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과 통신은 전통적인 내수 산업으로 꼽힌다. 서비스가 대한민국이라는 경계선을 넘지 못하고 이에 따르는 생산이나 고용도 대부분 국내로만 한정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방송통신의 강국’이라는 자부심을 갖는 사람이 많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방송통신 기술강국’이라는 표현이 더 옳은 것 같다. 기술력은 해외에서도 인정받지만 세계시장에서 큰 매출을 올리고 부가가치를 냈던 경험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가 진정한 방송통신서비스의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세계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내수라는 좁은 시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방송통신산업도 보다 적극적인 세계화 전략이 필요하다. ‘세계 초일류’가 된 반도체나 휴대폰·조선 등이 내수보다 해외에서 월등히 큰 성과를 낸 것처럼, 방송통신 융합산업도 이제는 세계시장을 타깃으로 미래 전략을 구체화해 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의 강력 드라이브=반가운 것은 최근 방송통신의 해외진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는 점이다. 이달 초 정부와 업계·유관기관이 모두 참여하는 ‘방송통신 해외진출지원협의회’를 구성해 첫 회의를 가졌다. 방송통신위원회를 중심으로 마련된 협의회에는 통신 분야에서 KT, SKT, KTF(서비스)와 삼성전자, LG전자(장비) 등과 방송분야에서 KBS, MBC, SBS, 그리고 디지털 미디어산업협회,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한국케이블 TV방송협회 등 유관 협회·기관이 대거 참석했다. 회의에서는 와이브로와 인터넷(IP)TV,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방송콘텐츠를 해외수출 4대 전략품목으로 선정하고, 수출 유망국가를 대상으로 관련 업체의 해외 마케팅 활동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내수 실적 확보해야=전문가들은 방송통신산업의 해외진출을 위해서는 국내에서의 실적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의 와이브로나 DMB, IPTV 등은 기술적으로는 큰 호평을 얻고 있지만 국내에서의 성적표는 아직까지 초라한 편이다. 와이브로는 겨우 몇 십만명의 가입자만을 확보했고 1600만대 이상 단말기가 팔려나갔다지만 DMB사업자들은 여전히 만성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최근 시작한 IPTV도 기대만큼의 초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상파 DMB특별위원회 관계자는 “우리의 DMB는 전 세계적으로도 큰 주목을 받고 있지만, 관련 사업자들의 경영성과가 좋지 않기 때문에 시장성을 고려해야 하는 해외 바이어들에게는 마이너스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며 “이는 IPTV나 와이브로 등에도 그대로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별 접근, 패키지형 접근도=방통위는 국내기업의 수요와 현지 관심도 등을 고려해 20여개의 해외진출 거점 국가를 선정, 역량을 집중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거점 국가로는 베트남, 브라질, 페루, 남아공, 터키 등 22개국이 선정됐다. 방통위는 우리의 융합상품 특성과 거점국가에 대한 시장 실태 등을 근거로 거점국가별 전략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조만간 새로운 버전을 공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과 맞물려 단일 제품이 아닌 전체 시스템과 기술의 패키지형 해외 진출 모델에 대한 요구도 나오고 있다. 기술력이나 기업 규모가 작은 방송장비나 소프트웨어(SW)업계는 방송통신 시스템의 해외 진출과 연계해 새로운 성장 기회를 모색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한범 방송기술산업협회 사무총장은 “첨단 서비스 기술과 장비, 유망 콘텐츠를 연계 지원하면서 서비스와 시스템, 장비와 솔루션까지 동시에 해외에 나가는 패키지형 모델로 성과를 극대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기술 선도·표준선점은 계속돼야=우리가 자랑하는 와이브로는 이미 12개국에 장비를 수출했고 30여개 국가에서 도입했거나 도입을 검토 중이다. 이런 선점효과가 계속되기 위해서는 기술우위 전략과 함께 국제 표준화 대응이 반드시 필요하다. 와이브로 기술이 4세대 이동통신표준으로 채택되도록 관련 대응에 업계와 관계기관이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DMB업계는 데이터통신 기능을 강화한 ‘DMB 2.0’ 버전을 연내 오픈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재보다 채널을 두 배로 늘리고 데이터 통신을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이처럼 해외시장에서 주목받고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술 우위’라는 무기가 있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IPTV 분야에서도 국내에서 검증된 기술과 서비스 모델을 바탕으로 페루 등 해외진출 유망국가에서 로드쇼, 정책포럼 등을 수시 개최해 나가기로 했다. ◇콘텐츠의 녹색 수출전략=‘한류’를 기반으로 하는 방송 콘텐츠의 세계화도 화두다. 방송 콘텐츠는 탄소배출이 없는 그린 성장산업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박준영 방송영상산업진흥원장은 “최근의 고선명(HD) 프로그램의 높은 제작비를 감안할 때 내수시장만을 보고 투자하기에는 부담이 크다”며 “4800만명이 아니라 전 세계 60억명을 목표로 ‘기획-제작-송출-재투자’의 선순환 고리를 만들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채널사용사업자(PP)나 독립제작사들에 해외 진출은 성장이 아닌 생존 차원의 문제가 되고 있다. IPTV 등 뉴미디어에 맞는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를 만들고 이를 전 세계로 유통하는 전문 채널을 가동해 콘텐츠의 수출 산업화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제공동제작이나 프로그램의 포맷 수출 등 문화적 장벽을 넘기 위한 다양한 접근법도 적극적으로 시도돼야 할 것이다. 중국·일본 등으로 한정된 수출지역의 다변화도 주요 과제로 꼽히고 있다.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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