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4, 5권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읽고
[목차]
. ‘그’와 키케로. ‘그’와 술라 . ‘그’와 옥타비아누스
𠎠년이라는 전무후무한 장대한 역사의 국가, 로마. 기원전 8세기 중반에 건국되어 1453년, 비잔틴 제국이 투르크에게 멸망당하기까지 20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로마는 2번의 큰 변화를 통해 더욱더 번창해나갔다. 첫 번째는 기원전 510년에 로마 시민들이 주도하여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세운 것이고, 두 번째는 기원전 1세기에 ‘카이사르’라는 위대한 영웅의 계획에 따라 옥타비아누스가 교묘하게 제정이 세운 것이다. 로마의 역사에서 제정이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1500년. 서로마 제국의 멸망까지만 따져도 제정은 1000년 중 500년에 해당한다. 로마라는 거대한 국가의 수명을 적게는 2배, 많게는 4배까지 확장시킬 계획을 세운 장본인인 `그`를 보면서 감탄하지 않고, 매력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일 것이다. 나는 `그`를 매우 좋아하지만, 존경하지는 않는다. 사실 ‘그’는 이름을 부르기에도 벅찰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다. 또 다른 위인 키케로, 술라, 그리고 옥타비아누스와의 비교를 통해 진정한 지도자로서의 ‘그’의 면모를 밝혀내보자.
. ‘그’와 키케로
대부분의 로마인들이 그러했듯이, `그`와 키케로 또한 로마를 매우 사랑한 인물이었다. 그들은 철학과 문학을 함께 토론하는 학문적인 동지이기도 했다. 다만, 로마의 미래에 대해서 의견을 달리하면서 결정적으로 대립할 수밖에 없게 된다. 키케로는 공화주의자였기 때문이다. 키케로는 로마 최고의 변호사이며, 저술가였다. 말과 글에 있어서 그를 따라올 자가 없었지만 그에게는 결단력이 부족했다. 많은 생각 탓에 실행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고, 항상 결정적인 기회를 놓치곤 했다. 또한 그는 대중들을 ‘설득’시킬 수는 있었지만, 자기 사람으로 ‘매료’시키지는 못했다. 논리와 감성을 적절히 사용한 것으로 유명한 키케로이지만, 언제까지나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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