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선진국이 경기부양의 일환으로 정보기술(IT) 투자 카드를 빼든 가운데 개발도상국들도 이에 질세라 IT 산업 키우기에 나섰다. 인도·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와 아르헨티나·콜롬비아 등 중남미 개발도상국, 중동의 주요 국가들은 급변하는 디지털 경제에 뒤쳐지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대규모 인프라 구축 방안을 쏟아냈다. IT 산업이 국가 경제 및 생활 수준 전반에 미치는 전방위적 영향을 고려한 정책 집행으로 풀이된다. IT 강국 인도는 다시한번 IT 산업을 통한 재도약에 나선다. 특히 인도 정부는 전세계적으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친환경 IT 산업에 고삐를 죈다. 에너지 효율화를 겨냥한 정책으로 환경 오염 방지와 산업 발전을 동시에 노린다. 아시아의 강소국 싱가포르는 의료 부문에 첨단 기술을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 ‘미래 싱가포르’ 구축 사업을 추진한다. 남미 대표 국가 중 하나인 아르헨티나는 에너지·광업·통신·교통분야 인프라 확충에 310억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다. 콜럼비아도 통신·에너지를 포함한 인프라 건설에 240억달러를 쏟아붓기로 했다. 이집트 등 중동 국가들은 통신 인프라 확충 및 항만 현대화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경기 부양을 추진한다.
◇인도 아시아의 3위 경제대국이자 전통적인 IT 강국으로 꼽히는 인도는 세계적 경기 침체에 국내 상황이 겹쳐 암울한 전망 속에 2009년을 시작했다. 올초 간판 IT 서비스업체 새티암이 회계 부정을 폭로하면서 전 세계 IT 서비스의 공급처로 각광받던 위상이 흔들리면서 고객 이탈의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정부가 발빠르게 수습에 나서며 이를 전화위복으로 삼았다. 새티암 사태를 IT업계 전반의 경영 투명성을 높이는 기회로 삼겠다는 정부 발표가 이어지면서 예측보다 충격이 적었다는 평가다. 지난달 인도 상공회의소(FICCI)가 372개의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0%가 인도 기업이 믿을 만하다고 답했다. 또한 60%는 지난 6개월에 비해 향후 인도 산업의 성과가 개선될 것으로 내다봤다. 에너지를 필두로 그린 IT 산업 육성에도 적극 나선다. 인도정부는 올해 연말까지 인도 화석연료 사용량의 40%를 차지하는 700개 이상의 산업체에 대한 인센티브·규제 방안이 포함한 내년도 에너지 소비 감축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아자이 마투르 인도 에너지능률국 국장은 “인도의 에너지 효율화 시장은 150억달러(약 18조5000억원)에 이른다”며 “(산업 발전을 통한) 에너지 절감으로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2% 가량을 줄일 수 있다”고 천명했다. 그린 IT 산업을 발전시켜 에너지 산업 활성화는 물론 기후 변화 저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전략이다. 인도 정부는 또한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 중소기업의 신용보증 한도를 1000만달러에서 2000만달러로 두 배 확대하는 등 약자를 배려하는 IT정책에 힘을 기울이기로 했다. 최근 블룸버그에 따르면 인도의 올해 2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동기 대비 6.1% 늘어 일년 전 성장률인 5.8%를 상회했다. 2년만에 성장률이 증가세로 돌아섰다. 외신은 인도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유효했다고 평가했다.
◇싱가포르·말레이시아 사상 최악의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싱가포르는 약 132억달러의 추가 예산을 투입해 기업 지원 및 고용 유지 정책을 펴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29억달러가 배정된 ‘미래 싱가포르’ 구축 사업이다. 미래 싱가포르 사업에는 IT 기술이 전반적으로 도입될 의료 및 교육 관련 지출 확대가 결정됐다. 정부는 5년간 의료 인프라에만 26억달러를 투입, 병원을 재개발해 첨단 의료IT가 접목된 의료 강국으로의 도입을 꿈꾸고 있다. ‘의료 관광’ 마케팅으로 인지도를 얻은 만큼 의료 서비스를 첨단 산업화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보이는 대목이다. 또한 싱가포르 정부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청정 싱가포르 청사진’을 발표하고 향후 5년간 6억5000만달러를 투입할 계획이다.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고용 수준을 유지하는 기업에 일정 비율의 현금(Job’s credit)을 제공하고 실업자들의 재취업을 위한 직업 교육에 33억7000만달러가 투입된다. 정보화 사업 추진도 눈에 띈다. 싱가포르는 2009년 회계년도에만 392개 이상의 신규 정보화 프로젝트를 시행해 17억3000만 싱가포르달러(약 1조4900억원)를 쏟아부을 전망이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지난 4월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인 166억달러의 경기 부양책을 발표했다. 말레이시아는 정책의 무게 중심을 감세보다는 사회간접자본 확충을 통한 재정지출 확대에 뒀다. 크게 12개로 나뉘어진 투자 항목에서 정부는 초고속 브로드밴드 인터넷 구축에 1억1100만달러를, 기술교육 프로그램 확대에 약 8300만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다. 국민 생활의 근간이 되는 인프라 확충과 기술 인력 양성으로 국가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복안이다.
◇이집트 및 중동 중동 국가들은 통신 인프라 확충을 주요 과제로 내세웠다. 특히 이집트 정부는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에 대한 투자가 이집트 산업 전반이 성장하는 기회를 마련했다고 판단, 정보통신산업 활성화에 팔을 걷어부쳐 눈길을 끈다. 정부가 올해 초 상반기에만 경기 회복을 위해 쏟아붇기로 한 27억달러 중 대부분인 21억달러 가량이 통신, 도로, 철도 건설 등 인프라 시설을 구축하는 데 투입된다. 이는 10월 18일부터 두바이에서 열리는 정보기술 전시회 GITEX를 계기로 더욱 입지를 다질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 정보통신기술부는 자국 업체들의 참여를 독려해 참가업체가 전년도 30개에서 올해 15%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헬랄 사이드 알마리 두바이국제무역센터 CEO는 “정부의 독려로 이집트 정보통신기술 시장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큰 경쟁력을 확보했다”고 평했다. 또한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공공 지출이 늘면서 이집트 정보통신 업체들이 큰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조사업체 비즈니스모니터인터내셔널(BMI)은 이같은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에 힘입어 이집트의 정보통신 산업이 2013년 19억달러 규모를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정부의 ‘전 가구 컴퓨터 갖기(Computer for Every Home)’ 프로그램, 전자정부(eGovernment) 정책으로 지난해 2억8300만달러로 정보통신산업의 24%를 차지한 서비스 분야가 2013년까지 12% 성장할 것으로 분석했다. 이밖에도 중동 국가들은 IT 인프라와 시스템 구축에 지속적으로 투자해 자국 업체는 물론 글로벌 업체를 유인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두바이 전자정부 사업, 항만 IT화 등이 대표적이다.
◇중남미 남미 대표 국가 중 하나인 아르헨티나는 지난해 말 310억달러(약 38조3000억원) 규모의 공공사업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추진분야는 에너지·광업·통신·교통분야 등 기술 인프라 확충에 집중됐다. 특히 통신 분야에서는 올해에만 11억달러의 민간투자를 유도하고, 위성방송 개발에 2500만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교통분야에서는 기존 도로·교량 등의 유지보수 및 철도시스템 현대화를 추진한다. 특히 에너지부문에서는 석유가스개발에 3억달러, 바이오연료 개발에 2억달러를 투입하는 등 녹색 에너지 사업에도 방점을 찍었다. 콜럼비아도 통신·에너지를 포함 한 인프라 건설에 240억달러(약 30조원)를 쏟아붓기로 하는 등 정부 지출을 늘려 산업 및 경제를 살리는 데 힘을 모으고 있다. 남미의 대국 브라질은 개인소득세 및 금융세, 주요산업부문에 대한 감세와 대출이자 인하 등 민간의 소비와 기업 투자가 탄력을 받을 수 있는 정책을 폈다. 차윤주기자 chayj@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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