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에 나타난 신유
중세교회의 치유(590-1517)
보통의 역사학자들은 중세를 가리켜서 암흑시대라고 부른다. 교회의 치유에 대한 이해도 또한 암흑기라 할 수 있었다.
Gregory 1세는 590년부터 604년까지 교황직에 재임했다. Gregory 1세 이후 교회는 16세기에 이르기까지 치유에 대한 내용들이 그의 견해를 따른 것이었다. 그러니까 원래 초대 교회가 가지고 있던 “건강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라는 성경적 관점이 “하나님은 병을 주신다” 라고 하는 정반대의 개념으로 바꾸어져 버린 것이다. 치유의 의미는 점차로 천국을 준비하는 영혼의 치유로 변했고, 치유를 위한 종유(Unction)는 임종을 위한 종유로 변했다. 그 후 종유(Unction)는 치유 보다 죄의 용서와 더 밀접한 관계가 있었고, 사제가 병자의 집을 방문할 때는 무엇보다 먼저 환자에게 죄의 고백을 요구하였다. 그 때에 교회는 병든 사람의 치유를 위해 기도하기보다는 그의 임종을 위해 성례전을 베풀었는데 이 세상에서는 건강과 기쁨은 없고, 죽음 후 오직 낙원에서만 그것을 누릴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시기에는 초대 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치유에 대한 견해가 바뀌게 된 시기라 볼 수 있다.
또한 Thomas Aquinas는 아리스토텔레스를 기반으로 한 신학자였는데 그의 신유에 대한 견해는 카톨릭 교회의 규범이 되었다. 그의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이성적 사상은 시대를 반영하는 관점으로 남아 있게 만들었다. 그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이성적 사상을 가졌는데 이것은 성령의 체험보다 인간의 지적활동으로 하나님의 치유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아 부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했다. 그는 치유의 개념을 “영혼이 육체보다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에 죄의 용서는 육체의 치유보다 훨씬 더 위대한 사역이다”라고 하였다.
분명히 중세시대는 치유 사역의 암흑기였다. 하지만 영적인 사람들을 통해서 치유는 부분적으로 계속되고 있었다. 치유가 공식적인 예배나 모임을 통해서 시행될 수는 없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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