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수지의 흑자 행진이 지속되고 있지만 수입 감소에 따른 불황형 흑자라는 측면에서 우려감이 높아지고 있다. 수입 감소로 설비투자가 지연되면 내년부터 경기 회복이 본격화하더라도 수출이 탄력적으로 증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다. 30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한국 경제는 대규모 추경 편성과 예산 조기 집행으로 비교적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전자·자동차·석유화학 분야의 선전으로 무역수지 흑자 폭이 늘어나면서 경상수지도 호조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28일 발표한 ‘7월 중 국제수지 동향(잠정)’에 따르면 지난달 경상수지는 44억달러 흑자를 기록, 올해 누적 흑자는 261억5000만달러로 늘었다. 하지만 수출 증가보다는 수입 감소에서 유발된 불황형 흑자의 후환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지난 7월 수출은 지난해 7월보다 20.5% 감소했지만 수입이 34.8% 감소해 수입 감소 폭이 수출 감소 폭을 웃돌았다. 불황형 흑자는 외환위기 직후였던 1998년에도 있었다. 당시 경상수지는 403억달러로 최대 흑자 폭을 기록했지만, 이는 수출은 2.8% 감소한 데 비해 수입은 35.5%나 감소한 데 따른 것이었다. 올해 역시 상반기 기준 수출은 1656억6819만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22.6% 감소한 반면 수입은 1445억7226만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34.5% 줄어들어 수출보다 수입 감소 폭이 더 컸다. 특히 투자와 직결되는 자본재 수입이 크게 감소하고 있다. 1∼6월까지 기계류·정밀기기 수입은 전년 동기대비 28.4% 줄었고 전기·전자기기와 수송장비도 각각 26.3%, 24.6% 감소했다. 자본재 수입 감소의 영향은 투자 위축으로 나타난다. 통계청에 따르면 2분기 반도체 장비 등 기계류 설비투자는 1년 전과 비교할 때 19.8% 줄었다. 기업의 투자가 지금처럼 위축될 경우 잠재성장률이 2%대로 추락할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안순권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원자재와 장비를 수입, 가공해 수출하는 형태의 국내 산업 구조상 수입이 큰 폭으로 감소한다는 것은 신규 설비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라며 “새로운 시장에 대비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 경기 회복 후 대응에 뒤쳐질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국제유가가 계속 오르고 원화마저 강세를 보이면서 저유가와 고환율이라는 보호막이 사라지고 있다. 이에 따라 하반기에는 흑자 기조가 꺾여 큰 폭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정부와 업계의 주름살이 깊어지고 있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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