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삼성의 윤종용 상임고문을 만났는데 혼줄이 났어요. 허허.” 작년에 본인이 KEPCO(한국전력공사)의 사장직에 오르는 것을 보고 ‘그럼 주가가 오르겠다’ 싶어 KEPCO 주식을 좀 사들였는데, 아직 대박이 안 터졌다며 윤 고문이 건넨 농을 두고 김쌍수 사장이 한 말이다. 당시 거대 공룡 공기업 KEPCO의 수장이 된 김 사장에게 희망과 기대를 걸었던 사람은 윤 고문뿐만이 아니었다. 많은 이들은 KEPCO의 미래를 김 사장을 통해 읽으려고 했다. ‘혁신’의 이름으로 새단장될 KEPCO의 내일이 궁금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KEPCO는 어떻게 변해있는가. 앞으로 또 어떤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줄 것인가. 김 사장의 입을 통해 직접 들어본다.
<메인박스> ◇혁신의 1년. “아직도 배고프다”=KEPCO의 지난 한 해를 놓고 여러 가지 말들과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김쌍수 사장 본인이 평가하는 1년은 어떤지 제일 먼저 궁금했다. 그는 “무엇보다 사내에 건전한 ‘위기의식’이 확산된 게 고무적”이라며 “일선 사업소를 중심으로 변화를 추구하고 혁신을 즐기려는 분위가 형성되고 있다”고 자평했다. 그래도 100년이 넘은 공기업 KEPCO의 뿌리깊은 기업문화와 관행이 그렇게 쉽게 바뀔까. 이에 대해 김 사장은 “처음 사장으로 부임해 와보니 직원들 사이에 부정적 인식과 패배주의가 만연해 있었다”며 “그래서 ‘독하고 강한 조직’으로 거듭날 것을 ‘독하게’ 주문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우리는 공기업이 아니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지독하게’ 업무에 임할 것을 지시한다고 김 사장은 덧붙였다. 인화의 LG에 독기의 DNA를 심던 그때의 ‘쌍칼 김쌍수’, 그대로였다. ‘TDR’(Tear Down & Redesign, 기존의 모든 프로세스를 완전히 찢고 새롭게 다시 설계하자는 뜻)로 대변되는 김 사장식 혁신에 내부의 반발은 없을까. 김 사장은 또 이에 어떻게 대처할까. 그는 “TDR 활동이 장기적으로 가져다주는 달콤한 열매를 아직 맛보지 못한 상황에서는 반발도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이 역시 TDR 활동을 통한 성공 체험이 하나 둘씩 조직내에 쌓이다 보면 자연스레 없어지는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린 KEPCO로 ‘글로벌 톱5’에=김 사장은 오는 2020년까지 KEPCO를 세계 5대 전력사로 키우겠다는 비전을 최근 내놓았다. 여기에는 녹색성장 시대에 걸맞는 KEPCO의 새로운 방향이 설정돼 있다. 전형적인 고탄소·공해유발 업종인 전력산업. 하지만 김 사장은 그 안에서 ‘녹색화 전략’을 모색하고 있었다. “전력그룹사 간 역할 분담을 통해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할 겁니다. 여기서 KEPCO는 연구개발과 사업자 지원을 맡습니다. 현재 송배전 설비의 SF6 가스 회수·재활용을 통해 청정개발체제(CDM) 사업을 추진중인데, 성공하면 연 460억원의 배출권 판매 수익이 납니다.” 녹색 KEPCO의 궁극적 지향점도 역시 ‘수익 창출’이다. 정부의 녹색성장 기조에 적극 부응하는 것과는 별개로, 이를 통해 돈도 좀 벌어들여야겠다는 게 김 사장의 복안이다. “KEPCO가 다루는 상품이 ‘전기’라는 공공재일 뿐, 우리는 공공기관이 아닌 ‘기업’입니다. 기업이 이익 창출하겠다는 게 왜 죄가 됩니까. 어렵게 생각하지 맙시다. 우리의 재무성과가 좋아지면 전기료 인상요인이 억제됩니다. 그럼 결국 국민 전체의 공익성도 향상되는 겁니다. 공익성과 수익성은 결국 같은 연장선상에 있어요.” ◇‘스마트그리드’와 ‘수출’로 미래 준비=전력산업은 전형적인 내수형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전력판매 성장률은 해가 갈수록 떨어질 전망이다. 그렇다면 미래 KEPCO의 청사진은 어디서 찾아야 하나. 그에 대한 해답으로 김 사장은 ‘스마트그리드’와 ‘해외수출’을 꼽는다. 김 사장은 “KEPCO가 보유한 세계적 수준의 송배전 인프라에 대한민국의 첨단 IT를 접목하면 국제 표준화 주도는 물론이고 해외시장 선점도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특히 해외자원개발·원전 수주 등을 통해 오는 2020년에는 KEPCO 전체 매출의 32%(현 2%)를 수출로 벌어들이겠다고도 했다. 이제 2년. 김 사장은 남은 임기 중 또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 ‘이것만은 꼭 해놓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 뭐냐는 질문에 김 사장은 ‘전기요금·연료비 연동제 도입과 전력그룹사 출범’을 꼽았다. 인상 여부가 정치논리에 좌우되는 현행 전기요금제로는 KEPCO의 안정적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게 김 사장의 생각이다. 특히 시너지 효과의 창출을 위해서는 한전과 발전사 간 재통합이 불가피한만큼, 이를 역점과제로 생각하고 있다고 김 사장은 말했다.
KEPCO는 어떤 회사 ‘대한민국 기업 중 KEPCO와 관련 없는 곳은 없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KEPCO가 국내 산업에 끼치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KEPCO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수많은 업체들과의 상생, 그 자체가 국가 경제의 자양이다. 특히 KEPCO는 대표적인 공기업이다. 따라서 그간 KEPCO의 상생협력은 일방적 지원이 주를 이뤄왔고, 그 결과는 품목별 제조기업의 과잉 사태로 불거졌다. 문제는 국내 전력소비량의 증가율은 해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전력소비량은 5.7% 증가했지만, 오는 2020년이면 0.7%에 그칠 것이라는 게 KEPCO 측 전망이다. 반면에 관련 전력기자재 제조업체 수는 늘어만 가는 추세다. 김쌍수 사장의 고민 역시 여기에서 출발한다. 이에 KEPCO는 최근 들어 상생의 패러다임을 시혜적 지원에서, 자율경쟁 유도에 따른 선택과 집중으로 바꾸고 있다. 품목별로 유망한 강소기업만 전략적으로 육성하겠다는 김 사장의 의지가 반영된 조치다. 구체적인 액션 플랜도 제시됐다. 우선 내년 1월까지 변압기와 개폐기, 전선 등 배전·송변전 기자재 개발 TDR을 시행한다. 이를 통해 전력기자재의 기술과 품질, 가격 경쟁력을 강화시키겠다는 것이다. 글로벌 마케팅을 위해서는 ‘KEPCO’ 브랜드를 적극 활용, 우수 중소기업의 제품을 해외시장에 내다파는 데 역점을 둔다. 이를 위해 전담조직의 신설도 검토 중이다. 파워에너지론 등 이른바 KEPCO형 자금지원도 강화된다. KEPCO는 최근 국내 최초로 4개 론(Loan)을 일으켜 1·2차 협력사를 상대로 1700억원의 자금을 지원했다. 김 사장은 “KEPCO는 궁극적으로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종합에너지 기업으로 자리 매김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국내 기업과의 상생 협력은 필요충분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표1> 전력소비량 증가율 1990년 14.8% 2008년 5.7% 2015년 1.3% 2020년 0.7%
<표2> 주요 전력기자재 제조업체 증가세 업종 2001년 2009년 변압기 36개사 44개사 전선 19개사 26개사 개폐기 17개사 34개사 계량기 7개사 14개사 자료: KEPCO
<소박스2> 김쌍수 사장은 누구
“보통의 반대말은 곱배기가 아니다. ‘특’이다.” 혁신의 달인, 김쌍수 KEPCO 사장은 유독 ‘전문가’를 좋아한다. 회사 종업원이 수천, 수만명이라는 것은 아무 의미 없고, 그 기업에 스페셜리스트가 얼마나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 같은 현장 지상주의는 평생 기계밥 먹어가며 최고경영자(CEO)가 된 김 사장의 이력에서 엿볼 수 있다. 한양대 기계공학과를 나온 김 사장은 1969년 럭키금성에 입사한 뒤, 지난 2003년 LG전자의 최고경영자(CEO)로 발탁될 때까지 35년간 창원공장을 벗어나지 않았다. 리더십과 강한 추진력으로 냉장고 공장장, 디지털어플라이언스 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LG전자의 가전부문이 지금의 세계적 수준까지 올라온 것은 ‘공장장 김쌍수’ 때문이라는 게 국내외의 평가다. 그는 또 공정 전문가이자 혁신 전도사다. 가전의 달인인 김 사장은 LG전자의 부회장이 된 뒤 휴대폰 라인을 순시하던 현장에서 바로 라인의 문제점을 끄집어내기도 했다. 국내 기업 가운데 선도적으로 ‘6시그마’를 도입, 생산현장의 경영혁신을 주도했다. 경영혁신 프로그램인 ‘TDR’를 통해서는 상시적 경영혁신을 추진했다. TDR는 지난해 KEPCO 사장에 부임해서도 즉시 도입한 바 있다. 이런 활동을 인정받아 그는 2003년 6월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에 의해 ‘아시아의 스타’ 25명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청와대와 검찰 등에 혁신 특강을 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 추진력에 혁신을 강조하면서 부하 직원들에겐 모시기가 쉽지 않은 상사로 꼽힌다. 특히 LG전자 시절엔 명확한 일처리를 좋아해 ‘쌍칼’이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일처리에 잘못을 발견하면 관련자에게 불호령이 떨어진다. 이 같은 카리스마는 공기업 KEPCO 사장으로 있는 지금도 여전하다는 게 주위의 얘기다. <약력> 1945년 경북 김천생. 1969년 한양대 공대 졸업. 1969년 금성사 입사. 1984년 LG전자 냉장고 공장장. 1993년 상무이사. 1996년 리빙시스템 사업본부장(상무). 1998년 부사장. 2000년 디지털 어플라이언스(DA) 사업본부장. 2001년 사장 승진. 2003년 대표이사 부회장. 2008년 KEPCO 사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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