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시장조사 업체 IDC는 새해 IT시장과 관련해 다소 우울한 전망을 내놨다. 미국발 금융 위기가 실물 경제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IT시장 성장률이 1.9%에 머문다는 게 골자였다. 특히 PC·프린터·서버·네트워크 장비 등 하드웨어 부문은 1998년 이래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한다고 진단했다. 기축년 희망찬 새해가 밝았지만 시장은 여전히 한겨울이다. 실물 경제가 외환 위기에 버금간다는 전망이 산업계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경제가 힘들면 가장 두드러진 현상이 ‘양극화’다. 기업과 제품 모두를 포함한 전체 시장이 두 갈래로 나뉜다. VIP 계층을 겨냥한 프리미엄 제품이거나 아예 가격이 싼 초저가 제품으로 수요가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다. 수요층이 나뉘면서 산업계도 재편 과정을 거치고 시장 수위 업체의 과점 현상이 뚜렷해진다. 결국 ‘춘추전국 시대’에서 ‘승자 독식 시대’로 시장 패러다임이 바뀐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업체가 시장에서 뒤처지면서 소수 상위 업체 주도로 점유율이 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양극화 전조는 ‘가격파괴’에서 출발한다. 이미 하드웨어 시장에 가격 경쟁이 불붙은 지 오래다. 기술 장벽이 무너지면서 가격과 브랜드 외에는 차별 요소가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PC·MP3플레이어·내비게이션 등 주요 IT 제품은 ‘최저 가격’이 사실상 무의미해졌다.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가격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PC 부문 최고 히트 상품은 미니 노트북으로 불리는 ‘넷북’이었다. 넷북은 휴대성에서도 좋은 점수를 얻었지만 낮은 가격이 매력이었다. 기존 노트북PC의 3분의 1 가격에 불과한 40만∼60만원이라는 점 때문에 불황기와 맞물려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넷북으로 노트북PC 가격파괴가 극심해지면서 나타난 현상이 시장 양극화다. IDC가 집계한 시장조사 자료에 따르면 삼성·LG·삼보 3개 업체 데스크톱 PC시장 점유율은 2007년 3분기 58.5%에서 지난해 3분기 61.2%까지 올라갔다. 노트북PC도 사실상 승자 과점 체제로 돌입했다. 지난 3분기 기준으로 노트북PC는 삼성·LG·HP·삼보 ‘빅4’ 판매량이 전체 점유율의 74%에 육박했다. 특히 삼성은 데스크톱PC·노트북PC를 합친 전체 PC 시장에서 40%를 넘어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가고 있다. 새해 PC시장은 극심한 가격 경쟁으로 양극화가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TV 시장도 마찬가지다. TV는 다른 하드웨어 제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대가 다양하지만 상위 업체로 점유율이 집중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2006년 1분기 세계 TV 시장에서 2위를 달리던 삼성전자는 당시 점유율이 12.5%에 불과했다. 그러나 불과 2년 만인 2008년 3분기 20.2%까지 올라섰다. 당시 6.9%로 5위를 달리던 LG전자도 2008년 3분기 10%에 육박하는 점유율을 기록했다. 2008년 기준으로 상위 4개 업체가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한 셈이다. 상위 5개 업체로 확대하면 점유율은 2006년 54.2%에서 지난해 67.5%까지 늘어난다. 휴대폰 시장도 예외일 수 없다. 국내 휴대폰 시장은 그야말로 ‘드라마틱’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사상 최대의 호황과 함께 최악의 침체기를 겪었다. 2008년 휴대폰 시장은 12월 132만대를 끝으로 2320만여대를 기록했다. 상반기 3G 가입자 유치전이 이어지면서 기대 이상의 호황을 누렸지만 하반기는 극심한 경기침체로 전통적인 최대 성수기인 12월조차 예년 비수기 수준인 132만대에 머물렀다. 산업계에서는 지난해 12월 판매 기조가 이어지면서 올해 휴대폰 시장이 양극화로 치달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주머니가 가벼워진 소비자를 겨냥한 저가폰 그리고 스마트폰·풀 터치폰을 앞세운 프리미엄 제품이 동시에 판매 상승곡선을 그린다는 분석이다. 세계 시장에서 북미·유럽과 신흥 시장 성장률이 양극화하는 현상이 국내에서도 재연된다는 관측이다. 올해 북미와 유럽 등 선진시장의 출하량은 10% 안팎 감소가 예상되지만 신흥 시장은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갈 전망이다. 양극화는 기축년 새해, 하드웨어 시장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자리 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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