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소설론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읽고
‘무진기행’이라는 작품을 읽자마자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무진’이라는 지방이 정말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실제로 이러한 허무적이고 음울한 느낌을 줄 수 있는 곳이 존재할 까에 대한 물음. 한마디로 안개로 자욱히 쌓여있는 한가로운 농촌마을이라는 공간적 배경과 그에 따른 몽환적이고, 허무한 느낌이 이 소설에서 가장 먼저 내게 다가왔다.
이러한 안개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일까 주인공은 분명 현실적으로 출세한 인물인데도 불구하고, 젊은 날의 번민과 고통이라는 내적인 허무감을 떨치지 못하는 고독한 존재이다.‘안개’가 주는 앞을 보지 못하는 불가시성과 그것이 표상하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의 음울한 의식을 보면 이러한 배경은 분명 의도적으로 설정된 장치라고 보여진다. 그렇다면 결국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진정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주인공은 ‘여행’을 떠난다. 자신이 자란 곳 이자, 요양했던 곳이며, 힘들 때 마다 찾는 고향인 ‘무진’. ‘여행’은 주인공에게 자기 자신의 내면 의식을 볼 수 있는 ‘거울’과 같은 장치로도 작용하고, 또한 ‘일탈’의 시간으로도 그려진다. 터미널에서 본 미친여자와 자살한 술집 작부를 보며, 그것을 자신의 내면 의식으로 깊게 공감한 것을 보면 이러한 ‘여행’을 자의식에 대한 물음을 가지는 기회로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인공은 과거 6·25 사변 때 집에서 숨어지내던 경험이나, 서울에서 현실에 순응하여 집안 좋은 미망인과 결혼했던 것들과 같은 기억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러한 내면속의 기억들은 방안에서 몰래 수음(手淫)을 즐기는 것과 같은 것으로 상징된다. 사람들이 모르는 곳에서 금기시된 것을 행함으로 최소한의 위안을 삼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시대 배경적으로도 접근해 보면 한참 현대화, 도시화, 배금주의가 만연하던 1960년대라는 시간적 배경과 함께 주인공의 전쟁 때 숨어있던 것에 대한 수치심, 실연, 실직의 아픔과 같은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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