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과 3·1운동
박충순(천안대학교 교수)
. 서론
·1운동은 일본의 한국 침략과 지배에 대한 한국 민족의 저항운동이자 민족의 자주권 확보를 위한 민족투쟁이다. 이러한 3·1운동의 상징적인 인물 중 가장 주목받는 사람은 ‘한국의 잔다르크’·‘3·1운동의 꽃’으로 불리는 유관순일 것이다. 유관순은 비록 어린 여학생이었으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을 뿐만 아니라, 옥중에서도 민족독립에 대한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민족자존의 자긍심을 끝까지 지켰다. 특히, 초등학교 ‘읽기’교과와 ‘음악’교과의 ‘유관순’이라는 전기와 노래를 통해 우리 가슴에 영원한 민족의 ‘누나’로 오늘날까지도 생생히 살아 있다.
올해가 바로 ‘유관순 열사 탄신 백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러나 유관순의 출생일·순국일·형량 및 이름의 한자 표기 등 기본적인 사항들이 아직까지도 정확히 고증되지 못해 많은 사람들이 혼동하여 잘못 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이유는 유관순의 생애가 너무 짧았을 뿐만 아니라, 일제(日帝)가 유관순에 관한 모든 자료를 해방되기까지 26년 이상을 은폐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학계의 무관심으로 그 동안 제기되어왔던 문제점과 그에 따른 증언·증거물들에 대한 정리작업이 부족했음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본고에서는 유관순의 3·1운동에 대한 기존연구와 자료를 토대로 해서, 그녀의 가계(家系)와 생애(生涯)에 대해 고찰하고, 사상과 운동의 연관관계를 찾아보는 작업을 시도하고자 한다. 먼저 유관순의 가계와 생애를 살펴보고, 사상형성에 있어서 시대적 배경과 지역적 배경 및 가정적 배경을 알아보며, 이러한 사상이 독립운동으로 구현되는 과정을 이화학당 시절의 재경활동(在京活動)·1919년 병천에서의 재향활동(在鄕活動)·투옥되어 산화하기까지의 옥중투쟁(獄中鬪爭)의 순서로 정리함으로써 잘못 알려진 사실들을 바로잡으려 한다.
. 가계와 생애
(1) 家系
柳寬順1)은 1902년 12월 16일 충청남도 목천군 이동면 지령리2)에서, 아버지 흥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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