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전서
‘이율곡’이라는 인물을 떠올렸을때 그의 이름 ‘이율곡’과 그의 업적이 생각나기 이전에 어렸을 적 많이 들었던 ‘오성과 한음’이라던지 그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의 아들이라는 것이 나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지만 ‘율곡전서’와 이율곡에 대하여 조사하는 시간을 가지며 그가 한국사에 길이 남을 사상가인 동시에 정치가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모든 현상은 ‘기’의 작용으로 발생하는 것이고, 그 근거가 바로 ‘이’라는 것이 율곡 사상의 근본이다. 율곡에 따르면 ‘이’는 공기와 물 같은 것이고, ‘기’는 그릇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 공기와 물이 그것을 담는 그릇의 모양에 따라 형태가 정해지는 것처럼 ‘이’도 변화하지 않는 ‘본연의 것’이지만 성질이 일정한 범위 안에 국한되는 ‘기’의 존재 때문에 서로 다른 현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는 형이상의 불변하는 것이고, ‘기’는 형이하의 변화하는 존재로서 ‘이’는 ‘기’를 주재하며, ‘기’를 통해 ‘이’가 나타난다고 보았다. 율곡은 ‘기’가 ;이‘의 명령을 듣지 않는 것을 ’주리(主理)‘라고 하였는데, 이 중 전자를 ’지선(至善)‘으로 보았다. 만물의 본연인 ’이‘가 중요한 것은 물론이지만, ‘기’에 의하여 국한되고 차별되므로 ‘기’의 갈고 닦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한 율곡은 당시의 교조적인 견해에 반대하고, 학문의 참된 이치를 탐구하는 자주적인 학풍을 세웠다. 따라서 그는 화담 서경덕이나 퇴계처럼 재야에 머물러 학문 연구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정학일체(政學一體)의 정신에 따라 끊임없이 현실 정치에서 실천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는 공부도 중요하지만, 경세제민(經世濟民)을 실천한 것이 배운 자의 임무라고 생각한 것이다.
사상가로서의 모습보다는 우리에게 이율곡은 정치가로서의 모습이 더 많이 알려진 것이 사실이다. 정치가로서의 이율곡의 모습은 나라를 생각하는 그의 마음과 끊임없이 개혁을 추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기자실기’와 ‘경연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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