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가 새로 산 넷북을 들고 커피숍을 갔다. 이 커피숍에서는 무선인터넷이 무료다!! 약간의 인증절차만 거치면 스타트∼ 커피 마시면서 인터넷도 하고… 정말 최고의 휴식공간 아닌가∼ (2009년 1월, 한 네티즌의 블로그에서)
커피숍이 바뀌고 있다. 커피숍에서 노트북PC를 켜놓고 시간을 보내는 고객층이 크게 늘어남에 따라 몇 년 뒤면 커피를 마시는 휴식공간이란 개념자체의 수정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커피 매장들이 경쟁적으로 공짜로 무선인터넷을 제공하면서 노트북PC를 들고 커피숍을 찾는 고객층의 연령대가 다양해지고 있다. 그동안 PC방이 담당해온 동네 인터넷센터의 역할 중 상당 부분이 커피숍으로 넘어가는 추세다. 앞으로 5∼6년 뒤에도 커피전문점들은 여전히 커피만 팔고 있을까. 지난 주말 저녁, 서울 목동의 한 커피전문점. 주변을 둘러보니 고객이 점유한 테이블 13개 좌석 중에서 노트북PC가 올려진 테이블이 무려 5개나 된다. 기자를 제외해도 이 커피숍 고객 3분의 1은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라 무선 인터넷에 접속하기 위해서 한 잔에 3000∼5000원의 커피값을 기꺼이 지급했다. 노트북PC와 대화하는 나홀로 커피족의 비중은 평일날도 시간대에 따라 40%를 쉽게 돌파한다. 단골 커피숍의 풍경이 지난 몇 달 새 어딘지 많이 달라진 것이다. 노트북PC를 들고 커피숍을 찾아오는 고객층의 연령대도 다양화되는 추세다. 과거 나홀로 커피족이란 커피 한 잔 시켜놓고 몇시간씩 버티며 문서작업을 하는 회사원, 또는 리포트를 준비하는 대학생을 지칭했다. 지금은 노트북으로 온라인게임과 채팅, 기타 웹 접속을 즐기는 다양한 연령대의 두터운 고객층으로 바뀌고 있다. 저쪽 테이블에 앉은 주부 세 명은 아이에게 노트북PC를 던져주고 자기들끼리 편안하게 수다를 떤다. 커플끼리 커피숍에 들어와 함께 인터넷 서핑을 즐기는 사례도 늘고 있다. 얼마 전에는 한 쌍의 남녀가 테이블에 마주 앉아서 대화를 하는 게 아니라 각자 노트북PC를 켜놓고 채팅을 하는 희한한 광경도 실제로 목격했다. 미국 드라마(미드) ‘프리즌 브레이크’를 내려받아 보면서 영어공부를 하는 친구도 있다. 잘 차려입은 30대 초반의 여성이 들어오더니 테이블 위에 앙증맞은 넷북을 펼치고는 곧장 채팅 삼매경에 빠져든다. 점점 많은 사람이 차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기보다는 안락한 네트워크 접속공간을 위해서 커피숍을 찾는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져왔을까. 커피숍의 네트워크 접속환경과 접속도구가 바뀐 때문이다. 스타벅스는 2008년 12월 중순부터 전국 30개 도시의 260여 매장에서 무선인터넷을 공짜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스타벅스는 고객 누구나 간단한 신원확인만 거치면 KT의 무선인터넷 네스팟 서비스를 무료로 쓰게 만들었다. 전 세계 별다방(스타벅스) 체인 중에서 무선인터넷을 완전 무료화한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그 파장은 놀라웠다. 무선 인터넷을 유료에서 공짜로 전환한 지 한 달 만에 스타벅스 매장의 인터넷 접속자 수는 24배나 폭증했다. 사무실이 밀집한 지역의 스타벅스 매장들은 노트북PC를 들고 출근하는 고객도 눈에 띄게 늘었다. 이런 추세는 할리스커피처럼 이미 공짜 인터넷을 제공하는 여타 커피전문점에서도 점점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일부 매장은 커피 한 잔 시켜놓고 하루종일 무선접속을 하는 고객 증가에 곱지 않은 시선도 보내지만 시대조류여서 눈감아주는 분위기다. 정보통신기기의 소형, 경량화 추세도 커피숍의 풍경을 바꾸는데 한몫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노트북PC보다 훨씬 가볍고 배터리 수명이 긴 넷북이 시중에 유통되기 시작했다. 무게 1㎏ 안팎의 넷북은 휴대가 간편해 여성이 커피숍에 들고 와서 시간을 떼우는 데 더 없이 좋은 소품역할을 한다. ‘된장녀’ 논란도 있지만 커피숍에서 넷북을 켜놓고 커피잔을 기울이는 여성고객의 이미지는 확실히 세련돼 보이고 전염성이 강하다. 커피숍의 약간 시끄럽고 산만한 분위기는 작업능률을 올리고 창의적 아이디어를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 또 오래 앉아 있어도 눈치를 주지 않는 편안한 환경은 일부 직장인까지 상사 눈치를 피해 커피숍에서 일을 하게 만든다. 요즘 언론에서는 커피전문점과 오피스를 결합해 ‘코피스(Coffee+Office)족’이란 신조어까지 쓰고 있다. 코피스족은 직장인이 사무실의 연장선에서 커피숍을 이용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다양한 고객층이 네트워크 접속 자체를 즐기는 국내 커피전문점 시장의 커다란 변화를 나타내기에 코피스족이란 용어는 그리 적합치 않다. 커피숍에서 웹접속을 이용하는 고객들의 비중은 매장 위치는 물론이고 매장 내 좌석 위치에 따라서 편차가 매우 심하다. 요즘에는 커피숍에서 잠시 자리를 비웠더니 소중한 노트북PC를 훔쳐가는 절도사건도 생겨나고 있다. 요컨대 공짜로 무선인터넷이 가능해도 편안하게 네트워크에 접속할 분위기가 아니면 고객들은 노트북PC를 들고 오지 않는다. 확실한 트렌드는 커피숍에서 인터넷 접속을 즐기는 문화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달 삼성경제연구소(SERI)의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5971명 중에서 25.3%가 코피스족 성향이 있다고 답변했다. 대부분 SERI 회원들이 합리적인 회사형 인간이란 점을 간주할 때 꽤 높은 비율이다. 온라인 통계에 거의 잡히지 않는 20대 대학생, 프리랜서, 가정주부까지 다양한 고객군을 고려하면 향후 커피숍은 네트워크 접속공간의 성격이 더욱 확고해질 전망이다. 커피전문점 업계는 점차 가속화되는 매장 내 인터넷 활용에 대해서 아직까지 고객을 유인하는 부가 서비스, 일시적 유행이라고 간주하고 있다. 향후 커피전문점의 사업모델에 영향을 미칠 주요 변수라고 보지 않는 것이다. 스타벅스코리아의 한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무선인터넷 무료화가 고객 만족도를 높였다는 사실에 크게 만족합니다. 스타벅스 매장은 단순히 커피를 파는 곳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가장 편안한 공간이 되기 원합니다.” 커피숍은 공간을 빌려줄 뿐 어떻게 사용할지는 고객의 몫이란 시각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커피를 파는 회사지만 자기네 매장에서 고객들이 커피를 마시는 이유가 바뀌는 추세에는 별 관심이 없다. 사실 커피전문점 쪽에서는 하루 커피 몇 잔을 팔아서 매상을 올렸는지가 제일 중요한 이슈일 것이다. 또 다른 커피전문점인 할리스커피는 무선 노트북PC족의 창궐을 일시적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몇 년 뒤 와이브로와 같은 광대역 무선통신망이 전국을 커버하면 굳이 커피숍에서 인터넷을 하는 고객들은 줄지 않을까요.” 그 나름대로 합리적 추론이다. 그러나 과거 싸구려 자판기 커피가 널리 보급되면 앞으로 비싼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과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커피 자판기의 과포화에도 불구하고 커피전문점 시장은 지난 5년간 평균 25%씩 급성장했다. 시장규모도 지난해 3900억원에서 올해는 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커피전문점이 자판기를 누르고 급속하게 성장한 배경은 사람과 사람을 격식 있게 연결해주는 문화공간이기 때문이다. 프리미엄 커피숍은 양질의 커피를 즐긴다는 차원을 넘어 스스로 서구의 세련된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한다는 함축적 표현이기도 하다. 고급 커피숍은 태생적으로 진한 커피향과 재즈 선율, 외국 잡지가 잘 어울리는 공간이다. 대중들은 커피숍의 문화와 고급스러운 이미지, 집과 사무실이 아닌 제3의 공간에서 휴식을 즐기기 위해 기꺼이 돈을 지급한다.
◆앞으로 커피숍은‥ 자판기 커피의 범람에도 프리미엄 커피숍이 성장했듯이 무선인터넷이 공기처럼 흔해져도 많은 사람들은 굳이 비싼 커피숍을 찾아가 네트워크에 접속할 것이다. 집에서 속옷바람으로 웹서핑하는 것보다 커피숍에서 커피잔을 들고 모니터를 쳐다보는 모습이 훨씬 더 멋지기 때문이다. 점점 많은 사람이 커피는 물론이고 네트워크 접속에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선호하는 이유를 커피전문점 관계자들이 아직 모르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편한 소파에서 함께 차를 마시면서 장시간 나누는 대화는 그 정보량과 깊이에서 짧은 전화통화나 e메일보다 압도적으로 우월하다. 누군가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때도 커피숍은 가정집이나 사무실보다 훨씬 안정적인 대화환경을 제공한다. 세월이 흘러도 커피숍은 음료를 마시면서 사람을 만나는 공간이다. 다만 사람과 만나는 방법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 전국 어디서나 찾아갈 수 있는 접근성, 일정한 교양 수준을 갖춘 고객층, 딱딱하지 않은 실내 분위기 등은 향후 영상통신서비스와 연계한 커피숍 체인점의 등장 가능성에 무게를 더한다. 사업상 만날 사람과 시간 약속만 하고 가까운 커피숍에 들러서 서로 얼굴을 보면서 영상대화를 하면 된다. 서울과 미국의 커피숍에 앉은 두 친구가 함께 얼굴을 보면서 커피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우아하게 커피잔을 홀짝거리면서 앞자리에 앉은 사람이 아니라 다른 세계의 누군가와 만나는 낯선 몸짓이 점차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바뀌게 된다. 미래의 커피숍은 단순히 차 마시는 장소나 편안한 사무실을 넘어서 다른 세상을 만나는 제3의 공간으로 변모할 것이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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