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후적의에 대하여...
황후적의는 순종의 황후인 윤황후가 영친왕의 가례 때 입었던 옷이다. 심청색(深靑色) 적의는 황후와 황태자비의 대례복(大服禮)으로서 가례(嘉禮) 때에는 책비의ㆍ친영의ㆍ동뢰연에 입고, 종묘사직에 참배할 때 입는다. 1897년 이왕직(李王職) 예식과(禮式課)에서 발표한 예복(禮服)에는 9룡 4봉관 적의, 보(補), 중의(中衣), 대대(大帶), 후수(後綬), 상(裳), 폐슬(蔽膝), 하피(霞 ), 옥규(玉圭), 옥대(玉帶), 청석(靑 ), 청말(靑襪), 방심곡령(方心曲領)으로 구성되었다. 윤황후의 유물은 적의ㆍ중단ㆍ대대ㆍ폐슬ㆍ보ㆍ청석만 남아 있다. 심청 적의는 명(明)에서 고려 공민왕 19년 5월 고려 왕비에게 사여한 것이 처음이다. 조선 왕조의 왕비 대례복은 명나라 황후의 상복(常服)인 대홍 대삼(大衫), 청색 배자(背子), 하피, 홀을 사여 받은 것인데 명보다 2등급 낮은 것이다. 청색 배자에 적계문(翟鷄紋)을 수놓았기 때문에 적의라고 하였다. 영조 때 ≪국혼정례(國婚定例)≫에서 치적의(雉翟衣) 제도를 정했는데 대홍색 적의로 한국화한 적의였으며, 적의ㆍ중단ㆍ하피ㆍ상ㆍ폐슬ㆍ대대ㆍ혁대ㆍ패옥ㆍ수ㆍ말ㆍ석ㆍ백옥규ㆍ보로 구성되었다. 1897년 고종이 황제 위에 오른 후 황후의 심청색 적의를 정하였는데 중국과 동격이며, 명나라의 홍무(洪武) 3년 제(制)이다. 적의 이외의 여러 가지 예복을 없애고, 소례복으로 원삼 하나로 집약시켰다.
윤황후의 적의에는 `긔미신조`(1919)라고 쓰여져 있는 것으로 보아 영왕(영친왕) 가례를 위해 영친왕비의 9등 적의와 함께 제조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영친왕은 1918년 이방자여사와 약혼, 1919년 1월 25일로 결혼 날짜가 잡혔는데 1919년 1월 22일 고종황제가 승하하여 1920년 4월 28일 일본에서 흰 드레스 차림으로 가례를 치루었고, 1922년 4월 28일 조선에서 다시 가례를 행했다. 고종이 가례 3일 전에 승하했으므로 적의는 다 준비되었다고 본다.
윤황후의 12등 적의는 곧은 깃에 옷길이는 길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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