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
-고려시대의 불교-
고려는 475년이라는 긴 역사 가운데 독특한 문화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고려의 종교는 기존의 불교, 유교와 더불어 도교와 풍수지리도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면서 종교의 다양성이 이루어지는 특색을 보여준다. 하지만 고려시대에서 ‘불교’가 가지고 있는 비중이나 의미는 다양성이 보여 지는 그 특색가운데서도 남다른 것이었다.
고려시대의 불교는 국가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기본적으로 국가불교, 체제불교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국가는 불교를 지배이념으로 하여 체제안정과 사회통합을 꾀하였으며 상징적으로는 국사, 왕사제도 등을 두고 승려를 극진히 대우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그들을 일반 행정체계 아래에 두고 인사와 교단 운영을 통제하였다.1) 이렇듯 불교는 고려시대에서 가장 높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종교였다고 말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고려시대에는 역사적으로 명망 높은 승려들도 많았던 시기였다.
고려사의 표현대로 ‘몰래 송나라로 빠져나간’ 의천은 천태종을 독자적으로 해석하여 해동천태종을 창립하였고 이 천태종은 고려의 공인을 받은 교단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 시기의 의천의 활동은 숙종의 왕권 강화책을 뒷받침 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는 후에 ‘대각국사’라는 명칭까지 얻을 정도로 그 영향력이 대단한 승려였다. 지눌은 권력과 결탁한 불교계를 비판하며 결사를 창설하는 등 본래의 모습을 망각하고 있는 불교를 바로잡으려는 운동을 하였는데 그의 이러한 운동은 단순한 불교운동에서 끝나지 않고 역사 정화운동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신돈은 일개 승려에서 국정에 참여하며 기존의 기득권 세력을 몰아내고 공민왕의 최측근 세력까지 오르게 된 승려였다. 그는 토지개혁 등의 과감한 개혁을 단행하는 등 승려의 모습을 벗어난 모습을 보이지만 결국 자신을 스승이라 부르던 공민왕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이렇듯 고려사회에서 불교의 승려들은 자신들의 활동 영역 뿐 아니라 정계까지 진출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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