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민특위와 친일파청산 및 친일청산
. 친일청산의 민족적 당위성
“나와 개인적 친분이 있었던 김활란, 모윤숙, 송금선, 황신덕, 심형구는 물론 김성수, 방응모를 존경한다. 그들은 민족을 반역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 겨레를 살리기 위해 일제하에 엄청난 고난을 감수하였다. (중략) 망명하여 중국 땅에서 혹은 미국 땅에서 일제하 36년을 참고 견디어야 했던 애국지사들에게는 이런 문제가 전혀 없었다`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월간조선 4월호)
`친일파로 낙인찍히면 해당자 본인뿐 아니라 그 가문에도 치욕을 준다. 어떤 이념 차나 경쟁심리 따위의 이해관계가 이 문제를 다루는 데 작용하는 것을 엄히 경계해야 한다.`(남시욱 성균관대 겸임교수, 조선일보 3월6일 시론)
`오늘날 누구누구를 친일파로 가려내 기소하고 처벌할 법적 도덕적 근거가 없으며 이는 역사 발전에도 도움이 안 된다`(소설가 복거일, 계간 철학과 현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57년이 지났지만, 뒤늦게 시작된 `친일파 청산` 작업은 `친일`이라는 말만 들어도 알레르기를 느끼는 일부 수구 논객들의 반론들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지난 국회에서 여야를 망라한 소장파 국회의원들의 친일파 명단 발표에 전 언론사주들이 포함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이들의 주장에 적잖은 지면을 할애해 반론 확산에 주력했다. 해방 후‘친일파 청산’은 통일민족국가 수립과 함께 민족적 과업이자 역사적 당위였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해 이 문제는 오늘날까지 유제로 남아있는 실정이다. 해방직후 친일파 척결이 실패한 원인으로는‘미군정 3년’이 큰 요인중의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정부수립 후 반민특위에서는 민족정기 회복을 기치로 내걸고 친일파 단죄에 나섰으나 이 역시 이승만 정권과 친일파들의 방해책동으로 좌절되고 말았다. 이후로 이 문제는 역대 친일정권 하에서 우리사회의 주요 이슈로 취급되지 부각되지 못하고 결국 역사연구의 한 영역으로 남고 말았다. 그러나 친일파 연구는 한동안 학계에서 방치돼 왔다. 오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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