 등 신 지적재산권(IPR) 전략도 병행 추진해 특허 기술료 수익 1억달러 시대를 임기내 열겠다는 것이 김 원장의 복안이다. ETRI는 3세대(G) 이동통신 기술로 지난해 노키아, 모토로라 등 사실상 전 세계 휴대폰 업체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특허 소송을 벌였다. 이미 두 곳이 승복해 200억원의 기술료를 받기로 합의했따. 김흥남 원장은 R&D 추진 계획도 만들어 놨다. 대표적인 핵심 과제는 4대강에 IT를 접목해 보자는 것과 스마트그리드 프로젝트다. IT가 4대강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센서·물고기형 수중로봇 실시간 제어나 첨단정수· 생태복원 기술, 3차원 입체지도 센서 네트워킹, CDMA방식의 무선 데이터 전송, GIS 및 수질 정보와의 연계, 통합관제센터 구축, 지능화된 시설물 관리 등 무궁무진하다. ETRI가 할 수 있는 R&D에 대한 검토 작업을 진행중이다. 기존의 전력망에 IT를 접목하는 스마트그리드 부문에서는 전력 공급자와 소비자가 양방향으로 실시간 정보를 교환하면서 에너지 효율을 최적화하는데 초점을 맞춰 차세대 지능형 전력망 R&D 그림을 그려놨다. 핵심은 스마트 홈그리드이다. 통신과 서비스, 표준, 보안 등의 아이템 가운데 홈네트워크와 스마트그리드를 연동하는 스마트홈그리드 부문 R&D에 역량을 집중화할 계획이다. ◇거버넌스 대책 마련 부심=지식경제부가 추진중인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거버넌스(지배구조)체제 개편에 대해 김 원장의 고민이 깊을 수 밖에 없다. 30년간 갈고 닦아온 ETRI가 새롭게 비상하느냐, 주저않느냐의 기로에 섰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대응책을 고민하기에 앞서 ETRI의 역량점검은 끝냈다. ETRI의 연구생산성은 투입 연구비 1억원당 수익이 12%다. 다른 연구기관의 1.5%보다는 무려 8배나 높은 수치다. 선진국 연구기관(8∼10%)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는 결론이다. “ETRI는 지속적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ETRI를 발전시킬 수있는 거버넌스체제로 가는 방향이 맞습니다. ETRI야말로 우리 나라의 명백한 ‘IT국가대표팀’아닙니까.” 김 원장은 “ETRI가 골(초대형 연구성과)을 넣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이 요구하는 골이 터져야 정부에 할말도 있다는 논리다. 거버넌스 대응팀 구성도 고려하고 있지만 아직은 실체가 없어 대응하기는 이르다는 판단이다. 그럼에도 내부적인 준비는 진행할 방침이다. 과거 전전자교환기(TDX)나 CDMA, 와이브로 등 신성장 동력을 창출했지만 그외의 과제에서는 상용화의 꽃망우리만 맺었을 뿐 꽃을 활짝 피우진 못한 부분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에 대한 대안을 반드시 찾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그가 스스로 밝힌 올해 미션이다. 김원장은 연구과제를 최대한 대형화할 생각이다. 그동안 부문별로 나눠 4개로 운영하던 미래연구부는 모두 통합해 융합화를 추진할 창의연구소 제도로 개편했다. ETRI 운영의 모델로 김원장은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을 꼽았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잘나오도록 뒷산 야생화 동산에 파고라를 만들어 회의도 하고, 화이트 보드를 갖다놔 언제든 아이디어를 공유할 ‘꿈의 일터’를 만들 방침이다. ◇대한민국의 꿈은 ETRI서= 지난해 12월 15일 밤 9시. 김 원장은 직접 피자를 들고 연구실을 일일이 방문했다. 연구원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건넨 피자가 모두 400판이나 됐다. 그 다음날 ETRI 인트라넷 게시판의 ‘와글와글’방에는 연구원들의 감사 인사가 잔뜩 올라왔다. 서로가 하나임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김 원장의 모토는 ‘꿈은 이루어진다’이다. 꿈을 목표로 가다보면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출근한다는 것이 김 원장의 새벽 댓바람 출근길의 마음 가짐이다. 김원장은 요즘 오전 7시 20분만 되면 어김없이 ETRI에 도착한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잡는다’는 속담을 믿는다. 퇴근은 오후 11시를 넘기기 일쑤다. “3∼5년뒤, 나아가 10년뒤 이루고 싶은 꿈이 무엇이냐고 직원들에 물었더니 거의 대답을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적어도 ETRI의 꿈은 장기적으로는 우리나라를 세계 3대 강국의 반석위에 올려놓는 것입니다. 2002년 월드컵 때 외쳤던 ‘대한민국’은 우리의 국호를 되찾은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이 아니라 ‘대, 한민국’이라는 것입니다. 그 꿈을 ETRI가 꾸고 실현해 갈 것입니다.” 좋아하는 단어는 ‘진인사이대천명’과 ‘적자생존’이다. 특히 적자생존, ‘적는 자만이 살아 남는다’는 말을 유머를 섞어 자주 언급한다. 우리 나라가 조선부문에서 1위에 올라설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업무일지라는 것. 노하우든 뭐든 적어놓아 10년 불황을 겪으며 나태해진 일본을 꺾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자주한다. “아버지께서 등초본을 떼러 동사무소에 가면 직원들에 등초본 양식을 ‘우리 장남’이 만들었다고 자랑하신다는 말을 듣곤 합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그래도 내가 부모와 국가를 위해 뭔가 했구나 하는 뿌듯한 마음을 갖습니다. 앞으로 ETRI와 대한민국에 뭔가 커다란 족적을 남길 수 있는 일을 찾아 나갈 것입니다.”
◆김흥남 원장은 1956년 대구서 태어났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뒤 미국 볼 주립대에서 전산학 석사,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전산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3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시스템공학연구소(SERI)에서 연구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27년간을 모두 ETRI에서 보냈다. 임베디드SW 연구단장을 비롯한 내장형 SW연구팀장, 임베디드SW 연구단장, 혁신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대외적으로는 한국무선인터넷표준화포럼 분과위원장과 스마트그리드 기획 TF팀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 2008년엔 미국 MIT 전자공학연구실(RLE) 초빙연구원으로 1년간 활동하기도 했다. 올해부터 2012년까지 대한임베디드공학회 학회장도 맡는다. 연구 업적으로는 조립형 실시간 OS 기술 개발을 시작으로 임베디드SW 표준 플랫폼 기술 개발, 모바일 컨버전스 컴퓨팅을 위한 단말적응형 임베디드 운영체제 기술 개발 등 굵직한 것만 11건을 수행했다. 수상 실적으론 한국정보과학회 제1회 차별화 스피커 선정, ETRI 품질경영 우수사례 대회 은상, 철탑산업훈장(대한민국 SW산업발전 기여) 등을 받았다. ◆조직개편 어떻게 ETRI는 지난해 말 추진, 1월 1일자로 정리한 조직체계는 5부문 3본부다. 기존의 4부문 6본부를 부문중심으로 대형화했다. 창의·융합형 메가 프로젝트를 발굴해 부서간 벽을 허무는 융합연구 수행에 적합한 체계를 구축한다는 원칙에 따라 개편했다. 신시장 창출을 위한 콘텐츠 연구개발 분야도 전략적으로 강화했다. 또 경영·사업·사업화 기획 기능을 총괄하는 톱-다운 기획도 강화하도록 조직체계를 짰다. 조직개편 방향은 기술 변화의 유연성을 확보하고, 국가 IT R&D 전략 구현의 지속적인 구심체 역할 재정립, 글로벌 톱 연구기관 정착, 계층구조 개선을 통한 의사결정의 신속성 도모에 맞췄다. 연구부문은 IT코리아 5대 전략에 따라 편성했다. 5대 부문은 방송통신융합연구부문, 소프트웨어연구부문(기존 SW콘텐츠연구부문), 융합기술연구부문, 융합부품소재연구부문(기존 융합부품·소재연구부문)에 인터넷연구부문을 새로 신설했다. 그 대신 본부제도를 폐지했다. ETRI는 융합기술연구부문의 경우 외부 변화 및 수요에 부합하는 유연한 조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물고기 로봇이 사회적인 이슈가 될 경우 바로 센서 사업단이나 물고기 로봇 사업단을 띄우는 방식이다. 또 융합서비스플랫폼연구부를 신설해 인터넷 연구부문으로 이관했다.대신 소프트웨어연구부문에서 자동차 및 조선융합기술 연구 2개팀을 이관받아 R&D를 수행하도록 할 방침이다. 이외에 기획, 사업화, 지원부서는 1부문 3본부 체제에서 3본부로 조정했다. 기획부터 사업화까지 연계될 수 있는 연구수행체계는 유지하되, 권한집중 등을 해소하기 위해 ‘연구전략부문장’을 폐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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