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3) 박정희 대통령 전기(소년~군인의 길)
☞ 조갑제 조선일보, 내무덤에 침을 밷어라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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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모리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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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 소년 가정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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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박정희는 고령박씨(박혁거세의 29세손 신라 54대 경명왕의 둘째 아들 언성을 제1세로 치는 본이다.)이고, 선친 박성빈(朴成彬)은 한말에 무과 급제하여 영변군수로 임명되었으나 시국의 어려움으로 부임하지 못하고(청와대측 기록), 벼슬의 꿈을 못이루어 책과 술로 가난하게 살았다 한다. 동학을 진압하는 관군에 가담하였거나 혹은 동학운동에 가담하였던듯한데 확실히 밝히기는 어렵다. 선달이라 불리운 것으로 보아 무과에 급제하고도 벼슬을 못얻었거나 무과 초시에 합격한 경우일 수도 있다.
O 어머니는 수원백씨 백남의(白南義)이며, 선친은 1916년에 경북칠곡군 약목면에서 처가마을인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로 이주하여 처가의 위토(衛土)를 소작하여 생계를 꾸렸다.
금오산자락이긴 하지만 금오산이 보이지않고 낙동강변이긴 하지만 강물이 보이지않는 동네였다. 7남매중 막내였던 박정희는 부모와 형제들로부터 사랑과 귀여움을 듬뿍받고 자란 것이 인격형성의 바탕이 되었다.
O 큰형 동희가 금융조합빛을 지고 가출하여 도피생활을 하다가 20년만에 돌아왔고 둘째형(중형) 무희가 농사일을 하며 대가족 생계를 꾸려갔다. 중형 박무희는 장승원의 소작인이었다.
장승원 경북 칠곡군 북삼면 오태동(현 구미시 오태동)의 장승원은 한강 이남에서 제일 가는 지주라고 불리웠으며 장택상의 선친으로 연간 7만 5천석의 소작수입을 올렸다.
장승원은 박상진의 광복회 회원에게 1917년 피살되었다.
장택상은 미군정시절 지주정당이라 불렸던 한민당의 핵심인사가 되어 수도청장이 되어 좌익소탕에 앞장섰다. 장택상은 자유당 이승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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