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의 정치와 사회, 외교 및 경제 분석
. 당대의 시대적 배경 분석
송을 건국한 이는 사후에 송 태조(960-976)로 불려진 조광윤이었다. 그는 후주의 유능한 젊은 무장이었는데 959년 후주 군사력의 핵심적인 인물로서 근위군 대장에 임명됨으로서 우세한 위치를 확보하였다. 소년 황제가 갑작스럽게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960년 초에 군대는 조광윤을 황제로 추대하였으니, 이때 그의 나이는 32세였다. 오대라는 시기에 군대가 그러한 반란의 덕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아마 반란을 선동하였을 것이다. 사실 그 시대는 강력한 지도력을 요청했던 시기였다. 송왕조는 전 왕조들로부터 당대로의 복구라는 꿈을 물려받았지만 심각한 국내외적인 문제들에 직면하고 있었다. 점점 더 강력해지는 거란족의 요가 북부와 북동부 쪽에서 위협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거란은 당이 멸망한 이래 끊임없이 북중국을 침략하였으며, 만리장성 이남의 전통적인 중국 영토 안에서 16주의 지배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951년에는 산서지방에서 북한이라는 중국인의 괴뢰정권을 세우는 데에도 협력하였다. 북서지방에는 탕구트라는 티베트 부족들의 연맹이 있었는데, 이들은 9세기말 당왕조가 황소의 난을 진압할 때 협력을 함으로써 얼마간의 특권을 얻었었다. 10세기에 그들은 점차 영토를 확장시키다가 마침내 서하라는 독립국가를 세움으로써 적대적인 관계를 공식화하였다. 한편 남중국은 여러 지역으로 독립된 왕국들로 분열된 상태였다. 이들은 비록 북부를 위협하지는 않았지만 북방과 북서방의 유목민을 제압하기 위하여 인력과 기타자원들을 전국적으로 결합시키기를 원하는 북중국의 지배자에게는 하나의 장애물이었다. 더구나 북중국의 어떤 왕조도 지방분권적인 군벌들을 제거할 수 있는 충분하고도 강력한 자체의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하였다. 이와 같은 북중국의 계속된 불안정을 잘 나타내는 사건이 바로 951년 북한이 수립된 것과 960년 송 태조를 제위로 이끈 군대의 반란이다. 송 태조는 신중하고도 영리한 군주였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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