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부터 준비해온 소액지급결제서비스가 시작됐다. 투자회사는 다양한 상품 개발에 나서면서 은행과 선의의 경쟁을 펼쳐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됐다.” 7월 4일 황건호 한국금융투자협회장은 증권사 자산관리계좌(CMA)를 통한 소액 지급결제 서비스 개시에 맞춰 이같이 말했다. 증권가가 은행권에 보내는 이른바 직장인 ‘월급통장 대전’이 벌어졌음을 알리는 선전포고기도 하다. 2009년 하반기 금융권 최대 이슈는 증권사의 업그레이드된 CMA 상품이다. 소액결제를 무기로 증권사들이 은행권과 한판 대결을 펼치고 있다. 물론 은행권도 쉽게 물러서지는 않는다. 이자를 올리고 인터넷뱅킹을 포함, 각종 수수료 면제 혜택을 제공한다. 그동안 유지해온 월급통장 서비스를 결코 증권사에 넘겨줄 수 없다는 자세다. 월급쟁이들은 고민에 빠졌다.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과거 어느 은행 상품을 선택할지 고민했다면 앞으로는 은행과 증권사 상품 모두를 비교해 봐야 한다. 선택 여하에 따라 수익에 대한 기대감은 커진다. 은행과 증권사 간 월급통장 대전은 소액결제가 계기가 됐다. 소액결제는 은행에서 일반적으로 해 왔던 현금 외의 지급수단 제공을 말한다. 어음이나 수표 결제, 지로나 공과금 자동이체, 인터넷이나 전화를 이용한 송금 등이 모두 소액결제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시행과 함께 마련됐다. 증권사에는 커다란 기회가 찾아 온 것이다. 그동안 높은 금리를 내걸고 다양한 금융상품을 판매해 왔지만 은행과는 서비스 차원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증권사들은 이전에도 CMA 계좌에서 신용카드 대금 결제서비스를 제공했지만 이는 증권사와 제휴한 은행에 만들어진 가상계좌를 거쳐 이뤄졌다. 자연스럽게 계좌이체 시간 제약 등 불편이 뒤따랐다. 고객들은 ‘은행 상품’을 떠올리며 매번 아쉬움을 토로했다. 소액결제서비스가 가능해지면서 ‘은행상품보다 서비스가 못하다’는 굴레를 벗어난 것이다. 증권사들은 고금리 CMA 상품으로 시장을 공략한다. 4∼5%대의 고금리 상품을 내놓으며 은행이 독점하다시피 한 시장 빼앗기에 나섰다. 지난달 증권사의 마케팅 열기는 후끈했다. 초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다. 과열양상을 보이자 금융당국이 ‘CMA 시장 감독강화방안’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CMA 신용카드 출시와 소액결제서비스 개시 등을 계기로 과당경쟁이 우려되는 CMA 시장을 금융당국이 관리감독 강화에 나선 것이다. 증권사 공격이 본격화하자 은행도 바로 대응에 나섰다. 증권사의 공격적 마케팅으로 금리에 민감한 고객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은행의 수시입출금식 계좌를 월급통장으로 이용했던 고객들은 허전함을 떨쳐내지 못했다. 금리가 사실상 ‘제로(0)’에 가깝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의 대대적인 마케팅으로 고객들이 서서히 은행상품에서 증권사 상품으로 이동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자, 은행들이 바싹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고금리 CMA 상품이 부럽지 않은 은행 상품을 시장에 속속 선보이고 있다. 잠재 충성고객을 확인하는 일정 기준을 부여하고 기준을 넘는 고객에게는 높은 금리를 부여하거나 수수료를 면제하는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이의 대표적인 사례가 일정 금액 이상을 예치하면 별도의 고금리 계좌로 자동 이체가 가능한 ‘스윙 어카운트’ 서비스다. 예치금액 기준으로 100만원 미만이면 금리가 제로에 가깝지만 넘으면 고금리를 주는 형태다. 스윙 어카운트가 시장에서 크게 반향을 일으키면서 100만원 미만에도 일정 금리를 챙겨주는 역발상 상품이 나왔다. 이뿐만 아니다. 다양한 은행 서비스를 이용할 때 수수료를 우대하고 또한 대출 시 금리도 낮춰준다. 마지막까지 ‘갈아타기’를 고민하는 고객을 잡겠다는 목적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 상품이 증권사 CMA에 비해 금리가 낮을 수는 있겠지만 여러 부가 서비스를 고려하면 결코 밀리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한 달여 증권사의 지급결제 서비스를 ‘절반의 성공’으로 평가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3개 증권사가 지급결제 서비스를 하기 시작한 지난달 4일 이후 이달 2일까지 CMA 계좌가 21만1463개 증가했다. 이는 올해 들어 지난 7월까지의 월 평균 계좌 증가분 15만1000개에 비해 40% 많은 수치다. 하지만 계좌 수 증가 추세와 달리 지난 2일 기준 계좌 잔고는 39조7941억원으로 지난달 3일의 40조3187억원과 비교했을 때 소폭 줄었다. CMA는 큰 폭 늘었지만 잔액은 감소한 셈이다. 이에 대해 증권사의 공격적 마케팅으로 계좌 수가 크게 증가했지만 본격적인 ‘머니 무브’가 일어나지 않아 계좌 증가가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은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증권업계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이다. CMA도 은행의 수시입출금식 예금처럼 자금 유출입이 잦아 CMA 잔고의 변동 자체가 큰 의미가 없다는 설명이다. 늘어나는 계좌를 펀드 같은 투자상품 판매로 연결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도 한몫했다. 전문가들은 은행과 증권사의 월급통장 대전은 ‘이제부터’라고 평가한다. 그동안 초기 마케팅에 의해 시장이 움직였다면 앞으로는 고객 중심 서비스 여하가 승패를 가를 것이라는 분석이다. 은행 쪽에서는 증권사 CMA 상품에 뒤지지 않는 금리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 증권사도 은행 상품과 버금가는 편리한 자산관리 상품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월급통장을 놓고 펼칠 이들 은행과 증권사의 경쟁은 고객에게 보다 큰 서비스로 이어지고 동시에 우리 금융산업 발전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김준배기자 jo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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