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평전 A+ 감상문
. 《전태일 평전》을 들어가며
전태일은 1970년 11월 13일 열악한 노동조건에 항거, 분신자살한 평화시장 재단사 출신의 노동자이다. 전태일은 1964년 17세의 나이로 평화시장 피복공장 미싱사보조로 취직했다. 1969년 재단사들의 친목모임인 `바보회`를 조직하는 한편, 근로기준법을 탐독하면서 평화시장의 노동실태를 철저히 조사, 그 개선방안을 노동청(지금의 노동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행동으로 해고를 당했지만 1970년 9월 다시 재단사로 취직해 `삼동친목회`를 결성했다. 이들은 곧바로 설문지를 돌렸으며, 그 결과를 분석해 노동청에 `평화시장 피복제품상 종업원 근로개선 진정서`를 제출, 선처를 약속받았다. 그러나 시정을 약속한 기한인 11월 7일에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그는 동료들에게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근로기준법 책을 화형하자`고 제의하여 13일을 시위날짜로 잡았다. 이에 따라 전태일과 삼동회 회원들은 사건 당일인 11월 13일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하기로 결의하고 플래카드를 준비해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당시 평화시장 주변에는 시위 소식을 들은 많은 노동자들이 모여들었고, 경찰들은 평화시장을 에워싸고 있었으며, 사업주들은 노동자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삼동회 회원들은 주위를 향해 소리 높여 그들의 요구를 외쳤으나 플래카드는 경찰에게 빼앗기고, 시위 역시 경찰의 방해로 인해 결국 무위로 끝나갈 즈음 온 몸에 휘발유를 붓고 분신자살하였다. 전태일 분신자살사건은 한국 노동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이후 한국의 노동운동은 이 사건을 계기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1970년의 청계피복노동조합을 시작으로 1970년대에만 2,500여 개에 달하는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는데, 이 모두가 전태일 분신자살사건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한국 노동운동의 진정한 출발점으로 인식되고 있을 정도로 한국의 노동운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렇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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