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절 조선 초기 행정조직의 개편과 예산
. 중앙의 일반행정 개편
태조 이성계는 즉위 후 고려때부터 있었던 도평의사사(都平議使司)를 중심으로 개국공신과 더불어 국가통치를 하였다. 그러나 개국공신이 포진한 도평의사사의 존재는 국왕의 국정운영에 부담이 되었다. 그리하여 이 기관의 권한을 축소하고 의흥삼군부(義興三軍府)를 설치하여 군정(軍政)을 총괄하게 하고 도평의사사에는 정부(政務)기능만 남기었다. 또 의흥삼군부의 설치는 군권을 집중화하는 결과도 갖게 되어 정치세력의 동향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왕자의 난으로 실력자가 된 이방원은 정종을 옹립한 뒤 도평의사사를 폐지하고 의정부(議政府)를 설치하였고, 중추부를 해체하고 삼군부와 승정원을 설치하여 그 기능을 흡수하였다. 그리하여 중앙관제는 고려적인 모습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방원은 왕이 된 뒤에 정도전 등의 개국공신세력을 축출하고 하륜·이숙번 등의 친위세력을 등용하여 왕권강화를 도모하였다. 그런 과정에서 신하의 세력을 누르기 위해 의정부 기능을 축소하고 육조 직계제를 실시하는 한편, 속아문제도를 완비하였다. 태종이 시행한 이런 국정운영의 방향과 그 원리는 세종과 세조를 거치는 과정에 일부 개편되고 조정되어 조선왕조 운영의 기본이 되었다.
. 지방의 행정개편
가. 지방행정 조직의 개편
태조 때의 지방 행정조직은 고려 때의 것이었다. 이런 지방제도에 변화가 생긴 것은 태종 때부터였다. 태종은 전국을 8도로 나누고 각 도에 관찰사를 두었으며 그 밑에 부·대호부·목·도호부·군·현을 설치하였다.
충청도는 고려 공민왕 때에 양광도에 포함된 지역이었으나, 태조 4년(1395)에 개성에서 한양으로 천도하자 양광도 지역의 양주·광주에 속한 군현을 경기도로 정하고 공주·홍주에 속한 군·현을 합하여 충청도로 명칭하면서 충청도가 시작되었다. 충청도로 개칭한 후 관찰사는 충주에 두게 하고, 정종 원년(1399) 영월군을 강원도에 속하게 하고대신 강원도의 영춘현을 충청도로 편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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