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그래도 지구는 돈다”1) 이 말은 재판장을 떠나면서 갈릴레오가 했던 말이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께서 사주신 위인전에 들어있었던 말이기도 하고, 그 때부터 나는 갈릴레오라는 인간에 대해 흠뻑 빠졌었다. 이 위인전을 밑거름으로 삼아서 잠시 나는 초등학교 시절 천문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꾸기도 했었고, 어머니께 천체망원경을 사달라고 졸랐다가 혼난 적도 있었다. 각설하고, 자신이 진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지동설’을 변호하기 위한 재판이었으나, 그는 결국 교회의 힘에 굴복하고 말았으며, 자신의 입장을 철회하게 되는 그런 지식인으로서 해서는 안될 일을 하고야 만 갈릴레오. 갈릴레오는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이런 고민에서부터 이 글은 시작되게 되었다.
갈릴레오는 어떤 사람인가
Galileo Galilei 1564 - 1642
이탈리아의 천문학자이며, 물리학자. 수학자이기도하다. 피렌체의 시민계급 출신이다. 성과 이름이 비슷한 이유는 장남에게는 성을 겹쳐 쓰는 토스카나 지방의 풍습 때문이다. 피사의 사탑에서 실시한 낙체에 대한 실험으로도 유명한 그는 1579년 피렌체 교외의 바론브로사수도원 부속학교에서 초등교육을 마치고, 1581년 피사대학 의학부에 입학하였는데, 이 무렵 우연히 성당에 걸려 있는 램프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단진자(單振子)의 등시성(等時性)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1584년 피사 대학을 중퇴하고 피렌체에 있던 가족과 합류하였다. 이곳에서 아버지 친구이자 토스카나 궁정수학자인 오스틸리오 리치에게 수학과 과학을 배우면서 대단한 흥미를 느꼈다. 이때 습작(習作)으로 쓴 논문이 인정을 받아 1592년 피사 대학의 수학강사가 되었고, 같은 해 베네치아의 파도바 대학으로 옮겼다. 파도바 대학에서는 유클리드기하학과, 천동설(天動說)을 주장한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을 가르치는 한편, 가정교사 노릇을 하면서 리치에게 배운 응용수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기도 하였다. 《간단한 군사기술 입문》 《천구론(天球論) 또는 우주지(宇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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