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분기 전 세계 PC 시장은 ‘에이서(acer)’의 돌풍으로 뜨거웠다. 글로벌 경제 위기에 따른 전반적인 시장 축소에도 불구하고 에이서는 업계 최고 수준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델을 바짝 위협했다. 전체 PC 시장은 5% 역성장했지만 에이서는 919만6000대를 공급, 작년 같은 기간보다 무려 34.2%나 성장했다. 또 시장 점유율도 13.5%를 기록, 2위 델을 불과 0.1%포인트 차로 압박했다. 노트북 시장에서는 이미 델을 추월하며 2위를 기록했으며, 넷북 시장에서는 정상을 지키고 있다. 세계 PC 시장은 이제 사실상 HP와 에이서 ‘양강체제’로 재편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33년의 전통을 가진 대만 PC 업체 에이서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나올까? 에어서의 속살을 만나기 위해 지난 14일(현지시각), 30도가 넘는 온도와 후텁지근한 열기가 남아 있던 있는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를 찾았다.
타이베이 북부 신도시 씨치(Hsichih)시에 위치한 에이서 본사는 1층에 위치한 데모룸이 아니라면 이곳이 전 세계 2위 PC 업체의 본사라는 사실을 실감하기 어렵다. 1층에는 에이서 데모룸을 비롯해 옆 빌딩과 연결된 통로 등을 따라 다양한 상가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기자를 맞은 헨리 왕 홍보팀장은 “업무 공간은 여느 사무실과 다를 바가 없다. 데모룸이 에이서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거추장스러운 포장보다는 핵심 역량에 집중한다는 에이서의 철학이 엿보였다. ◇핵심 역량에 집중하라=에이서는 지난 1976년 ‘사람과 기술 사이의 장벽을 무너뜨린다’는 모토로 창업한 후 30여년간 꾸준히 내실을 다지며 성장해 왔다. 특히 1997년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의 노트북 사업부를 인수하고, 2000년대 들어 글로벌 메이커를 목표로 대규모 M&A 등 숨가쁜 혁신을 계속했다. 이를 통해 에이서가 세운 전략은 ‘브랜드’와 ‘서비스’에 집중한다는 것. 고객이 PC를 선택하며 고려하는 핵심 역량에 최대한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2000년 말 자체 생산부문을 분사하고, 제조사에서 서비스 기업으로 변신했다. 에이서에서 분사된 공장은 에이서 PC를 생산하지만 전량을 생산하지는 않는다. 에이서는 콴타 등 다양한 EMS 업체를 통해 생산은 철저하게 외부 역량을 이용하고 있다. 헨리 왕 팀장은 “에이서 인력 구성과 전략은 단순하고, 효율적이며, 지속발전 가능한 운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전 세계 직원은 6000여명에 불과하지만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IT 산업 트렌드에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브랜드와 서비스에 대응하기 위해 군살은 과감하게 도려내고 가벼운 조직으로 탄력적으로 시장에 대응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타이베이 본사에는 1000여명의 직원이 제품 전략과 파이낸싱 업무를 맡고 있다. 또 지난해 CEO로 승진한 지안프랑코 란치 사장이 근무하는 이탈리아 등 유럽 지역 직원 500여명이 마케팅과 세일즈 업무를 주관한다. 나머지 4500여명의 직원은 전 세계 각지에 흩어져 시장 수요에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에이서는 브랜드 집중 전략을 세운 후 과감한 투자로 브랜드 파워를 키웠다. 2007년에는 미국의 게이트웨이와 유럽의 패커드 벨을 인수, 다양한 브랜드를 갖췄다. 한 개 브랜드로는 모든 고객 세그먼트를 공략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멀티 브랜드’ 전략을 세운 것이다. 이 같은 대규모 M&A 이후 에이서는 전 세계 시장에서 큰 폭의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작은 조직으로 스피드를 키워라=에이서의 또 다른 성공 비결은 바로 스피드다. 에이서는 2주마다 한번씩 전 세계 5개 지역 핵심 관리자 15명이 참여하는 DPM(Demand&Planning Meeting) 회의를 개최한다. 원격 영상회의를 통해 열리는 이 회의를 통해 에이서는 전 세계 각지의 PC 수요를 취합하고, 생산-물류-마케팅-판매로 이어지는 전략을 가다듬는다. 토니 훙 아태지역 운영팀장은 “에이서는 세계 각지의 소비자 요구에 따라 원하는 제품을 어느 지역이라도 1주일만에 서비스할 수 있는 공급망관리(SCM)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며 “DPM 등 다양한 채널로 이 같은 수요에 빠르게 대처하는 것이 에이서의 빠른 성장 비결”이라고 말했다. PC 기술 보편화로 성능 차별화가 갈수록 힘들어지는 가운데 세계 시장과 소비자 요구에 얼마나 빠르게 대응하느냐가 PC 업체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역량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파트너와 상생하라=에이서의 또 다른 경쟁력은 파트너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하는 상생 체계에서 찾을 수 있다. 에이서 본사는 마케팅과 브랜드에 집중하고, 비용을 줄여 파트너의 이익을 최대화한다는 전략이다. 특히 파트너들의 자원을 활용하면서도 SCM을 통해 서로가 부담이 되지 않는 이익 체계를 만들었다. 이 같은 에이서만의 독특한 채널 비즈니스 모델은 최상위 부품 공급사와 채널 파트너들이 협업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 특히 에이서는 운용 비용과 자본 투입을 최소화하면서 생산과 글로벌 물류를 최적화하는 데 성공했다. 토니 팀장은 “좋은 브랜드와 함께 뛰어난 성능을 갖춘 제품을 다양한 파트너들과 협력, 경쟁사보다 빠르게 공급하는 것이 최근 에이서의 성공 비결”이라고 말했다. 타이베이 현지에서 만난 한 업계 관계자도 “에이서가 델을 인수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을 정도로 최근 에이서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며 “대만과 중국의 협력 분위기도 갈수록 고조되고 있어 양안(兩岸) 기업들의 움직임을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브랜드와 거대 시장을 앞세운 에이서가 PC 시장의 ‘에이스’로 거듭나는 것은 시간 문제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타이베이(대만)=양종석기자 jsyang@etnews.co.kr
<인터뷰 : J. T. 왕(Wang) 회장> 에이서그룹 CEO 겸 에이서 회장인 J. T. 왕(Wang)은 지난 2005년 회장 취임 이후 에이서의 세계화 및 브랜드 경쟁력을 끌어올린 주역이다. 특히 패커드 벨과 게이트웨이의 성공적인 합병과 통합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또 에이서만의 채널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파트너와 공급사들이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비즈니스를 만들었다는 평가다. 다음은 왕 회장과의 일문일답.
-최근 1년간 글로벌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에이서는 세계 PC 시장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내고 있다. 그 배경은 무엇인가. ▲에이서는 지난 2000년 제조 부문을 분리하고, 2002년부터 채널 비즈니스에 집중했다. 또 그 이후에도 에이서는 항상 오버헤드 코스트를 낮게 유지하고 공급 체인 관리를 최선으로 유지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이를 통해 PC 시장과 전체 업계가 큰 어려움에 직면해있더라도, 에이서는 매우 빠르게 전방위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또 소비자에게 적절한 가격으로 제품을 공급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것이 급변하는 전 세계 PC 시장에서 항상 안정적으로 성장해 온 배경이다. -생산 부문을 분사하고, 브랜드와 서비스에 집중한 것이 성공 배경으로 분석된다. 또 다른 경쟁력은 무엇이 있는가. ▲우선 스피드(Speed)다. 전 세계 PC 시장은 마치 경주와 같다. 때문에 에이서는 항상 경주에 임하는 자세로 고객에게 뛰어나고 혁신적이며 최신의 기술과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최근 에이서가 발표한 제품을 예로 들면, 에이서는 넷북을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공급하고 소개한 벤더다. 이러한 발빠른 대응이 효과를 발휘했다고 할 수 있다. 또 이러한 전략이 제품 출시와 단종, 채널 정책과 가격에 항상 빨리 반영되도록 노력한다. 또 경쟁사보다 낮은 오버헤드 코스트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PC는 이미 필수적인 상품이 됐으며, 더 이상 가격을 올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고객이 살 수 있을 정도로 가격이 적절해야 한다. PC 제조사는 오버헤드 코스트를 줄여 제품의 성능을 우수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철학이 에이서 제품에 모두 녹아 있다. 마지막으로 파트너와 상생할 수 있는 지속발전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빠른 업무 처리와 낮은 오버헤드 코스트를 유지하는 PC 벤더만이 고객과 채널 파트너에게 안정적인 서비스 품질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시장에 새롭게 진출했다. 한국 시장을 위한 전략은 무엇인가. 또 한국 소비자들에게 하고 전하고 싶은 말은. ▲한국 시장은 매우 좋은 인프라를 갖고 있으며, 국내 업체가 매우 좋은 PC 제품을 공급하고 있는 시장이다. 하지만 우리는 한국 시장이 여전히 더 많은 선택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를 위해 에이서가 새로운 대안이 되고자 한다. 세계 3위 PC 벤더로, 에이서는 좋은 품질의 높은 성능을 내는 제품과 최신 기술, 친숙한 유저 인터페이스(UI)를 제공할 것이다. 한국 PC 시장에 이제 에이서라는 이름의 믿을 수 있는 브랜드가 또 하나의 선수로 뛰어들었다. 앞으로 에이서는 한국 시장에서 3년 이내에 외산 PC 브랜드 중 1위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소비자의 마음을 얻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본사에서도 한국 시장이 어려운 시장임을 잘 알고 있다. 어느 정도 고정적인 매출 목표를 세우는 것보다는 우선 소비자의 마음을 얻고 기반을 다지는 것을 중요시하고 있다. -에이서는 앞으로 어떤 업체를 지향하는가. 또 이를 위한 전략은 무엇인가. ▲에이서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되고자 한다. 최근 전 지구적인 관심사로 떠오른 그린IT를 적극 실천하는데 나설 것이다. 제품에 유독성 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재활용이 가능한 제품을 만들며, 불필요한 포장도 줄이고 있다. 또 개인적인 목표로는 에이서가 고객과 직원들이 함께 성장하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인간 친화적인 기업이 되는 것이다.
에이서그룹 CEO 겸 에이서 회장으로 그룹의 세계화와 경쟁력 향상을 이끌었다. 2005년부터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에이서 매출을 97억달러에서 3년만에 141억달러로 끌어올렸다. 또 에이서가 전 세계 PC 시장 3위 및 노트북PC 시장에서 2위로 부상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2008년 6월, 에이서그룹 CEO도 맡은 왕 회장은 경쟁력 있는 가격과 새로운 기술, 품질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 공급망과 서비스 네트워크를 만들고 유지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왕 회장은 지난 1981년 에이서의 전신인 멀티테크에 세일즈 엔지니어로 합류한 후, 1990년에 에이서 타이완의 세일즈마케팅사업부 사장에 올랐다. 또 2000년에 에이서 사장에 오른 후 PC를 비롯한 IT제품과 서비스 부문의 브랜드 마케팅에 집중했다. 국립 타이완대학교에서 전기공학 학위를 받았으며, 국립 타이완 청치대학교에서 최고 MBA를 이수했다.
◇소박스/<에이서 성장기> 에이서는 1976년 ‘멀티테크’라는 이름으로 창업자 스쩐룽에 의해 설립됐다. 창업 초기에는 무역과 제품 디자인에 주력했지만, 1981년 첫번째 IBM 호환용 컴퓨터를 개발하며 시장에 등장했다. 1987년에 ‘에이서’로 사명을 변경했으며, 강력한 브랜드를 만들기 위한 기술 개발 작업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1991년에 CPU 업그레이드 솔루션 ‘칩업(Chipup)’을 출시했으며, 1995년에 드디어 ‘아스파이어’ 라인업을 통해 무명의 PC 제조사에서 새로운 유행을 창조하는 회사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획기적인 디자인을 앞세운 아스파이어는 큰 성공을 가져다 줬다. 당시 에이서 미국법인 판매액이 순식간에 두 배 이상 증가하기도 했다. 1997년에는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 노트북 사업부를 인수하며, 글로벌 브랜드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또 창업 20주년이던 1996년부터 운영을 단순화하고 기술적 혁신을 위한 3단계 전략을 마련했다. 이를 통해 2000년, 생산부문을 분할했다. 이후 에이서는 2001년 새로운 기업 이미지를 채택하고, 글로벌 PC 시장에 새로운 가정용 PC 표준을 제안하기 시작했다. 특히 2003년에는 하드웨어(HW)와 소프트웨어(SW) 및 사용하기 편리하고 신뢰할 수 있는 철저한 기술 서비스가 통합된 차세대 플랫폼 ‘임파워링 테크놀로지(Empowering Technology)’ 플랫폼을 출시하기도 했다. 특히 창업 30주년을 맞은 2006년에 세계 노트북PC 시장 3위, 데스크톱PC 시장 4위 브랜드로 올라섰다. 또 2007년에 게이트웨이와 패커드 벨 인수를 완료하며, 글로벌 PC 기업으로서 밑그림을 완성했다. 지난해 매출 166억5000만달러와 영업이익 4억2880만달러를 기록했다. 또 작년 전체 PC 공급 대수는 3354만대로 2년 만에 두 배 이상 성장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소박스/에이서의 인재 경영과 사회 공헌 에이서가 현재의 모습에 이를 수 있었던 데에는 브랜드와 함께 인재 관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에이서는 성장과 발전을 위해 직원들을 회사의 중요 가치로 생각하며, 팀워크를 통해 잠재능력을 이끌어내고 있다. 또 건설적인 근무 환경이 직원들이 삶과 직업 사이에서의 균형을 유지하도록 도와준다는 것이 에이서의 철학이다. 타이베이 본사에서는 직원들을 위해 영화 감상, 뮤직쇼, 다양한 스포츠 이벤트를 정기적으로 진행한다. 또 에이서 패밀리데이, 할로윈 데이 파티, 크리스마스 파티, 등산, 운동 교실, 건강 관련 세미나 등이 개최해 직원들의 복지에 힘쓰고 있다. 사회 공헌 활동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지난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 당시에는 자체적으로 지진 구호활동 조직을 결성하고 재건축 사업을 시작했다. 또 5월 24일부터 6월 1일까지 자선세일을 실시해 이 기간 동안 판매된 수익 전액을 쓰촨성 재건축 사업 및 집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구호 기금으로 기부했다. 또 구호 활동이 끝난 후에도 파트너들을 대상으로 ‘부서지지 않는 중국의 심장(Unbreakable Chinese Heart)’ 활동을 꾸준히 독려했다. 이 외에 호주 지사의 나무 심기 프로젝트를 비롯해 다양한 국가에서 ‘탄소 중립(Carbon-Neutral)’ 캠페인을 펼치는 등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환경 보호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타이베이(대만)=양종석기자 jsy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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