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리에르의 타르튀프
. 저자 몰리에르
파리 출생으로 본명은 장 밥티스트 포클랭이다. 예수회의 클레르몽학원에서 배우고 오를레앙대학에서 법학사의 학위를 받았으나, 이 무렵부터 연극에 열중하여 마드렌 베자르 집안의 형제 자매들과 ‘성명극단’을 결성하였다. 1644년 1월에 처녀공연을 하였으나 관객유치에 실패, 빚이 늘어나 채권자의 고소로 투옥될 처지에까지 몰려, 파리를 떠난 후 1613년 동안 남프랑스의 여러 곳을 순회하였다. 1653년 무렵부터 본거지를 리옹에 두고 극작에도 손을 대기 시작하였다. 처음에 쓴 것은 줄거리만 있고 대본 없는 희극이라고 여겨진다. 이어 이탈리아 번안 희극 두 작품을 만들어 남프랑스 지방에서 명성을 얻어 왕제(王弟)가 비호하는 극단의 타이틀을 얻고, 1658년 파리로 돌아와 루이 14세 앞에서 공연하자 그의 마음에 들어 왕실 소유의 프티 부르봉 극장의 사용을 허락받았다.𠉋년 희극 웃음거리 재녀들 로 성공하여 파리에서 발판을 굳혔다. 이어 스가나레르 (1660) 남편학교 (1661) 여인학교 (1662) 등으로 더욱 명성을 떨쳤으나, 경쟁 상대인 부르고뉴 극장의 질투와 그가 비웃은 귀족사교계의 반감을 사서 프티 부르봉 극장을 쫓겨난 일이 있었다. 그러나 루이 14세의 후원으로 역시 왕실소유인 팔레 루아얄 극장의 사용을 허락받고 자주 궁정에도 초청되어 연극을 하였다. 1664년 베르사유궁에서 향연이 있었을 때 위선자를 풍자한 타르튀프 를 상연하여 교회 신자들의 노여움을 사서 시중에서의 공연은 중지당하였다. 그래서 급히 돈 후안 (1665)을 써서 공연하였으나 이것도 대담한 희극이었기 때문에 루이 14세의 뜻에 따라 15회 공연 후에 자발적으로 철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루이 14세는 그 보상으로 그를 ‘국왕 전속극단’으로 하여 1만 5,000리브르의 연금을 주었다. 1666년 그의 최고 걸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인간 혐오자 를 발표하였으나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하였다. 그 후 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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