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트족과 게르만족의 사회구조
1. 켈트족(Celtic tribes)의 사회구조
켈트족은 철기문화의 발전과 더불어 출현해 유럽에 넓게 퍼져 농경과 무역에 종사하던 족속이었다. 이들의 지도자들은 부유한 군인으로서 대부분 요새화된 읍에서 살았으며, 한편으로 프랑스리베아 해안에 살면서 중부유럽까지 포도주를 교역하던 그리스 상인들과 접촉하기도 하였으며 언덕의 요새와 잘 방어된 마을에 살면서 BC 1C경에는 로마의 카이사르에게 도전하였던 부족민이었다.1)
1) 켈트족의 사회경제 구조
켈트족은 기본적으로 여러 씨족집단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농경, 목축, 수렵 그리고 인접 씨족과의 무역으로 경제생활을 영위하였다. 토지제도는 대토지소유제가 어느정도 성립되어 있었을것으로 추정되나 기본적인 제도는 아니었다. 갈리아 전기 의 기술의 곳곳에서 확인된는 수령과 유력자의 존재나 사병집단의 존재는 일정한 대토지소유제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증거이다. 이 당시 농경생활의 주요 곡물은 귀리였고 로마와 거리가 가까운 부족일수록 무역량이 많았고 로마와 상대적으로 거리가 먼 벨가이인 같은 경우는 무역에 대한 의존도가 거의 없었을 뿐 아니라 로마에 대한 예속의 정도도 그리 심하지 않았다. 당시 갈리아인들 사이의 무역품은 대체로 전쟁에서 얻어진 전리품(노예가 주종을 이루었을것이다.)과 주요 권력자에게 필요한 사치품이 대부분이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벨헤티족같이 전쟁을 위해 말과 마차를 거래하는 경우도 있었다.2)
당시 켈트족의 사회경제구조는 노예제도에 근간하고 있었다. 철기문명의 발달과 농경문화의 발전은 종래와는 달리 노예의 필요성을 한층더 부채질 하였을것이다. 이런 사실은 카이사르가 베네티족과의 전쟁이 끝난후 원로들을 모두 죽이고 나머지는 노예로 팔았다는데서 직접적으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벨가이족과의 전쟁이 끝난 이후 전리품(포...
· 해피레포트는 다운로드 받은 파일에 문제가 있을 경우(손상된 파일/설명과 다른자료/중복자료 등) 1주일이내 환불요청 시 환불(재충전) 해드립니다.
(단, 단순 변심 및 실수로 인한 환불은 되지 않습니다.)
· 파일이 열리지 않거나 브라우저 오류로 인해 다운이 되지 않으면 고객센터로 문의바랍니다.
· 다운로드 받은 파일은 참고자료로 이용하셔야 하며,자료의 활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다운로드 받은 회원님에게 있습니다.
저작권안내
보고서 내용중의 의견 및 입장은 당사와 무관하며, 그 내용의 진위여부도 당사는 보증하지 않습니다.
보고서의 저작권 및 모든 법적 책임은 등록인에게 있으며,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저작권 문제 발생시 원저작권자의 입장에서 해결해드리고 있습니다. 저작권침해신고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