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업계에 ‘60년 주기설’이 있다. 60년마다 혁신적인 광원이 등장해 시장을 개척해왔다는 통설이다. 에디슨의 백열등 발명부터 시작했다. 에디슨이 미국에서 백열등을 개발한 것은 1879년. 그로부터 59년 후인 1938년 형광등이 세상에 태어났다. 형광등과 백열등은 오늘날까지 매년 1000억달러가 넘는 조명시장을 양분했다. 형광등이 발명되고 58년 후인 1996년에 과학자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백색 발광다이오드(LED)가 화려하게 등장했다. 사람들은 백열등 발명 120여년 만에 등장한 백색 LED의 출현을 다시 한 번 조명 시장을 평정할 ‘왕의 귀환’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정부는 연이어 ‘저탄소 녹색성장’을 강조했고, 그때마다 LED가 전면에 등장했다. 때마침 고유가 바람이 몰아치면서 정부 주장에 설득력을 실었다. 2015년까지 전체 조명의 30%를 LED로 바꾼다는 일명 ‘1530프로젝트’는 LED 보급 정책의 상징이 됐다. 이를 통해 매년 약 160억킬로와트(㎾)의 전력과 680만톤의 이산화탄소 저감 효과를 기대했다. LED 가격이 다소 비싸다고 해도 4∼5년간의 전기요금 절감분을 감안하면 이미 백열등보다 저렴하다. LED 광효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가격은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2015년께 전 세계적으로 460억달러 이상의 LED조명 시장이 형성되리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문제는 국내 LED 산업계가 과거 반도체·LCD 육성기에 저지른 시행착오를 되풀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품·소재 취약 고질병=원천기술의 부족과 취약한 부품·소재 경쟁력은 LED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LED 조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LED 생산량에서 우리나라의 2006년 점유율은 9%대로 일본·대만·미국·유럽에 이어 세계 5위권이다. 6위 중국(4%)에 겨우 5%포인트 차이로 앞선다. 지난 2007년 서울반도체·삼성전기·LG이노텍의 LED 3사 매출액 합(고휘도 LED 패키징 기준)은 4억2000만달러다. 1위 일본 니치아(9억6500만달러)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비록 LED를 응용한 조명 기술에 우리나라가 다소 앞선다고 해도 칩 및 패키징 기술에 비하면 진입 장벽이 턱없이 낮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현재 국내에서 만든 LED 조명의 대부분은 일본·미국 등으로부터 수입한 LED를 장착했다. LED가 LED조명 원가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상당한 부가가치가 해외로 유출되는 셈이다. LED 포털사이트를 운영하는 유정희 코레즈 사장은 “장기적으로 LED 원천 기술에 대한 투자와 연구개발이 선행돼야 한다”며 “현 상태로라면 우리 LED산업은 일본의 속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소재 분야는 더 취약하다. 백색 LED 핵심인 황색 형광체는 국내 생산량이 거의 없다. 한국화학연구원 등이 자체 개발한 형광체가 있지만 특허 문제로 마음놓고 사용하기 어렵다. 양산용으로 쓸 수 있는 LED 형광체는 일본 니치아의 ‘YAG’, 독일 오스람의 ‘TAG’, 일본 도요타고세이 외 소수 업체가 공동 소유한 ‘실리케이트’가 전부다. 이들과 특허 사용계약을 하면 로열티를 지급하고 형광체를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원가 경쟁력에서 한 수 접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 실리콘 마감소재인 ‘인캠슐런트’와 가장 기초 소재인 사파이어 웨이퍼도 외산 제품들이 주류를 이룬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반도체·LCD 강국이라지만 핵심 부품·소재 및 장비는 대부분 외산”이라며 “LED라고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꼬집었다. 조명기술도 중요하지만 우선 LED를 포함한 부품·소재 기술력부터 제고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만을 배우자=오늘날 LED 시장 점유율 2위인 대만도 백색 LED 패키지를 생산한 지 불과 6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웨이퍼부터 칩·패키징까지 이어지는 탄탄한 공급사슬과 든든한 전방산업의 지원 덕에 단숨에 세계적 지위에 올라섰다. 우리나라에 삼성전기·LG이노텍·에피밸리 정도인 LED 에피·칩 업체가 대만에는 즐비하다. 에버라이트·킹브라이트·라이트온 등 패키징 업체들도 그 뒤를 받쳤다. 한국이 LED 조명개발에 몰두하는 사이 대만은 핵심 부품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이로써 장차 애플리케이션 영역에서도 강자로 등장할 전망이다. 최근에는 일본·미국 등 선진 LED 업체와의 특허 사용계약으로 로열티를 치르는 대신, 유기금속화학기상증착기(MOCVD)에 과감히 투자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이룩했다. 에버라이트·라이트온·AOT가 도요타고세이·오스람·크리 등과 라이선스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에피스타는 과거 붉은 LED칩 분야에서 규모의 경제를 달성, 시장의 60% 이상을 독식했다. 최근 MOCVD를 대량 도입, 2009년부터는 노트북PC BLU용 LED 칩 생산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BLU·자동차에 눈을 돌려라=국내에 LED조명 붐이 일긴 했지만 사실 LED를 이용한 애플리케이션 중 가장 성장률이 큰 시장은 LCD용 백라이트유닛(BLU)이다. 이미 중소형 BLU 대부분이 LED를 주요 광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점차 대면적 BLU도 LED를 차세대 광원으로 탑재할 것으로 기대된다. 시장조사기관 자료에 따르면 2011년 전체 LED 생산량의 35% 정도가 BLU에 소모된다. 자동차 전장부품에 들어가는 LED가 14%로 그 뒤를 이었다. 반면에 조명용 LED는 전체의 12% 남짓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LED 산업이 조명에서 눈을 돌려 여타 애플리케이션에 관심을 쏟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안석현기자 ahngija@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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