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으로 배우는 논술38]일연‘ 삼국유사 (三國遺事)’
[작품 해설]
1. 일연(一然 1206 ∼ 1289)
일연은 경상도 경주의 속현이었던 장산군(章山郡)에서 김언정(金彦鼎)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는 지금의 광주 지방인 해양(海陽)의 무량사(無量寺)에서 학문을 닦았고, 1219년에 설악산 진전사(陳田寺)로 출가하여 고승 대웅(大雄)의 제자가 되어 계를 받았다. 일찍이 승과의 선불장(選佛場)에 응시하여 장원으로 급제한 뒤, 비파산 보당암(寶幢庵) 등으로 옮겨 참선 수행에 몰두하였다. 그리하여 1246년에는 삼중 대사(三重大師)의 승계에 덧붙여 선사(禪師)로 불리고, 몽고의 침입이 끝날 무렵인 1259년에는 대선사(大禪師)의 승계를 제수 받았다. 그리고 고려 조정이 개경으로 환도한 이후 일연은 광명사(廣明寺)에 머무르면서 충렬왕을 비롯한 왕실 상하의 귀의(歸意)를 받았으며, 1283년에는 마침내 국존(國尊)에 책봉되어 원경충조(圓經沖照)의 호를 받았다. 일연은 선사이면서도 교학(敎學)에 매우 밝았다. 그러한 사실은 『제승법수(諸乘法數)』 7권, 『조정사원(祖庭事苑)』 30권, 볼국 【芳玲 禪門○頌事苑)』 30권 등 10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저술로 알 수 있다. 일연은 『삼국 유사』를 청도의 운문사(雲門寺)에 머무를 때인 1277년부터 편찬하기 시작하여 1281년경에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일연이 살았던 시기는 물론, 『삼국유사』가 씌어지던 바로 그 시기는 고려 사회가 안팎으로 매우 어려웠던 시기였다. 대내적으로는 100년 간에 걸친 무신정권의 횡포와 대외적으로는 30여 년에 이르는 몽고의 침입이 끝난 다음이었다. 고려 조정이 몽고와의 강화에 이어 1270년에 단행한 개경 환도는 왕정의 복고와 동시에 원나라의 간섭 하에 놓이게 됨을 의미하였다. 따라서 고려 사회에서는 민족적 자주성을 지키려는 의식이 팽배해 있었으며, 현실적 어려움을 역사적 전통의 강조를 통해 극복하려는 사회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여기에 더하여 ...
· 해피레포트는 다운로드 받은 파일에 문제가 있을 경우(손상된 파일/설명과 다른자료/중복자료 등) 1주일이내 환불요청 시 환불(재충전) 해드립니다.
(단, 단순 변심 및 실수로 인한 환불은 되지 않습니다.)
· 파일이 열리지 않거나 브라우저 오류로 인해 다운이 되지 않으면 고객센터로 문의바랍니다.
· 다운로드 받은 파일은 참고자료로 이용하셔야 하며,자료의 활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다운로드 받은 회원님에게 있습니다.
저작권안내
보고서 내용중의 의견 및 입장은 당사와 무관하며, 그 내용의 진위여부도 당사는 보증하지 않습니다.
보고서의 저작권 및 모든 법적 책임은 등록인에게 있으며,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저작권 문제 발생시 원저작권자의 입장에서 해결해드리고 있습니다. 저작권침해신고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