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의 오해와 한(漢)과 로마의 교류
목차.실크로드의 오해와 한(漢)과 로마의 교류.교류의 배경 .교류에 대한 노력.한과 로마의 교류.로마에 의한 해양실크로드의 발전.로만글라스와 비단, 이를 통한 무역의 세계화
참고문헌
.실크로드의 오해와 한(漢)과 로마의 교류
`실크로드`라는 표현은 19세기에 와서 씌어 지기 시작한 것으로 오해의 소지가 있다. 첫째로 동서를 잇는 통일된 교역로가 하나 있었던 것이 아니다. 중앙아시아를 관통하는 몇 가지의 통로들이 개척되어 있었고, 이 통로들은 몇 개의 독립된 오아시스 도시들을 연결하는 것이었다. 둘째로, 실크로드는 실크만을 위한 교역로가 아니었다. 중국으로 향하는 대상들은 금과 같은 귀금속, 상아, 보석, 중국에는 없던 유리 등을 가지고 갔다. 중국에서 서쪽으로 가는 대상들은 털가죽, 도자기, 옥, 청동기, 옻칠기, 철기 등을 가져갔다. 로마의 장사꾼들이 장안에 왔었다는 기록이나, 반대로 중국의 상인들이 로마에 갔었다는 기록은 없었지만, 그 들의 상품들은 로마와 장안에서 값비싸게 유통하였다. 동서를 잇는 교역로가 개척되어 상인들의 교류가 빈번해지자 이를 노리는 도적들의 활동도 함께 발전하게 되었다. 초기의 대상들은 이들 도적에 대한 방비책을 스스로 마련해야 했으며, 교역의 발전에 커다란 장애가 되었다. 한나라는 상권을 보호하고 국경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교역로 주변에 성곽 도시들을 개척하게 된다. 옥문관(Yumen Guan)이나 가욕관 (Jiayuguan)과 같은 관문들은 이러한 목적으로 건설된 것이다. 그러나, 티벳의 산악지대를 근거지로한 산적들이나, 흉노들의 침입으로 인해 교역로가 항상 안전한 상태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한의 조정에서는 타클라마칸 사막의 경계지대에 지방정부를 두기도 하였고, 투르 판 오아시스 부근에 까오창(Gaochang)1)을 건설하기도...
· 해피레포트는 다운로드 받은 파일에 문제가 있을 경우(손상된 파일/설명과 다른자료/중복자료 등) 1주일이내 환불요청 시 환불(재충전) 해드립니다.
(단, 단순 변심 및 실수로 인한 환불은 되지 않습니다.)
· 파일이 열리지 않거나 브라우저 오류로 인해 다운이 되지 않으면 고객센터로 문의바랍니다.
· 다운로드 받은 파일은 참고자료로 이용하셔야 하며,자료의 활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다운로드 받은 회원님에게 있습니다.
저작권안내
보고서 내용중의 의견 및 입장은 당사와 무관하며, 그 내용의 진위여부도 당사는 보증하지 않습니다.
보고서의 저작권 및 모든 법적 책임은 등록인에게 있으며,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저작권 문제 발생시 원저작권자의 입장에서 해결해드리고 있습니다. 저작권침해신고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