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 파랑
어렸을 때 아버지 직장을 따라 강릉에서 산 적이 있었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줄곧 도시 생활을 했던 터라 나에게는 강릉에서의 생활이 낯설고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지금은 강릉이 그래도 많이 커졌지만,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어촌마을에 가까웠다. 집집마다 부업으로 낚시 바늘을 손질하던 모습이 눈에 생생하다. 학교에서도 친구들 부모님의 직업이 농부, 어부가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어린 나이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날씨에 다들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대체로 강릉의 날씨는 좋았지만, 겨울에는 무릎까지 올 정도의 눈이 쌓이는 적도 있었고, 바닷가와 가까워 여름에는 태풍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겨울 날씨는 아무래도 상관없었지만, 여름 날씨는 그 곳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농사짓는 집에서는 여름철 홍수로 피해를 입어 집과 논이 잠겨 학교에 못 나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우리는 뉴스의 기상예보에서 “파도의 높이는 동해 4~5m, 서해 2~3m로 다소 높게 일겠습니다.”하는 말을 그냥 지나치지만, 그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정보였다. ‘파랑주의보’라고 발효되는 날이면 거의 비상사태였다. 아저씨들은 서둘러 배를 단단히 묶어놓고, 그물과 낚시 바늘도 모두 거둬들였다. 피해라도 발생하는 날이면 학교에서는 어김없이 몇몇 친구들을 볼 수 없었다.
인간은 수세기에 걸쳐 많은 발전을 이룩해 냈지만, 자연을 거스를 수는 없는 것 같다. 자연을 거스르려고 하면 예외 없이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들어서고, 로봇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세상이 온다지만, 저 건너편에서는 기상 예보 하나에 울고 웃는 사람들이 산다.
얼마 전 강릉으로 기차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맥도널드가 들어서고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었지만, 아직도 바다 먼 곳에는 오징어 배 불빛이 반짝이고 백사장에는 생선 넣는 궤짝이 가지런히 정돈돼 있었다. 적어도 그 곳에서는, 작은 물결과 큰 물결을 뜻하는 ‘파랑’이 그들의 삶을 움직이고 있었다. 테크놀로지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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