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은 대의론자 인가 아니면 변절자에 불과한가!!!
[목차]. 서론.본론 . 결론.참고문헌
. 서론
예로부터 책사는 정책을 기획하고 집행하여 정치의 핵심을 이루었다. 따라서 단지 세력가의 꾀주머니 역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도적 세력으로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보면 주(周) 문왕(文王)의 스승인 태공망(太公望)과 한(漢)의 유방(劉邦)을 보필한 장량(張良), 유비(劉備)의 군사(軍師) 제갈량(諸葛亮) 등도 모두 책사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가 주목하는 책사는 다름 아닌 제환공(齊桓公)을 도와 패업을 이룬 관중(管仲)이란 인물을 집중 조명하고자 합니다.
.본론
주나라가 쇠퇴해질 무렵, 여러 나라들이 패권을 다투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한 묶음으로 묶어줄 지도자가 없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마침 이러한 시기에 제환공이 등장하게 되었고 또한 제환공을 도와 패업을 이룩하게 했던 사람이 관중이기도 했었습니다. 더구나 그 당시에는 패자(覇者)라는 개념이 없었고 맹주(盟主)라는 개념도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제환공의 등장으로 인해 제후(諸侯)들을 모아 그 회맹(會盟)하여 최초의 패자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제환공이 맹주가 되어서 패자가 되었다면 관중을 이를 보필하여 책사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관중(管仲) 이오(夷吾)는 영수(潁水) 남쪽 사람이다. 그는 젊었을 때 항상 포숙아(鮑叔牙)와 사귀었는데, 포숙은 그의 현명함을 알아주었다. 관중은 곤궁하여 언제나 포숙을 속였지만, 포숙은 항상 그를 잘 대해 주었으며, 속인 일에 대해 따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난 뒤, 포숙은 제(齊)나라 공자(公子 제후의 아들을 말함) 소백(小白)을 섬기고, 관중은 공자 규(糾)를 모셨다. 소백이 왕위에 올라 환공(桓公)이 되었고, 이에 맞서던 규는 싸움에서 져 죽었다. 관중은 옥에 갇히는 몸이 되었으나 포숙은 환공에게 관중을 힘껏 추천하였다. 이렇게 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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