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의 과거제도와 관학
㔕년 수 왕실이 중국을 통일하고 곧 이어 당조(618-907)가 그 뒤를 이은 다음부터는 관리 등용에 있어서 객관적인 기준을 세울 필요가 생겼다. 과거제가 성립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물론 수·당의 과거제도가 성립되기 전에도 이러한 시험제도는 있었다. 한대에 어떤 범주의 천거된 인물에게는 때때로 필기나 구두 시험이 부과되기도 하였고, 정치적 분열시기 후반에는 천거된 인물 중 한정된 일부에게 시험이 부과된 것이 그 예이다. 수·당의 과거제도는 앞시기의 이같은 예가 확충되고 합리화 된 것이었다. 당대에는 재능을 가진 사람을 관리로 선발하는 과거시험은 영구적으로 제도화함에 따라 유교적 사회이념의 실현에 있어서 한층 더 폭넓은 진보를 보였다.
당대의 관리 채용 방법은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예부에서 주최하여 각 지방의 사인들을 시험보는 ‘향공’, 둘째는 중앙관학을 졸업하는 졸업생의 시험으로 ‘생도(生徒)’, 세째는 황제가 하소하여 인재를 구하는 ‘제거(制擧)’이었다. 앞의 두 가지 시험은 항상 거행되는 것이고 ‘제거’는 그때 그때 필요에 따라 거행되고 기일이 정하여진 것이 아니었다. 소위 ‘과거’라고 하는 것은 주로 향공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당대의 향공은 학관 출신이 사인만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어서 모든 응시자는 자기가 소재하고 있는 주현(州縣)에 가서 등록하고 주현에서 시험을 본 다음 주현은 해마다 중동(仲冬)에서 예부로 보내어 학관 생도들과 함께 시험을 보았다. 이 향공의 시험은 처음 이부가 주최하다가 현종 개원 24년에 예부로 이송하여 그 후 고정되게 되었다. 향공에 참가하는 사인들은 자격의 구애가 없었으므로 평민도 관리가 될 수 있는 길이 있었다.
향공의 과목은 상당히 많아서 수재( 비범한 재능과 능력이 있는 자), 명경(경전지식이 풍부한자),명법(법률 문제에 밝은 자), 명자(서도에 조예가 깊은 자), 명산(산출에 능한 자), 진사(어의는 상급 사인인데 서양 학자들은 보통‘문학박사’로 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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