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국민론 ─ 근대 일본의 정체성
Ⅰ. ナショナル·アイデンティティ
一. 吉田松陰を取りあげる意味
근대일본의 국민형성에 대해 생각해볼 때, 幕末·明治維新期에 있어서 ナショナル·アイデンティティ의 탐구가 특별하게 중요한 의미를 갖고있는 것은 누구라도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여기에서 ナショナル·アイデンティティ라는 것은, 일본어로 바꿀 경우 家· 民·民族을 포괄하는 의미와 내용의 말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明治維新의 의의는 근대적인 民 家의 창출에 있다고 한, 竹越三 는 그의 명저『新日本史』(1891·92년)에서,「日本 家の現 」라고 제목을 붙이고,「 日本 家 라는 이상」이, 「수백년간 영웅할거, 2백년간 봉건제도」를 거쳐서, 「 震驚, 人心擾 の中より、先づ霞の如く、雲の如く、幻然として現出せるもの」라고 논하고 있다. 즉、明治維新까지는 「일본인민의 모리속에, 藩의 사상은 石과 같이 굳어있지만, 일본국민이라는 사상은 작은먼지만큼도 존재하지않는다」라는 상태였다. 그 전환의 시기는, 1853년 (嘉永6) 6월, 페리제독이 이끄는 「米艦一朝浦賀に入るや、驚嘆恐懼の余り、… 三百の列蕃は兄弟たり、幾百千万の人民は一 民たるを 見し、日本 家なる思想此に油然として湧き出でった」시기였다. 이것이 일본근대국가와 국민이 일본열도에 있어서 역사적실재로 변해가는 단서가 되었다. 竹越의 묘사를 인용한다면, 소위「외압」을 직접적계기로, 인민의 머리속에 국가라는 사상이 생기고, 이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열사가 배출되고, 국가와 천황이 비로소 연결지어지는 가운데「존왕」,「양이」라는 두 말이 질풍처럼 일본열도를 휩쓸고 다녔다. 이른바「존왕양이」라는 새로운 말은, ナショナル·アイデンティティ형성의 심볼이라할 수 있는 의미를 갖고있었고 그 말의 탄생과 함께 근대일본국가와 국민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청일전쟁직전에 간행된 竹越의 『新日本史』자체는, 수도의 종이값을 올린 당대의 베스트셀러였고, 그것만으로 초창기 明治의 ナショナル·アイデンティティ의 확산·참투에 조금이나마 역할을 한...
· 해피레포트는 다운로드 받은 파일에 문제가 있을 경우(손상된 파일/설명과 다른자료/중복자료 등) 1주일이내 환불요청 시 환불(재충전) 해드립니다.
(단, 단순 변심 및 실수로 인한 환불은 되지 않습니다.)
· 파일이 열리지 않거나 브라우저 오류로 인해 다운이 되지 않으면 고객센터로 문의바랍니다.
· 다운로드 받은 파일은 참고자료로 이용하셔야 하며,자료의 활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다운로드 받은 회원님에게 있습니다.
저작권안내
보고서 내용중의 의견 및 입장은 당사와 무관하며, 그 내용의 진위여부도 당사는 보증하지 않습니다.
보고서의 저작권 및 모든 법적 책임은 등록인에게 있으며,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저작권 문제 발생시 원저작권자의 입장에서 해결해드리고 있습니다. 저작권침해신고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