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신문이 연재할 부품·소재 일류화 캠페인은 올 연말까지 총 5부작에 걸쳐 국내 산업계의 현주소와 발전 방안을 총체적으로 진단할 예정이다. 1부로는 현재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고 있는 주력 산업을 업종별로 분석, 소개한다. 2부에서는 미래 한국이 먹거리로 삼아야 할 이른바 녹색 산업을 집중 조명하고, 근간이 되는 핵심 부품·소재 산업의 경쟁력을 조기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3부에서는 첨단 소재를 비롯한 기초 원소재 기술 경쟁력 제고 방안과 각종 희유금속의 수급 개선 방안을 살펴볼 예정이다. 4부는 모든 부품·소재 기술의 기초인 생산기반기술을 공정별로 소개하고,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대안을 찾아본다. 이 같은 진단을 거쳐 이른바 ‘한국형 부품·소재 산업 발전 전략’을 도출하고자 하는 것이 본 기획의 목표다. 그 첫회로 1부 ‘주력산업’편에서는 우리나라 간판 산업으로 성장한 디스플레이 업종의 LCD 산업으로 문을 연다.
지난해 LCD 패널 업계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장치산업으로 떠올랐다. 한 해 외화를 벌어들이는 수출 규모만 337억달러를 넘어서 우리나라 최고의 효자 산업으로 부상한 것이다. 세계 시장을 주름잡는 위상에 힘입어 지금은 후방 산업인 주요 부품류의 국산화도 크게 진보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 업체가 독자개발에 성공하거나 해외 원천기술 보유 업체의 국내 (합작)투자 등을 거쳐 유리기판·컬러필터·편광판·구동IC·백라이트유닛(BLU)의 5대 핵심 부품의 국산화율은 비교적 만족스러운 수준에 올랐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다르다. 핵심 부품도 대부분 ‘무늬’만 국산일 뿐 여기에 들어가는 원부자재와 기초 소재는 여전히 해외 의존도가 심각한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LCD 종주국인 일본의 저력은 소재 산업에서 여전히 무서울 정도다. 대일 수입 상위 품목 순위가 단적인 실태다. 지난 2007년 기준 대일 수입 상위 10대 품목 가운데 LCD용 부품·소재가 TAC필름·유리원판·편광판 등 무려 세 개나 포함됐다. 완성 부품인 편광판의 핵심 소재 TAC필름은 대일 수입액이 무려 8억2433만달러로, 조선용 후판에 이어 5위에 올랐다. 국내 LCD 패널 산업이 사상 최고의 호황을 구가했던 지난해에는 이보다 훨씬 큰 수혜를 누렸을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 부품별 핵심 소재를 더욱 상세히 살펴보면 사태의 심각성은 더하다. 컬러필터 핵심 소재인 컬러레지스터는 LG화학과 제일모직이 자체 생산하고 있지만 그 원소재인 ‘피그먼트’와 ‘밀베이스’는 대부분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 국내 재료 업체인 네패스(대표 이병구)가 최근에서야 벨기에 ‘솔베이’와 공동으로 피그먼트와 밀베이스 생산 합작법인을 만들고 하반기 첫 양산을 목표로 하는 정도다. 원재료부터 컬러레지스터까지 내재화한 일본 JSR와 스미토모를 지금까지 당해낼 수 없었던 이유다. 특히 편광판 시장에서는 핵심 원부자재의 일본 종속도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현재 LG화학·제일모직이 전 세계 편광판 시장 1위인 일본 니토덴코와 견줄 만한 양산 능력을 확보했지만 전체 재료비의 70% 가까이를 차지하는 고부가가치 소재 TAC필름·PVA필름·보상필름 등은 전량 일본에 의존한다. TAC필름은 일본 후지필름의 아성이 워낙 독보적이고, PVA필름도 일본 구라레이·니혼고세이가 독점하고 있다. 셀 재료인 액정과 배향막, BLU용 고부가 필름인 이중휘도향상필름(DBEF)도 국산화율 ‘제로’인 핵심 소재들이다. 액정은 독일계 머크가 오랜 기간 시장을 독식해왔지만 일본 치소가 신규 진입하면서 그나마 경쟁 체제가 형성되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 전문업체인 동진쎄미켐(대표 이부섭)이 연내 양산을 목표로, 모니터용 액정부터 국산화를 시도하고 있다. 배향막 역시 일본의 JSR·닛산이 우리나라 안방을 여전히 차지하고 있다. 제일모직이 새롭게 개발에 나섰지만 원천기술이 부족한 탓에 어려움이 적지 않다. 배향막 원료 물질부터 특허를 피해가야 하는 난제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 3M이 독점하고 있는 DBEF는 BLU용 광학필름 가운데 가장 고부가 제품이다. 국내 전문업체인 웅진케미칼·신화인터텍이 3M의 특허를 비켜갈 수 있는 DBEF 대체용 필름을 개발 중이지만, 아직은 품질이 3M에 못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LCD 산업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부품소재의 취약성은 지난 10여년간 삼성전자·LG디스플레이 등 양대 LCD 패널 업체들이 ‘양산’ 경쟁에만 치중한 결과다. 우리는 ‘껍데기’만 국산화하면서 핵심 소재 기술 개발은 도외시한 것이다. 우리나라 LCD 산업이 피땀으로 벌어들인 외화로 일본 소재 업체들만 배를 불린다고 지적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삼성·LG 등 수요 대기업의 강력한 뒷받침과 신규 시장 진입을 위한 과감한 투자가 있다면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게 한결같은 지적이다. 수십년간 원천 소재 기술을 축적한 해외 기업을 단기간에 따라잡기 힘든 상황에서 일부 독점 품목의 구매처 다변화도 더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LCD 액정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인 이신두 서울대 교수는 “일본 기업도 핵심 원부자재나 재료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적어도 수십년간 노하우를 축적했다”면서 “특정 소자 산업뿐만 아니라 미래 타 산업군의 파급 효과까지 감안해 전략적인 국산화 추진 품목을 도출하고 범국가적인 힘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
■협력사와 대기업 구매담당자들의 제언 LCD 부품소재 산업의 경쟁력은 결국 삼성·LG 등 수요 기업의 강력한 의지와 국내 협력사의 체질 강화로써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직은 사는 쪽과 팔려는 쪽의 시각차가 큰 것이 사실이다. 협력사와 수요 대기업 구매 담당자들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접점’의 대안을 모색해본다. ◇협력사들, 삼성·LG가 진정한 실천을=핵심 소재 국산화에 뛰어든 국내 협력사는 여전히 삼성전자·LG디스플레이의 의지가 부족하다며 볼멘소리다. 대표적인 사례가 국산 제품을 해외 공급사의 납품가 인하 용도로만 취급한다는 점이다. 국산화에 성공한 제품이라도 초기에는 사주는 시늉 정도만 내는 것이다. 또 일단 국산화에 성공해 양산 납품하는 제품은 외산 제품에 비해 ‘30%’ 싸야 한다는 것은 업계의 오랜 불문율이다. 막대한 자금을 들여 제품을 개발한 협력사는 투자 회수는 고사하고, 제대로 팔아보지도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그러다보니 품질 향상에는 또다시 손 놓을 수밖에 없어 해외 업체에 뒤처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LCD 핵심 소재를 개발 중인 A사 관계자는 “우리나라 산업을 견인하고 있는 삼성·LG지만 부품·소재 국산화는 단순히 원가절감 차원에서만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차별화된 제품과 기술력으로 세계 시장을 선도할 수 있도록 진정한 파트너십이 절실하다”고 꼬집었다. ◇삼성·LG, 열악한 국내 후방 산업기반의 한계=삼성전자·LG디스플레이의 구매 담당자는 우리나라 부품·소재 산업의 허약한 체질 구조가 현실적인 어려움이라고 지적한다. 한 구매팀 관계자는 “한국에 선도적인 기술력과 자금력, 양산능력을 모두 갖춘 중소·중견 기업들이 얼마나 되겠느냐”면서 “오랜 역사와 규모를 갖고 중소기업이 성장해 온 일본·대만과 비교하면 턱없이 열악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품질은 차치하고라도 특정 소재 분야에 전문화된 국내 중소기업들을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내 부품·소재 업계의 배타적인 사업 관행도 문제로 꼽는다. 또 다른 구매팀 관계자는 “경쟁하지 않는 분야에서 서로 힘을 합치면 세계적인 수준의 제품이 나올 법한데, 국내 협력사들은 모든 것을 스스로 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적극적인 제휴 모델도 한 방법”이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LG 최고 경영자들의 의지가 결국 관건이라는 점은 시인한다. 구매팀 관계자는 “과거 3M이 독점하던 프리즘시트를 결국 국산화해낸 것도 우리의 힘이었다”면서 “솔직히 지금까지 우리는 얼마나 더 싸게 많이 만들어서 파는데 집중했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기초 소재 기술은 등한시했던 것이 사실이었다”고 고백했다.
■TAC필름을 통해 본 소재산업의 현주소 국내 LCD산업에서 모두가 꼽는 국산화 대상 최우선 순위 품목은 편광판용 핵심 소재인 ‘트리아세테이트셀룰로오스(TAC)필름’이다. 단일 시장 규모도 클 뿐더러 우리나라가 가장 취약한 품목이자 대일 수입 의존의 주범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기준 일본에서 들여온 TAC필름 수입액은 8억2433만달러로, 전체 대일 수입 품목을 통틀어 다섯 번째에 올랐다. 지난 2006년과 비교하면 무려 53%나 급증했다. 웃지 못할 대목은 TAC필름의 완성품인 편광판 수입액은 오히려 이보다 적은 6억1697만달러에 그쳤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TAC필름을 통해 우리나라 LCD 소재 산업의 현주소와 문제점, 경쟁력 확보 방안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전 세계 LCD TAC필름 시장은 일본 후지가 전체의 75%, 코니카가 25% 가까운 점유율을 차지하며 국내 LCD 산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이다. 모니터용 LCD 패널에 필수적인 ‘와이드뷰’ TAC필름은 후지가 100% 독점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편광판 전체 재료비의 절반 가까이를 TAC필름이 차지할 정도로 고부가 제품이다. 심지어 요즘 편광판 업계에서는 “LCD 패널 업체들의 가격 인하 압박과 후지의 시장 지배력에 끼여 완전히 샌드위치 신세”라는 말도 나온다. TAC필름 시장에서 후지의 막강한 지배력은 결국 과거 수십년간 카메라 필름에서 축적한 독보적인 기술력 때문이다. 태생이 예전 광학 카메라의 센서 필름이었고 이를 후지·코니카 등이 LCD 산업으로 확장해 성공시킨 대표작이다. 특히 기술적인 난제와 더불터 특허로도 알려지지 않은 오랜 ‘경험성’ 기술은 큰 장벽이다. 이에 따라 지난 수년간 효성·SK에너지 등이 국내 기업들이 TAC필름 양산 성공을 위해 안간힘이지만 아직은 시제품 수준이다. 독보적인 기술을 따라잡기에는 시간이 필요한데다 초기 양산 투자 부담도 적지 않다는 점은 현실적인 어려움이다. 실제 TAC필름 한 개 라인을 짓는 데만 최소 1000억원 단위의 설비 투자가 소요된다. 효성이 초기 투자로 1300억원을 TAC필름 사업에 투입하기로 한 것이 각별한 의미를 갖는 대목이다. SK에너지 관계자는 “기초 핵심소재 산업은 이제 기업 간 경쟁이 아니라 국가간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면서 “TAC필름은 정부 차원의 관심은 물론이고 산학연 모두가 힘을 집중해야 하는 대표적인 품목”이라고 말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TAC필름 국산화에 힘을 쏟는 동시에 TAC 대체 필름을 개발하는데도 관심을 기울이는 이원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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